저는 타고난 ‘계획형 인간’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우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합니다. 거기에 완벽주의와 정확한 시간개념까지 더해져 있으니 아내를 포함, 제 주변에는 저 때문에 숨막히던 사람들이 꽤 많았을 듯싶습니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지시만 탁! 던져놓으면 알아서 척척 제시간에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내놓곤 했으니 편안했을 겁니다. 저는 매사를 “어떻게 할까요?”가 아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로 대처해왔습니다. 반면, 저의 동료들은 물론, 선후배들도 가끔은 “저놈 뭐지?” 하는 생각을 가졌을 법합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못된(?) 성격 때문에 저는 남들보다 6년이나 늦은 출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그들을 따라잡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왕 하는 거 잘하자. 남한테 싫은 소리 듣지 말고…’ 라는 생각이 얹어진 저의 이 같은 사고방식은 시드니에 와서 코리아타운을 운영하면서도 변함 없이 이어졌습니다. 완벽주의 사고를 가진, 능력도 갖춘, 성실하기까지 했던 저는 아마도 ‘함께 일하기 힘든 사장’ 소리는 들었을 터입니다.
한국에 3주 동안 있는 동안 건강검진과 임플란트 수술로 병원을 들락거린 게 어림잡아 여남은 번은 될 겁니다. 그 틈에 홋카이도 3박4일, 여수 4박5일까지 쪼개 넣었으니 실로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별 문제 없이 유쾌하게 지냈는데 서울 E성모병원 L모 의사와의 원치 않았던 만남이 저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지독한 기침감기를 떠 안겼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콜록대던 저의 기침은 시드니에서 더 악화됐고 그 와중에 이사까지 빗속에서 강행됐습니다. 2년여 동안 살던 렌트하우스 또한 완벽하게 해놔야 한다는 저의 고집은 이번에도 예외가 없어 부동산중개소에서 엄지 척을 받아냈기는 했지만 우리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이삿짐을 새 집으로 옮겨놓고도 좀 쉬어야 할 것을, 아내나 저나 둘 다 똑같아서 엄청난 이사바구니를 단 이틀 만에 모두 비워내는 억척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도 2년여동안 전에 살던 집 가라지에 풀지도 못한 채 쌓여 있었던 엄청난 양의 박스들을 하나하나 뜯어내며 본격적인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라도 멈춰야 했습니다.
IKEA 물건들… 잘만 고르면 가격도 좋고 품질도 좋지만 문제는 ‘조립지옥’ 이었습니다. 네 개 중 그나마 수월했던 두 개는 어찌어찌 조립을 했지만 문제는 가라지에 들어갈 240cmx150cm짜리 대형 장과 세탁실에 설치할 선반이었습니다. 더 이상 엄두를 못 내고 앉아 있는데 리드컴 제 절친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사하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먹고 쉬엄쉬엄 하라”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짜장면까지 사고 얼떨결에(?) 발목을 잡힌 그 친구는 비실대는 저 대신 본인이 해보겠다며 드릴을 들고나섰습니다. 전문가 급인 그가 그 두 가지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어림잡아 네 시간… 그야말로 고맙고 미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시간까지 함께 해준 그 친구의 아내 또한 고맙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다음 날 오전, 그 친구는 가라지 장 핸드 프레싱 캐비닛 도어를 본인 자비로 사와 해결해주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별로 한 일도 없는 제가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만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의 찌질함은 그치지 않는 기침과 함께 거의 응급실에 실려갈 직전까지의 사태로 치달았습니다. 아내는 물론, 딸아이부부, 아들녀석, 훈이와 봄이 모두 멘붕이 됐고 조카딸의 새 집 입주 축하한다고 한국에서 날아온 막내처고모도 도착 첫날 황당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저의 찌질한 소식을 듣고 사슴보약 한 재를 들고 직접 달려오신 저보다 열 살도 더 많은 사장님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아… 이제 옛날 같지가 않구나. 더 이상은 자타공인 인조인간 김태선은 존재하지 않는구나. 이젠, 정말 까불지 말아야겠다’ 하는 다짐을 해봤습니다. 물론 저의 찌질함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인 나 때문에 몇 날 며칠을 마음 졸여온 사람들에게, 정말 있을 때 잘 해야겠구나’ 하는 다짐도 해봤습니다. 늦어도 이번 주말까지는 상황이 많이 나아져서 플래밍턴 맛집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씩 먹고 힘을 내서 못다한 커튼 달기, 액자 걸기 등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