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뒤의 ‘빡침’

2월 11일 끝난 ‘2023 AFC 아시안 컵’에서 두 번의 ‘기적 아닌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1월 31일 열렸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이었습니다. 0대 1로 뒤진 채 전광판의 시계는 이미 멎었고 후반 추가시간도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젠, 졌다’ 싶었던 순간, 사우디 진영 왼쪽에서 설영우가 헤딩패스로 넘겨준 볼을 조규성이 머리로 받아 사우디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순간 터져 나온 환호… 1대 1상황에서 이어진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한국은 결국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조현우가 사우디의 세 번째와 네 번째 페널티 킥을 막아냈고 황희찬이 네 번째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면서 그야말로 극적으로 8강에 올랐습니다.

두 번째 기적은 2월 3일 호주와의 8강전에서 일어났습니다. 전반 42분에 한 골을 허용한 한국은 이번에도 패색이 짙었습니다. ‘이젠, 틀렸다’고 생각하던 순간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역시 전광판 시계는 이미 멎은 상태에서 주어진 후반 추가시간 3분, 손흥민이 얻어낸 페널티 킥을 황희찬이 성공시키면서 1대 1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연장 전반 14분, 페널티라인 바로 앞 왼쪽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손흥민이 호주 수비벽을 넘기며 그림 같은 골로 연결, 2대 1의 짜릿한 역전승을 이뤄냈습니다.

9년 전인 2015년 1월 31일… 시드니에서 열렸던 ‘2015 AFC 아시안 컵’ 결승에서 한국과 호주가 맞붙었고 아내와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온통 노란색 물결의 호주 관중들 속에 우리는 당당히 붉은색 셔츠를 입고 차두리의 미친 질주와 손흥민의 말벅지를 직관하면서 ‘대~한민국!’을 연호했습니다. 전반 45분, 호주에 골을 허용하며 0대 1로 끌려가던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1분에 손흥민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연장전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연장후반 15분, 다시 호주에 한 골을 허용하며 호주에 1대 2로 무릎을 꿇었고 당시 스물세 살의 ‘울보’ 손흥민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품에 안겨 펑펑 울었습니다.

이번 호주와의 8강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9년 전의 그날과 ‘데칼코마니’를 이뤘습니다. 다만, 손흥민이 스물세 살이었던 그때와는 정반대로 서른두 살이 된 그날에는 승자와 패자를 완벽히 바꿔놓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해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이번 아시안컵 축구대회를 함께 하면서 감동하고 환호했던 부분입니다.

역대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팀은 어쩐 일인지 조별예선에서부터 찌질대더니 16강전과 8강전에서 좋게 말하면 기적 같은, 나쁘게 말하면 졸전 끝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일본매체들은 ‘좀비축구’라는 표현을 쓰며 한국 축구를 비아냥댔는데 한심한 한국의 일부 매체들은 그 표현을 그대로 따라 썼습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우리 입장에서는 좀비축구가 아닌 ‘불사조축구’라는 표현을 쓰는 게 백 번 옳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두 번의 기적적인 상황을 연출하며 4강에 진출한 한국은 그러나 2월 6일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졸전 중의 졸전을 펼친 결과 0대 2로 완패하면서 밤잠을 설치며 성원과 애정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축구 역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빡침’들은 그 뒤에 있었습니다. 전술도 전략도 없이 오로지 선수들의 기량에만 의존했던 ‘이상한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은 끝까지 ‘저게 인간일까…’ 싶을 정도의 뻔뻔함을 보이다가 결국 경질을 당했지만 여전히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는, 오히려 잘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 대표팀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82억원을 챙겼다는데 이번에도 그는 그와 상응하는 돈을 이른바 위약금이라는 명목으로 챙길 참입니다. 그야말로 그에게는 쪽팔림은 순간일 뿐 다른 건 아무 상관도 없는 듯합니다.

요르단과의 4강전이 끝난 후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말문을 열지 못했던 주장 손흥민 선수는 물론, 다른 선수들도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감춰졌던 전날 밤 대표팀 내에서의 불편한 진실… 평소 송곳처럼 정확한 패스를 찔러주는 영리한 슛돌이 이강인을 많이 좋아하고 응원했지만 유능한 축구선수보다는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에 또 다른 빡침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미셸 유의 미술칼럼 (65) 액션 페인팅 대표 화가 빌럼 데 쿠닝
Next article‘Start Your Career’ 프로젝트에서 코칭강의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