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자연, 응답하는 사람

혹스베리 강 (Hawkesbury River)을 따라 리버보트 (Riverboat)에 올랐던 가을날, 물살은 고요했고 햇살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선체를 감싸고 있었다. 강은 유유히 흘렀지만, 마음속엔 조용한 물음이 일어났다. 자연과 인간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이 풍경은 과연 언제까지 우리 곁에 머물 수 있을까.

물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귀히 여겨왔던가. 자연은 아낌없이 베풀지만,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그 은혜는 언젠가 멀어질지도 모른다. 바 포인트 (Bar Point)에 다다르자 오래된 군함 HMAS 파라마타 (Parramatta)의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에서 적의 어뢰에 침몰한 이 함선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전을 전송했고 그 외침은 지금도 시간 너머로 메아리 치듯 들려오는 듯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그 말은 물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켜야 할 것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가.

강의 왼편, 맹그로브 숲은 녹색의 벽처럼 펼쳐져 있었다. 물고기들은 튀어오르며 반짝이고 뿌리들은 물속에서 조용히 숨 쉬었다. 맹그로브는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생명의 연결고리였다. 진흙 속엔 수많은 유기물이 쌓여 있다. 그것들이 분해되면서 산소는 점점 줄어들고 황화수소가 생성되어 산소가 거의 없는 혐기성 환경이 만들어진다. 겉보기엔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쉼 없이 숨 쉬며 살아간다.

맹그로브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자연의 방파제이자 수많은 생물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 맹그로브 숲은 사라지고 있다. 벌채, 양식장 개발, 사료용 소비… 이유는 달라도 결과는 같았다. 해안의 생명선이 끊기고 있는 것이다.

홍해연안에서는 사막에 맹그로브 숲을 조성하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물길을 내고 초기군락을 방파제로 삼아 면적을 넓혀가는 그 노력은 찬란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응답일지도 모른다.

한편, 다른 대륙에서는 ‘폭우’라는 이름의 경고가 쏟아졌다. 하루 만에 한 달치 비가 내리며 도시를 휩쓸었고 수십만 명이 대피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재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우리가 만든 결과였다. 선택하지 않았고 응답하지 않았기에 마주해야 했던 현실이다.

기후재난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조용히 다가온 질문이었다. 산업화는 나무를 밀어냈고 강은 오염되었으며 생태계의 균형은 흔들렸다. 그리고 이제, 그 강들이 되묻고 있다. “너희는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미래에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위안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그 한가운데 서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 가장 빠른 시간이다. 블루마운틴의 안개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풍경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자연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어제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내일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환경보호는 거창한 결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아서 하루의 틈 속에 조용히 숨어 있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서는 아침, 나는 비닐봉투 하나를 줄였다. 장을 볼 때 장바구니가 손에 익었고 식사 후엔 남은 쓰레기를 정리했다. 작은 행동들이 그렇게 하나씩 쌓여갔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분리수거에 나섰고 거리의 코카투들이 쓰레기를 뒤지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소한 실천들이 모이면 공동체의 움직임이 된다는 것을.

독일 피른하임의 한 호텔에서도 그 깨달음은 이어졌다. 객실 청소를 생략하면 음료바우처를 준다는 안내문을 보고 시트를 바꾸지 않았고 다음 날 나는 딸기주스를 받았다. 아주 작고 단순한 보상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환경보호라는 거대한 운동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일상적 실천이라는 것을.

텀블러 사용, 전등 끄기, 음식물 퇴비화, 대중교통 이용, 태양광패널 설치, 빗물 저장통 활용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고 넓다. 결국 변화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작은 습관을 돌아보는 성찰 속에서 우리는 다시 선택하게 된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 하나, 켜진 채 잊힌 불빛 하나. 그 반복되는 물음이 우리를 변화의 문턱으로 데려다 준다.

자연은 우리가 지나온 흔적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기억에 응답할 시간이다. 단 하나의 결심이 씨앗이 되어 더 많은 사람의 실천을 이끌고 그 움직임은 결국 모두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글 / 조 이 (글무늬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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