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8일 중국 항저우에서 2022 제19회 아시안게임이 폐막됐다. 원래 2022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코로나19로 인해 2023년으로 연기됐다. 그런 연유로 2023년에 열린 아시안게임이 2022 제19회 아시안게임으로 표기된 거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4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89개를 획득해 메달 합계 190개로 아시아 종합 3위를 기록했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열정과 투혼과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보면서 가슴을 졸이곤 했다.
나는 스포츠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유난히 여자 탁구에 관심이 쏠렸다. ‘신유빈’ 선수 때문이었다.
오래 전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보게 된 오락프로그램에서 탁구 치는 신유빈이라는 어린아이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다섯 살된 여자아이의 탁구 실력이 실로 놀라웠다. 이제 겨우 머리가 탁구대 위로 보일락말락 하는 어린아이 신유빈의 탁구 재능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그 신유빈이 어느새 19살이 되어 탁구 세계랭킹 8위에 올랐다. 경기를 하면서 ‘삐약’ 소리를 내지르며 혼신의 힘을 다한다.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신유빈은 여자복식 금메달을 비롯해 4개의 메달을 목에 걸고 말 그대로 금의환향 (錦衣還鄕) 했다.
신유빈은 아버지가 아마추어탁구선수 출신으로 탁구장을 운영한 탓에 어려서부터 탁구공과 라켓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그런 신유빈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진학을 접고 대한항공 여자탁구단에 입단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접은 이유는 확실하다. 좋아하는 탁구를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신유빈이 고등학교 진학을 접고 탁구만을 선택했을 때 의아했다. 학업을 접다니, 그것도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진학을 접다니 그게 말이 돼? 게다가 그런 선택에 찬성한 신유빈의 부모들이 이해불가였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신유빈은 세계적인 탁구선수가 됐다.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면서 자기를 만들었다. 지금 신유빈은 행복하다. 돈 얘길 해서 좀 멋쩍지만 앞으로 받게 될 연봉도 넉넉할 거다.
‘최하내’는 뉴질랜드 힙합댄서다. 스무 살이다. 힙합 춤을 추고 가르친다. 뉴질랜더들의 최애 스포츠인 럭비경기가 열리면 선수들을 격려하는 응원단으로 선발돼 힙합으로 선수들을 응원한다. 최근엔 Farmers 기업 광고에 발탁돼 광고영상을 촬영해 TV에도 등장한다.
최하내는 서너 살 때부터 발레학원에 다녔다. 어떤 분야의 놀이든 시큰둥하던 최하내는 춤추는 걸 보면 집중했다. 특히 힙합에 관심을 보였다. 다섯 살부터 전통 힙합을 배우기 시작했다. 열여섯 살 무렵에는 뉴질랜드 힙합대표로 선발되어 미국에서 개최된 세계힙합경연대회에 참석해 힙합 매니아들과 어울렸다.
최하내는 칼리지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접겠다고 했다. 좋아하는 힙합 추고 만들고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부모들은 너의 뜻대로 하라고 했다.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입학을 허가한 대학이 세 곳이나 되는데도 대학을 가지 않겠다니, 힙합이 뭔지 모르지만 춤추겠다고 학업을 포기한다니, 아무리 선진국이고 신세대의 사고라고 해도 그렇지 그게 말이 돼?
더욱이 그걸 말려야 할 부모가 네가 좋으면 그렇게 하라니 대체 뭐가 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서 나의 몸 깊숙이 새겨진 타투처럼 지워지지 않는 삶의 방식을 탈피하는 삶이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다시, 그런데 말이다, 최하내는 그렇게 결정하고 활동하면서부터 늘 바쁘다. 멤버들과 함께 연습하고 무대에 서고 어린아이들 가르치고 새로운 장르 창조에 몰두하면서 너무나 행복하다. 수입도 쏠쏠한 눈치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잘 마치고 ‘대가리 터지도록’ 공부해서 일류대학에 입학해 데모하지 말고 졸업해 ‘끗발 나는’기업에 입사하면 그게 바로 인생성공이라고 배웠다.
나는 사람들 말처럼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좌우지간 마쳤다. 하지만 그릇이 모자라 일류대학은 못 다녔다. 그래도 나름 사회에서 인정하는 끗발 나는 기업에 몸담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나는 인생성공 했다고는 도저히 말 못하겠다. 도대체 인생성공이란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쩌면 20살 최하내나, 19살 신유빈이 추구하는 삶이 인생성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인생성공이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최하내나 신유빈 그대들의 이야기처럼, 지나친 학업의 압박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보고 싶다.
행복은 하늘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