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겁지 않아

세상이 개인주의로 물들었다고 한다.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주는 품앗이라는 말이 낯설다는 거다. 학자들은 원인과 이유를 분석하느라고 분주하다. 어느 심리학자가 그랬다. “개인주의 시작은 경제적 풍요에서 싹튼 거다.”

맞는 분석이라는 생각이다. 못 먹고 헐벗은 시절엔 힘을 합쳐야 살아갈 수 있었다. 서로 나누고 도와야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물신주의 풍조가 세상을 개인주의로 변하게 했다. 내가 돕지 않아도 그는 알아서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가 아닌 내가 살면 된다.

그렇기도 하다. 그럴지라도 나는 개인주의가 인간성상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무리 세상이 개인주의로 변했다 해도 인간에겐 따뜻한 감정이 흐르는 거다. 사랑 도움 나눔을 아는 동물이 인간이다.

돕는다는 것을 굳이 물질적인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물질을 떠나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다. 인간은 야생동물처럼 칼날 같은 예리한 발톱도, 송곳같은 날카로운 이빨도, 바람처럼 빠르게 치닫는 능력도 없다. 원래 인간은 집단적 존재이며 사회적 존재다.

더불어 인간은 감성의 동물이다.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 가는 것이 인간이다. 위로하고 의지하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다. 그것이 우리라는 거다. 우리는 함께라는 의미다.

우리 부모님들은 많은 자식들을 뒀다. 자식들은 형제자매로 서로 아끼고 도우면서 살아가는 삶의 버팀목이었다. 내가 성장하면서 내 어머니에게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말은 “어쨌든지 느그 형제들은 끝까지 서로 도와주고 우애 있게 살어야 헌다”는 거였다.

오랜 옛날 1965년에 히트한 팝송이 있다. 영국의 록 밴드 홀리스 (Hollies)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라는 노래다. 그는 무겁지 않아, 그는 내 형제이니까 라는 뜻이다. 노래 가사가 눈물겹다.

The road is long with many a winding turn / 그 길은 꾸불꾸불한 굴곡이 많은 먼 길이지 That leads us to… who knows where? Who knows where / 그 길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누가 알까? 누가? But I’m strong strong enough to carry him / 하지만 난 그를 안고 갈 만큼 충분히 강해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 그는 무겁지 않아, 그는 내 형제이니까

So on we go, his welfare is my concern / 그렇게 우리는 계속 함께 가야 해서, 그의 행복은 나의 관심거리야 No burden is he to bear we’ll get there / 그는 부담을 주는 짐이 아니야. 우리는 함께 그곳에 닿을 거야 For I know he would not encumber me / 그가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 그는 무겁지 않아, 그는 내 형제이니까

If I’m laden at all, I’m laden with sadness / 내가 괴로워하고 있다면, 내가 슬픔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That everyone’s heart isn’t filled with the gladness of love for one another / 그것은 모두의 가슴에 서로를 위한 사랑의 기쁨이 채워지지 않아서야 It’s a long long road from which there is no return / 그 길은 되돌아갈 수 없는 멀고 먼 길

While we’re on the way to there, why not share? / 우리가 함께 그곳에 가는 동안 왜 우리는 서로 나누지 않을까? He’s my brother.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 그는 내 형제야. 그는 무겁지 않아, 그는 내 형제이니까.

내가 지금도 이 노래를 찾아 듣는 것은 내 둘째 형님 생각 때문이다. 이 노래는 내 둘째 형님이 부르는, 내 둘째 형님의 노래다.

우리 형제는 굴곡 많은 세상을 살아왔다. 우리 형제는 모두 어렵게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우리 형제는 풍요로운 삶은 아니었지만 헐벗고 굶주린 삶을 살진 않았다. 그건 우리 형제들의 사랑과 도움과 나눔 때문이었다.

세상은 전쟁터와 유사하다. 서로 기대고 부축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내 삶은 춥고 힘든 세상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한쪽 눈이 멀어지고, 무릎이 부셔지고, 감옥도 경험하고, 형님들 곁을 떠나 낯선 세상에서 다시 살아가야 하는 아픔까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세상 밖으로 밀려나진 않았다. 내가 힘든 세상 속을 헤맬 때마다 내 둘째 형님은 굴곡진 세상 길을 걸으면서도 나를 춥고 험한 벌판에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 둘째 형님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세상이 개인주의로 변했다는 지금도 팔순을 지척에 둔 나를 당신의 등에서 내려놓지를 않는다.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올곧게 살라고 좋은 글을 보내주고 때론 용돈도 보내준다.

주지 못하고 받기만 하는 나, 업어주지 못하고 업히기만 하는 나, 석양을 바라보는 지금도 형님의 등에 얹혀있는 나, 형님은 내가 무겁지 않은가 보다.

나는 깊은 한숨과 송구함과 감사의 눈물 속에서 평온하고 행복하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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