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정도밖에 굽혀지지 않는 내 오른쪽 무릎을 정밀 검사한 후, 군의관이 군대 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간절한 목소리로 군대 꼭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오른쪽 눈이었다. 눈 담당 군의관이 ‘너의 오른쪽 눈은 각막 파열이다. 수술해도 시력은 제로다. 총을 쏠 수 없으니 군대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보이는 왼쪽 눈으로 총을 쏘면 된다고 우겼다. 군의관은 빙그레 웃었다.
검시관 앞에 선 나를 중심으로 양쪽에 군의관들이 섰다. 무릎을 검사하고 눈을 검사한 군의관들이 내 무릎과 눈을 가리키며 검시관에게 뭐라고 설명했다. 잠시 후, 검시관이 ‘병종 불합격!’이라고 했다. 나는 미리 지시 받은 대로 검시관을 향해 경례를 하며 ‘병종 불합격’이라고 복창했다. 신체 검사장 바닥에 앉아있던 수많은 징병대상자들이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들은 겉으로는 멀쩡한 나를 보면서 ‘특별한 놈’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는 정말로 군대에 가고 싶었다. ‘대학’ 가기도 어려울 것 같고, 먹고 입고 잠자는 사는 것도 힘들고, 속 편하게 군대에 가서 말뚝을 박을 참이었다. 친구녀석들도 너는 딱 ‘군대 체질’이라고 초를 쳐댔다. 헌데 그마저도 뜻대로 되질 않았다. 세상살이는 아이러니다. 군대 가고 싶어하는 놈은 못 가고 가기 싫어하는 놈은 가야 한다.
한국의 대법원3부는 유승준이 주 로스엔젤레스 (LA) 한국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사증 (비자) 발급거부처분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해당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이로 인해 17년간 한국 입국이 금지된 유승준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유승준은 한국에서 인기절정의 가수였다. 그의 춤과 노래는 젊은 청소년들을 사로잡으며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자리잡았다. 재미교포인 그는 평소 국방의무를 다하겠다고 말해 더더욱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그가 2002년 돌연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고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여론은 싸늘해졌다. 유승준은 병역기피 논란으로 대한민국 법무부에 의해 입국이 금지됐다.
그는 한국에서 가수생활을 계속하고자 끊임없는 법적 대응을 통해 입국하려고 했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그렇게 17년이 지나갔다. 그는 마흔을 넘긴 중년이 됐다. 그 동안 국민정서와는 상관없이 유승준의 입국 금지가 법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해석은 있었지만, 두 아들과 함께 한국땅을 밟고 싶다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Jtbc 손석희 앵커가 ‘앵커 브리핑’에서 말했다. “태국의 21살 청년들은 매년 4월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서 울고 웃습니다. 그들은 항아리같이 생긴 동그란 통에 손을 넣고 제비를 뽑는데, 빨간색을 뽑은 사람의 표정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게 어두워지고 검은색을 뽑은 사람은 만세를 부르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태국의 추첨 징병제 현장의 모습입니다.
한해 필요한 군인의 숫자를 정해놓고 지원자를 모집한 뒤에 부족할 경우에는 전국의 만21세 남성에게 소집령을 내려서 제비 뽑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승려가 되어버린 사람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유명 아이돌 멤버도 피할 수 없는 절차라고 하는데, 지극히 공정한 이른바 뺑뺑이의 방식을 따르고 있으니 희비는 엇갈리겠지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군요.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누구나 다 가야 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누구나 다 예외 없이 가지는 않는 곳, 국민의 4대 의무이니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당연히 가야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특별한 사유를 어떻게든 만들어내서 끝내는 가지 않는 곳, 그래서 누구는 몸무게를 늘리거나 줄이고 누구는 영 생소한 질환을 이유로 들고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여러 가지 특별한 사유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신의 아들’이 태어나는 곳 군대, 17년을 기다린 끝에 입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를 이제는 중년이 돼버린 남자가 있습니다. 그 17년이란 시간은 대중과의 약속을 어긴 그 스스로가 불러들인 재앙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2년 남짓의 군대 생활이 싫다고 17년을 허공에 날려버린 진짜 멍청한 놈이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