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해도 저는 좀 별나긴 한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 영자신문 (英字新聞·English Newspaper)을 만들 때도, 사회에 나와 여성지 기자를 할 때도 마감 때는 꼭 며칠 동안은 야근을, 때에 따라서는 밤샘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밥을 시켜먹곤 했는데 당시에는 중국음식이 그 중 가장 만만한(?) 메뉴였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몰라도 짜장면, 짬뽕, 볶음밥, 탕수육, 양장피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시키면 군만두 몇 접시는 기본 서비스로 딸려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 빼놓으면 섭섭한 게 고량주나 이과두주 같은 도수 높은 중국 술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이놈들을 몇 잔 곁들이면 마감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던 기억도 뚜렷합니다.
여럿이서 다양한 음식들을 시켜놓고 왁자지껄하게 나눠먹는 기쁨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메뉴나 다른 사람 음식을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조금씩 덜어서 먹는 건 괜찮지만 “나, 국물 좀 먹을 게” 하며 남의 그릇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건 용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저는 그런 행동이 몹시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심한 트리플 A형이 대놓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고 그 같은 일을 당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저는 제 음식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아주 심한 경우에는 빨간 국물과 매캐한 불향이 침샘을 한껏 자극하는 짬뽕 그릇에 제가 젓가락도 채 대기 전에 그릇을 번쩍 들어 “나, 짬뽕국물 좀 마실 게” 하며 국물을 드링킹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이건 아닌 듯싶었습니다. 그런 날은 저는 짬뽕에는 손도 안대고 탕수육이나 양장피, 군만두로 야식을 대신했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좀 별나다’라고 인정하는 것은 제가 가까운 지인들은 물론, 우리식구들이 먹다 남은 음식도 잘 안 먹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공동메뉴를 덜어서 먹는 건 괜찮지만 개인전(?)에서 남긴 음식은 그야말로 절대사절인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가 먹던 음식 그리고 제 딸아이가 먹다 남긴 음식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유쾌하게 먹었습니다. 제게는 이 세상에 그렇게 딱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지난 5월, 한국 남대문시장에서 우리는 여러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귀엽고 앙증맞은, 퀄리티 좋은 스테인레스 식판 두 개를 사왔습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할매할배 집에서 밥을 먹는 훈이와 봄이 두 녀석의 전용식판인 겁니다. 얼마 전 토요일 점심, 아내가 맛있는 불고기를 만들어 녀석들 식판에 푸짐히 담았습니다. 멸치조림과 햄 볶음 그리고 구운 김, 김치 등도 함께였고 밥의 양도 평소보다 좀 많아 보였습니다.
두 녀석 모두 할머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맛있게 음식들을 먹었습니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주부는 기쁨을 느낀다던데 그렇게 “할머니 최고!”를 외치며 맛있게 음식을 먹는 훈이와 봄이의 모습은 사랑스럽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하지만 평소보다 꽤 많은 양의 음식을 받았던 두 녀석은 한참을 맛있게 먹다가 배가 부르다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정량을 초과해서는 안 되는 법… 그래도 두 녀석 모두 음식을 평소보다 많이 먹었고 식판에는 그저 두 세 숟가락 정도의 밥과 반찬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녀석들의 식판에 남아 있는 음식들을 우리의 밥그릇으로 옮겨 담았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녀석들이 먹다 남긴 불고기와 멸치볶음은 더 달고 맛있었습니다.
저 못지 않게 음식에 관한 한 만만치 않은 아내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먹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토록 별난 까탈스러움을 지닌 우리가 그렇게 녀석들을 향해 완벽하게 변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우리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과식’을 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탈 없이 잘 소화해낸 건 아마도 녀석들이 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소화제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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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김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