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늦잠 한번 늘어지게(?) 자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이민초기 시절, 아내와 저는 고마운 분들의 도움과 배려로 울워스 청소를 세븐 데이로 하고 있었습니다. 1년에 딱 다섯 번, 새해 첫날·굿 프라이데이·이스터 선데이·크리스마스·복싱데이만 쉴 뿐 나머지 360일은 새벽 네 시부터 일곱 시까지 넓디넓은 울워스 베랄라 매장을 아내와 단 둘이서 깨끗하게, 완벽하게 청소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청소의 청’자도 모르고 지냈던 우리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전투적으로 살아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샤워를 하고는 교민 신문·잡지에서 저녁 여덟 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생활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아내도 후다닥 씻고는 두 아이 도시락 준비와 시어머니 아침상 차리기 그리고 각종 집안일들로 하루 종일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에게는 늦잠은 물론, 여행 같은 건 당일치기라도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1년에 5일 주어지는 자유시간… 늦잠이라도 좀 자고 싶었지만 일찍 일어나던 버릇 때문이었는지 새벽 세 시만 되면 눈이 말똥말똥해졌던 기억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어쩌니 저쩌니 해도 원하는 만큼 늦잠도 잘 수 있고 우리가 가고 싶은 날 여행도 다닐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한국에서 회사 살리기 하느라 1년반 동안 월급 한푼 못 받았던 빚 전력(?)에 귀인(?)인줄로 알고 만났던 새로운 회사에서의 연대보증 때문에 신도시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빚 청산을 하고 택한 맨땅에 헤딩 식 이민…. 이래저래 끌어 모은 2만불로는 다섯 식구가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고 다시 우리 집을 갖는다는 건 정말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피나는 노력과 운 덕분에 우리는 이민생활 4년만에 수영장이 딸린 950스퀘어미터짜리 하우스를 살 수 있었습니다. 이후 또 한번의 점프를 통해 지금은 이스트우드 노른자위에 우리만의 행복한 둥지를 틀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1년 9월… 나온 지 10년쯤 된 도요타 캠리 중고차를 사려했지만 갖고 온 돈 2만불 중에서 두 아이 랭귀지스쿨 학비 내고 렌트 본드비 내고 나니 가용할 수 있는 돈은 단 4000불이었습니다. 3000불이 모자라 그 차를 포기하고 얼떨결에 34만킬로미터 이상을 주행한 포드 팔콘 똥차(?)를 떠안았다가 온갖 고생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 차 뽑은 지 11년 넘었는데 돈이 없어 못 바꾸고 있다.’ 가끔 혼잣말처럼 또는 가까운 지인들한테 넋두리처럼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생각해보면 배부른 소리에 다름 아닙니다. 이제 13만킬로미터를 주행한 독일제 SUV… 앞으로 10년은 너끈히 더 탈 수 있을 만큼 탄탄하고 건강한 차를 두고 무슨 새 차 타령을 하는 건지… 우리가 흔히 쓰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봅니다.
희한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네 잎 클로버 찾기에 몰두를 합니다. 저 또한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데 정작 세 잎 클로버가 ‘행복’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는 겁니다. 과연 행복보다 행운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까요? 시드니 이민생활 22년을 꽉 채운 요즘, 많은 생각과 자아성찰을 해봅니다.
그렇게 빈털터리 상태로 왔다가 불가능할 것으로만 생각됐던 내 집도 마련하고 무엇보다도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이 나이에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온라인 쓰나미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코로나19 격랑에서 슬기롭게 빠져 나오지 못하고, 하이에나들의 양아치 짓을 공격적으로 타파하지 못한 것도 모두 저의 부족이고 저의 잘못입니다.
생각이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는데… 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 잎 클로버들은 외면하고 애써 네 잎 클로버만을 찾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부쩍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을 돌아보며 다시 긍정적, 적극적 사고에 매진해야겠습니다.
**********************************************************************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