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칠목’ 기억의 출발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한강대교와 철교 사이의 샛강을 끼고 있던 작은 동네 ‘가칠목’입니다. 동네 앞으로 흐르던 한강물이 불어나기라도 하면, 들어오고 나가던 모든 길이 막혀버렸고, 가칠목 어른들은 뒷산 아래 모여들어 속절없이 물에 잠기는 집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마을 뒤를 감싸던 구릉 아래엔 뱀처럼 구불구불한 골목길들이 이어져 있었고, 가칠목 아이들은 미로 같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자기들만의 세상을 살았습니다. 뒷산 경사진 길 위엔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꼬불꼬불 난 비탈길로 늘어져 있었고, 그때 그곳에선 모두가 똑같았기에, 고통이라 할 수도 없었던 곤궁한 삶이 늘 넘쳐나던 곳이었습니다.

 

겨울이면 쌀이나 시멘트가 담겼던 포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눈썰매 놀이를 했었는데, 누군가가 헤져서 버린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 나는 늘 구경꾼이었습니다. ‘깔빼기’라 부르던 ‘다마치기’ 놀이를 할 때도, 개평으로 구슬 몇 알을 받고서야 내 놀이는 끝났습니다. ‘다방구’라는 술래잡기를 하면 제일 먼저 죽었고, ‘십자가이상’을 할 땐 넘어져서 옷이 찢어지거나 팔과 무릎 어딘가에서 피가 나는 것 역시 내가 먼저였습니다. 자기들끼리의 놀이에 싫증이 나면, 뒷동네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놀이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손잡이가 붙은 쓰레기통 뚜껑을 들고나와 방패 삼고, 양쪽 주머니에 작은 돌멩이를 가득 채워놓고 골목을 누비며 던졌는데, 한참 뛰어다니다 보면 혼자 남기 일쑤였습니다. 여기저기 아이들을 찾아 기웃거리다가 결국 집으로 혼자 돌아가곤 했습니다. 때 자국이 켜켜이 딱지 진 고사리 같은 손등은 언제나 추위에 터 있었고, 손톱 밑엔 흙 때가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진 후에야 집에 들어서면 늘 할머니의 핀잔이 있었지만, 잠자리에 들 때까지 놀이의 남은 흥분 때문인지 온몸 구석구석이 스멀스멀하곤 했습니다.

 

내가 살던 집 안방의 높고 작은 창문 너머로는 한 뼘 하늘만이 보였고, 나는 개구멍처럼 좁은 뒷문을 통해 나가기를 좋아했습니다. 가칠목의 비탈진 골목길 뒤에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숲 속 어딘가에 혼자만 안다고 생각했던 은신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앉아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래 봤자 평평한 돌부리에 걸터앉아 땅에 무언가를 그리며 노는 게 전부였을 겁니다. 비가 갠 다음 날에는 소나무 기둥 아래 서서 솔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먹으며 놀았습니다. 고개를 젖히면 나뭇잎 사이로 회색빛 하늘이 보였고, 그 하늘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검푸른 바다가 되었습니다. 솔잎의 싸한 향과 빗물의 비릿한 냄새가 섞여 빈속이 싸르르 아파져 오다 울렁거리기라도 하면,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기억의 출발은 이렇듯 늘 가칠목의 담장을 넘나들며 서성거립니다.

 

 

안동환 (문학동인캥거루 회원·2010년 문학사랑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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