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주인과 함께 불에 타는 꿈을 꾸었지 자주자주 옮겨 다녀야 적응할 수 있어,여기저기 끌려 다녔지 오래오래 살면 곰팡이 꽃이 피지그래서일까, 꽃 질 때,낯익힌 시간이 남긴 부스럼처럼길거리에...

아버지의 유산

아버지는 가진 게 없어도 가진 게 많은 사람 같았다. 당신의 복장은 언제나 깔끔하고 정갈했다. 각지게 다린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를 입었다. 구두는 항상 반짝반짝 빛났다. 누구에게도...

이별

내일 또 한번의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미키를 아들과 함께 목욕시켰다. 몇달 전 예상외로 커져버린 수술 때 휘청거리며 제대로 걷지 못해 힘들어 했던 미키의 모습에...

파통가 증언

불현듯, 젖어 드는 마음이었다. 파통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오랜만에 젖어 드는 마음에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내 위주의 경험과 공상으로 기대감을 채워나갔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시의 한 줄이 부고처럼

네비게이션 없이 접어든 길눈 덮인 노학동 화장터였다 곳곳에 터진 눈꽃을 감탄하며조금은 검게 보이고 싶은 까치 비슷한 것도 먹구름도 없는하늘 아래에서 슬픔이 전부인 눈물방울이순진무구한 방향으로 눈부시게 떨어졌다 언제부턴가...

40년 40일

40일 동안 아내가 미국과 한국으로 여행을 갔다. 이럴 때 그녀는 항상 냉장실과 냉동고 구석구석을 가득가득 채워 놓고 갔었다. 김치와 깍두기, 파김치와 불고기, 간장게장과 사골국,...

이름

사랑이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는 이름이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 이름은 그냥 할머니인 줄로 알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던 조선시대...

겨울, 서울

키재기하듯 높다란 아파트 숲성난 한풍들 회초리 들고 몰려가고뿌루퉁 잿빛 하늘은미세 먼지에 재채기 쏟아낸다 곡예 하듯 빠져나가는 좁은 골목 미니 트럭사연 담은 갈색 가방 오토바이 재촉한다 인기척이...

책 속에서 나를 찾다

나에게는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이 있다. 세월이 지나도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보다 더 나은 ‘나’로 발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다.막연히 이러한 생각, 바램만...

롱핀

그는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다는 듯이 얼굴의 반을 물 위로 내밀었다. 나는 분명 무슨 말을 그에게 들은 듯 했다. 두려움 없이 내게 다가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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