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추억

두어 달 전부터 우리 집 우편함 밑에 키 작은 코스모스 몇 개가 피기 시작하더니 현관 앞을 풍성하게 채웠다.

빨강, 연분홍 그리고 하얀 얼굴들이 아침저녁으로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오늘은 유난히 시원한 꽃 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침묵의 가슴이 뻥 뚫리듯 몸이 가벼워진다.

언제 보았던가.

20년만에 호주에서 처음 마주한 코스모스. 하늘하늘 흔들리는 정겨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먼 옛날 그때 보았던 코스모스가 아른거린다.

 

신혼 초 교직생활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강원도 산골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무슨 연유인지 교직1기 공채 수락조건으로 배정받은 10년 근무지를 송두리 채 탈취당한 순간이었다.

인맥과 학·혈연 문화가 판치는 것에 대해 주체하지 못하는 배신감과 분노로 부임했고, 밤이면 술로 방황하며 너무 힘들게 생활할 때였다.

관사에서 학교까지 홀로 걸어 다니는 허탈하고 무심한 출퇴근 길 좌우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에 다가가 한참씩 꽃 내음을 맡으며 한 가닥 위안(?)이 되고 있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단순하고 청순한 군락들의 하늘거리는 춤, 상큼하고 가벼운 색들의 조화 때문인가?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 퇴근을 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쟁취해 온 나는, 중과부적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무능력한 좌절 속에서, 갑자기 삶을 한가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세상을 가볍고 단순하게, 가족과 즐겁고 평온하게 사는 맛이랄까?

교직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접었다.

‘안빈낙도’ 아내와 두 아들이 관사생활을 하며 함께 지낸 7년의 춘천생활은

가족의 꿈같은 추억으로 가득 찬, 새로운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여름엔 여름 내내 온 가족이 물가에서 텐트생활을 했다.

물놀이와 투망을 치며 매일 매운탕을 먹으며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했다.

겨울이면 자동차바퀴 4개에 체인을 감고 온 가족이 눈 속의 강원도 구석구석, 눈썰매 등을 즐겼다.

움켜쥔 욕심을 내려놓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작년 한국에서 코스모스 씨앗을 준비하려는 아내와 다툼이 있었다.

호주공항 통과를 생각하며 “절대 안 된다”는 내 의견을 무시하고 아내가 몰래 들여왔다는 생각에 “여보!”하고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코스모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부엌에서 총알같이 튀어나온 아내가 “무슨 일이냐?”는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아니, 그렇게 안 된다고 했는데, 걸리면 어쩌려고…” 하며 화부터 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이 “뭔 말이에요?” “지인한테 얻어 뿌린 건데…” 한다.

“지인, 누구?” 하니 “누구라고 하면 당신이 알아요?” 한다. “그렇네…. 알았어, 다녀올 게…” 하고 도망치듯 출근을 했었다.

 

그렇게 난리를 치고 나서, 아침저녁 출퇴근 때마다 바라보는 우리 집 코스모스, 정겨운 눈길을 멈출 수가 없었다.

특히 늘어지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는 나에게 ‘오래된 그 옛날 춘천 관사로 귀가하듯(?)’ 착각하는 평온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더구나 한달 전 체력의 한계*로 은퇴하면서 갑자기 집안의 침묵 속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됐다.

허전하고 구멍 뚫린 마음을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막상 ‘사라진 경제활동과 대화, 무거운 침묵, 통장 돈 나가는 소리’들을 실감하면서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는데.

코스모스 특유의 단순한 모양과 청순한 색들의 조화가 옛 추억과 함께 새삼 친근하게 다가왔다.

앞으로의 생활은 그 옛날 자기들로부터 받아갔던 기억을 되살려 가볍고 단순하게 살아가라는 듯이….

 

지금 코스모스는 호주에서 은퇴 (스트레스) 증후군이 시작된 나에게 쟁취하는 삶이 아닌, 단순하고 조화로운, 평온한 삶을 제시하며, 35년 전 추억 속에서 다시 나타났다. 1년 이상 발버둥치며 넘지 못한 체력의 한계는 더 이상 무능력한 좌절의 절벽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임을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이 움켜쥐는 활동이 아닌, 즐거움과 평온함을 위한 비우는 생활, 꿈같은 시간을 만들어 보자….

‘안빈낙도’ 글쓰기, 여행, 운동, 농사, 요리와 설거지, 청소와 빨래하기… 해볼 일들이 참 많다.

콧노래 흥얼거리는 아내를 상상하면, 코스모스 추억들을 닮아갈 수 있을 것 같다.

 

* 한계 (70세, 매일 8시간 시내버스 운전, 집중력 저하와 졸음운전)는 더 이상 무능력한 좌절의 벽이 아니었다.

 

 

글 / 정귀수 (글벗세움 회원·전직 버스운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