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살해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단편소설 연재)

아내가 자살했다. 스스로 손목을 그었다. 시신에서 흘러나온 혈액 바다에 그 동안 복용해 오던 ‘침팩스’ 캡슐들 그리고 보드카가 병째로 뒹굴고 있었다. 전선 절단용 칼은 시신 아래 깔려있어서 뒤늦게 구급요원이 발견했다. 산불현장에서 야간작업을 마치고 아침에 귀가해서 발견한 안방의 풍경은 마치 You Tube를 보는 것 같았다. 의사는 휴가 중이었고, 나는 무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내…… 아내가…… 죽었어.”

“우리가 동요 부를 나이는 한 참 지났지?” 네가 대답했다.

“뭐, 동요? *월칭 마틸다에 등장하는 유령이나 **버닙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 농담하는 게 아냐, 무어! 제발 장난친다고 생각하지 마.”

너는 어린이집에서 함께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장난으로 듣고 있었어.

“……” 그리고 한 동안 침묵하던 네가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지.

“‘침팩스’에 사람을 죽일 만큼 위해한 성분이 있을 수 있다는 명시가 없잖아.”

“네 말은 맞아, 하지만 내 말은 제약회사가 명시한 내용이 아니라 명시하지 않은 내용을 말하는 거야. 무어, 침팩스를 복용하고 아내가 죽었다니까.”

영안실로 날아오겠다며 너는 전화를 끊었어. 그 순간 기묘하게 떨리던 네 목소리가 음악의 풍경화처럼 선명하게 보여.

 

멀리서 검은 형체가 흔들리며 달려온다. 경찰이 사고 난 내 지프를 본 것이다. 나는 발정난 개처럼 혼신을 다해 모래구덩이를 판다. 가방은 던져 넣고 덮는다. 볼링공처럼 여섯 바퀴 굴렀을 때 경찰이 총을 꺼내 들고 나를 노려보며 코앞에 다가왔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상상이 간다. 게다가 ‘버닙’처럼 냄새까지 난다. 경찰은 귀가 찢어질 만큼 큰 소리로 묻는다. 사람을 죄인처럼 다그치는 중무장한 호주백인경찰이다.

“사고 난 지프가 당신 겁니까?”

“네.”

“운전면허증 주시오.”

나는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선다.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데 기침이 터지면서 목구멍에서 피가 튀어나온다. 경찰이 주머니에 총을 끼운다.

“어딜 가는 길이요?”

개뿔, 경찰의 질문은 나를 미칠 것처럼 불안하게 한다. 갑자기 온 몸에 통증이 되살아났다. 모든 게 잘못됐다. 고통을 멈추려고 ‘퍼듀파머’를 너무 많이 삼켰다. 백 프로 마약단속에 걸리게 생겼다. 갈비뼈는 찌릿찌릿 뒤틀리고, 나는 감전된 것처럼 몸을 움찔댄다. 경찰의 손에는 음주 측정기기와 마약측정 패드가 들려있다. 경찰이 최신형 정밀 음주 측정기를 내민다. 열을 세기도 전에 디스플레이 화면 숫자 위에 괴불 열매 같은 핏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계속 피를 흘린다.

“앰뷸런스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경찰관님. 아내를 만나러 가다 사고를 냈어요. GPS가 고장 나서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지금 아내가 견인차를 에스코트 하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다 잘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터 운전 조심하십시오.”

운이 너무 좋다. 마약 측정을 피하게 되었다. 너는 내 아내의 부당한 죽음을 너의 아내가 죽은 것보다 더 많이 아파하고 통곡했었어. 다국적 L제약회사를 상대로 투쟁하겠다며 와이셔츠의 소매를 한 번 또 한 번 접어 올리던 비장하고 엄숙했던 표정들, 고통에 뒤틀린 표정으로 먼 산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던 일 기억나니?

 

가방을 메고 모래언덕을 오르는 건 고통의 지옥열차를 탄 것과 같다. 캥거루를 치었을 때 내 몸의 피부뿐만 아니라 근육과 뼈에도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오른 발을 들어 올리면 왼쪽 다리가 뒤틀린다. 체중을 오른발에 실으면서 왼쪽 갈비뼈가 욱신거린다. 나는 비틀대며 걸어간다. 땀이 끓는 콩나물국처럼 흘러내린다. 몇 번을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 것인가?

언덕에 오르자 다섯 번째 파도소리가 복수를 재촉한다. 나는 언덕 아래로 빠르게 미끄러져가다 그대로 꼴아 박힌다. 그래도 나는 눈가의 모래를 털어내며 지도를 확인한다. 헉, 300미터 남았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벌떡 일어서려던 나는 픽 쓰러지며 휴대폰을 떨어뜨린다.

아내의 시체부검에서 ‘침팩스’가 다량 검출되었다. 검시관은 의심판정을 내렸다. 처방한 의사도 모른다는 약물의 실체, 반드시 밝혀내고야 말겠다던 네 심각한 결의가 담긴 문장들이 기억난다. 나는 네 문장을 날것으로 그대로 먹어치웠어, 아니 꿀꺽꿀꺽 삼켰던가? 너를 도와야겠다는 다급한 마음에 법원도서관으로 날아갔고 검색을 했어. 호주식품의약품 안전청의 정보에는 침팩스를 복용한 후 의심판정을 받은 800건 이상의 부작용 의심 사례가 신고 되어 있었어. 복용환자들이 우울증세를 경험하다 목숨을 끊은 사례도 100건이 넘었고.

침팩스 신약개발 임상실험에 참가시켰던 사람들을 만나자고 제안을 한 건 너였어. 하지만 불법 체류자 3명은 이미 자국으로 추방해버렸고, 남태평양의 섬나라 참여자들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으며, 아시안 죄수 3명만이 시드니 롱베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걸 확인 할 수 있었지. 임상실험 참여자들을 만나는 일이 암담하기만 하다고 내가 불평을 터뜨렸던 일 기억나? 그때 죄수들이라도 만나보겠다고 네가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였잖아. 넌 제약회사에 분통이 터진다고 그때 울면서 소리쳤어. 그런 와중에 나는 너의 손을 붙잡고 분노를 억누르며 너를 달래려고 허탈하게 웃었었지.

“나는 한 번도 네가 나의 형제가 아니란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거든.”

사람을 믿는 건 옳지 않다고? 나는 비틀거리며 계속 나아간다. 비틀거리다 힘에 부치면 네 발 가진 짐승처럼 기어간다. 그러다 참호를 빠져나가는 병사처럼 낮게 엎드려 포복으로 전진하고 있다. 피를 먹은 청바지와 셔츠가 한 덩어리로 떡져 있다. 피범벅이 된 나는 짓밟힌 두더지 꼴일 것이다. 나아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다리나 몸통에 비하면 그나마 팔이 온전하다. 오른쪽 눈은 완전 실명된 것 같다. 왼쪽 눈을 감으면 완벽한 암흑이다. 두고 봐, 살아남은 내 왼쪽 동공이 너의 심장을 멋지게 적중시킬 테니. 구글맵을 열어 다시 목표물에 외눈을 들이댄다.

빙고! 입가에 흐르는 땀을 핥아 넘기며 멀리 한 점 리조트의 타워를 발견한다. 문제는 소금보다 더 쓴 땀을 삼켜가며 이 속도로 움직인다면 100미터를 가는데 한 시간도 더 걸릴 것 같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딩고처럼 소리친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고, 여보, 나를 믿어. 도대체 내 그리움의 거리가 당신과 몇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거지? 세계의 질서가 약자의 편이 아닌 건 일반상식이고, 그 세계에서 강자가 못할 짓이 없듯이, 약자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뭔가 최선을 다해야 하잖아? 그렇지 않아, 여보.

선인장 가시가 탄피처럼 몸 구석구석을 찔러댄다. 뜨거운 바닥을 도마뱀처럼 두 팔로 버티며 무릎을 구부려 일어선다. ‘퍼듀파머’ 두 알을 꺼내 씹는다, 달리 육체의 고통을 이겨낼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통이 내 죽어가는 느낌을 숫자로 세며 기다린다. 잠시 후 졸음처럼 쏟아지는 현기증, 마약이 내 기운을 회전시키고 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일어서야 해.

일어선다. 내가 해냈다. 통증을 견딜 만한 동작을 골라서 나아가야 한다. 옆걸음질 치는 게처럼, 다리 하나를 잃은 개처럼 절름거리며 사선으로 절뚝절뚝 움직인다. 얼마나 걸었지? 내가 누군지, 나는 나를 잊은 건가. 내가 누군지 몰라도 좋아, 하지만 앞으로 가야한다.

 

나는……, 도착했다. 맵을 확인한다. 빨간 점이 파란 목표물 위에 올라타고 목을 조르는 표시다. 아, 죽고 싶게 행복하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말하더라? 그리고 나는 그대로 무너진다.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다. 그 동안 버티어온 몸이 두통과 한기로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이건 탈진상태로 돌입한 징후다. 한 뼘도 더 이상 갈 수 없다. 호흡도 약해져 간다. 죽을 것 같다. 이대로 나는 죽는 것이다.

“여보, 이제 당신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어.”

“당신, 그만 포기하는 것이 어때?”

“당신의 목소리가 훨씬 가깝게 들려.”

“복수보다 용서를 하는 편이 헐 났지 않을까?”

“그걸 말이라고 해? 제길, 신의 역할이라고? 답? 나의 유일한 답은…… 복수, 뿐이야.”

나는 계속 중얼거리며 호주머니에서 진통제를 꺼내 씹는다. 고작 오 분을 기다리지 못해서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분통을 터뜨린다. 하지만 눈에서 비늘이 떨어질 만큼 정신을 회전시킨다. 이빨이 갈리고 동공에서 불꽃이 일어선다. 현기증과 함께 서서히 정신이 솟구친다.

보안 초소와 ‘STOP’표지판을 쳐다본다. ‘CLOSE’ 팻말과 노란 표지판과 흰색 표지판 그리고 큰 경고판. 제길, 작은 글씨의 경고판을 읽을 수 없다. 하지만 기분이 완전 모호하다. 한 번 죽었다 태어난 느낌이다. 회원전용 주차장 표지판을 내 왼쪽 눈이 아른아른하게 읽는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번쩍이는 황금색의 화려한 글씨들.

“‘아포칼립스 리조트.’ 맙소사, 이건 리조트가 아니라 왕국이다. 거대한 리조트! 어마어마하군!”

내가 큰 소리로 말한다. 나는 내가 지른 큰소리에 놀라 내 입을 틀어막는다. 다행이 침이 말라서 소리가 크진 않았다. 바닷새의 울음소리, 요란한 파도소리,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그리고 아홉 번째 파도가 한 음절씩 내 귀에 걸린다.

CCTV를 피해 편편하게 엎드린다. 리조트는 구글의 위성사진으로 본 것과는 질투가 날 만큼 다르다. 사암 건물은 동화책에 나오는 임금님이 살고 있는 궁전 그 자체다. 경비행기들, 고급 사륜구동 자동차들, 너는 벌써 도착해 있다. 한 눈에 네 버간디색의 지프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내 눈이 아니라 내 심장의 힘이다. 사막과 바다가 부둥켜안고 있는 리조트는 사막에서 솟아 오른 고대 유적처럼 웅장하지만 나는 곧 멸망하는 로마를 상상을 한다.

내 사고체계가 갑자기 황당해진다. 이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세상의 특권을 누리며 사는 견고한 존재들은 남을 해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저들은 세상을 부유하게 하고 지금도 죽어가는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거기다 L다국적 제약회사는 지난 수십 년간 놀라운 혁신을 이루며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명을 구해 왔다. 한없이 친절하고 너그럽고 자애롭고, 호의에 가득 찬 CEO의 표정, 그 어디에도 남을 해칠 수 있는 구석이란 없어보였다. 어리둥절하다. 내가 세상을 뒤집어 읽고 있다. 모호한 적의와 혐오로 더렵혀진 내 영혼이 파열된 유리거울 앞에 서서 광분의 춤을 추고 있는 꼴이다. 혼란한 생각에 당장 미쳐버릴 것 같다. 정신이 홀라당 나가버릴 것 같다.

진통제를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킨다. 뇌가 찌릿찌릿하고 의식의 전류가 무작위로 돌아간다. 갑자기 잠재된 내 의식이 사실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얼음물을 끼얹어 내 의식을 깨운다. 여기저기 고통의 느낌이 머물다간, 내가 기억하는 진실들을 일으켜 세운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은폐된 부정을 떠올리게 해주고 진실을 찾아서 내게 떠먹여준다. 그들이 은폐한 임상실험으로 의사를 오도하고 내 아내와 수많은 환자가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L제약회사 CEO, 의사와 영업사원, 임상실험 관련연구기관의 직원들…… 함께 벌이는 신약 설명회와 연말파티 초대 이메일 정보를 어렵게 찾아냈고, 리조트 정보까지 간신히 사이버에서 확보한 후였다.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멍한 상태에서 너에게 문자를 했다.

‘다국적 L제약회사 CEO를 살해할 거야.’

세 시간 후에 집에 도착했을 때, 네가 돈을 주고 산 폭력배 일당이 네 사주를 받고, 차고에 잠입해서 나를 노리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CEO 대갈통에서 네 대갈통으로 표적이 바뀌게 된 간략한 시나리오라고.”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소리 대신 피가 쏟아진다. 그래도 내 육체는 아직 살아있다. 사각지대를 따라 기어오른다. 제길,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작은 구멍하나 없다. 완벽하게 울타리로 둘러싸인 리조트 내부로 토끼 한 마리 들어갈 수 없어 보인다. 곳곳에 세워진 CCTV를 경비들이 모니터링하고 있다.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사막이 끝나는 바다의 절벽위에 세워진 리조트는 퀸슬랜드 주의 보석이라 부르는 피츠로이 섬이 맑은 날 망원경으로 보이는 곳이다. 5층 건물 꼭대기의 전망대가 피라미드처럼 뾰족하다. 아득한 곳에서 피라미드가 나를 내려다보고 오만하게 웃는다. 잠시 시선을 피하는 내 눈길 가까이 술탄의 양탄자처럼 리조트 입구의 초록색 잔디가 반짝이며 조롱한다.

리조트 안에 있는 네가 내 숨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다행히 모래를 날리는 바람소리 물새소리, 절벽을 때리는 파도가 내 거친 숨소리를 먹어버린다. 나는 안심한다. 본능적으로 가오리처럼 납작 엎드린다. 정결하게 깔린 모래 위로 내 기어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흔적을 남기면 안 되는데, 경비가 보게 되면 금방 경찰을 부를 텐데. (계속)

 

*호주 시인 밴조 패터슨이 작사한 경쾌한 노래. **강이나 늪지, 호수 등에 살고 있다는 호주 도깨비.

 

 

테리사 리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소설가·단편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 어제 오늘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