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살해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단편소설 연재)

넌 나한테 죽은 사람이야. 넌 죽었어.

난 차갑게 미소 짓는다. 라이플엔 내 심장보다 뜨거운 블릿이 곧 장착될 것이다. 팔을 뻗어 가방을 확인한다. 라이플 부품이 담긴 가방은 의자 밑에서 확신에 차 있다. 넌 이제 하늘나라로 곧 꺼질 거야. 햇살이 너무 눈부셔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피부에서 솟아오른 땀방울이 등골을 따라 시내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양쪽 셔츠의 겨드랑이에서 흐른 땀이 무릎에 떨어진다. 심지어 발가락에서도 땀이 흐른다. 세상을 쓸어갈 것 같은 사막의 모래바람이 내 검은 머리칼을 빗질한다. 시야가 뿌옇다. 모래 먼지에 덮인 붉은 흙길을 짓밟으며 구르는 타이어가 탱크 소리를 낸다. 아, 목이 탄다. 사는 건 죽는 거보다 더 힘들어.

당신이 옆에 있다면 ‘피츠로이 섬’으로 데려가 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내가 복수를 어떤 식으로 멋지게 하는지 똑똑히 지켜보라고. 당신의 복수는 나만이 해 줄 수 있거든. 복수도 정의롭기만 하면 인간적이지 않겠어? 부당한 방법으로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피해자가 아무런 권리를 가질 수 없다면 정의도 있을 수 없고, 그럼 인간이고 뭐고 없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여보!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채우고 화장실을 찾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깨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 지경이다. 빌어먹을, 네가 보낸 자객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어. 뺨에는 비단뱀을 문신해 놓은 것 같은 구불구불한 상처가 꿈틀거리고 오른쪽 눈알은 악어의 동공처럼 시뻘겋다. 손바닥으로 개수대의 누런 녹물을 받아 ‘퍼듀파머’ 두 알을 털어 넣고 지프로 돌아간다. 강력진통제 퍼듀파머의 마약성분이 진공흡입기처럼 내 고통을 빨아들일 것이다.

 

그날 차고의 문이 올라가는 양철 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잠시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고 그래서 짐짐했다. 머리를 갸웃거리며 주차를 하려는데 얼핏 검은 그림자가 보였지만 착시라고 여겼다. 시시 때때로 환시나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아내가 죽고 나서였다. 키를 뺀 후 차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발을 내리다가 그대로 뒤로 뒹굴었다. 간신히 일어서려는데 검은 복장의 해골 가면을 뒤집어쓴 자객이 내 얼굴을 내리친 후 곧바로 복부를 걷어찼다. 이번엔 녀석에게 절을 하는 꼴로 꼬꾸라졌다. 자동차에서 한 발을 내리는 자세로는 방어공격을 할 수가 없었고, 둘은 나 혼자 감당하기엔 어마어마하게 체격이 컸다. 징 박힌 구둣발이 꼬꾸라진 내 등을 무지막지하게 짓밟았다. 어깨가 딱 벌어진 자객들 몸에서 풍기는 케밥 냄새가 역겨웠다.

“똑똑히 들어, 살려두는데, L제약 신약 설명회에 껍죽거리고 나타났다간 끝장날 줄 알아.” “목숨만은 지키라고.”

펼친 손으로 목 자르는 경고를 보여주며 말했다. 하나는 새된 목소리였는데 하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 연거푸 피를 뱉어냈다. 금세 상처 부위가 부풀어 올랐다. 오른쪽 눈을 깜빡이자 피가 눈으로 흘러들었다. 피를 훔치는데,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 직감은 적중했다. 폭력배 일당을 보낸 사람이 너란 걸. 엉금엉금 일어나서 자동차를 붙들고 백미러를 보다 소스라쳤다. 눈과 입주위로 피가 흘러내려 드라큘라 같은 얼굴이 도저히 나 자신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이건 내가 아냐. 37년의 내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고. 나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너를 생각하다 흐느낌이 오열로 변했다. 샤워기에서 분부하는 물줄기처럼 눈물이 얼굴의 피를 씻어 내릴 동안 오래오래 흐느꼈다.

복수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다국적 L제약회사 CEO를 향하던 복수의 블릿이 한 바퀴 회전해서 너를 향하도록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장소와 기회를 물색하던 중 신약설명회 정보를 어렵사리 찾아냈다.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그 시간 그 장소가 그대로 멋졌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후 배꼽이 아프도록 통쾌하게 웃었다. 복수하는 장면을 남김없이 아내에게 보여줄 수 있고, L제약회사 CEO에게도 똑똑히 보여줄 수 있고. 네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CEO가 뭐라고 생각할까? 나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지 않겠어? 광기로 치닫는 내 정신은 벌써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놓고 있는 기분이다. 정신은 빠르게 고무되어 간다.

“떠날 때가 되었으니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 나는 죽으러 너는 살러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신만이 알고 있다.” 나는 노래를 부른다.

너의 존재를 떠올릴 때마다 내 심장에서 자동으로 노래 한 구절이 흘러나온다. 희미하게 살인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그나저나 당신, 정말 죽어버린 거야?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거든. 부글부글 끓는 적의와 복수심 그리고 내 얼굴 상태를 감안하면 표적물을 향해 그럭저럭 담담하게 가는 중이다. 시야가 뿌예서 왼쪽 눈으로 길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모래바람이 복수심에 떨고 있는 내 영혼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온다. 신경이 칼날처럼 곤두선다. 라이플이 든 가방을 싣고 경찰서와 관광안내소가 있는 길을 지나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 사륜구동으로 달리는 지프도 사막에서는 도무지 맥을 못 춘다. 지프가 전쟁영화 ‘퓨리’에서 마지막 살아남은 탱크처럼 처참하게 비틀댄다. “죽든지 살든지 해 보는 거다.” 브래드 피터가 영화에서 외친 대사다.

 

61구경 윈체스트 라이플을 닥웹에서 구입했다. 토르 브라우저를 설치하는 작업은 꽤 복잡했지만, 해 낼 수 있었다. 문자로 채팅을 한 후 세 시간이 채 못 되었을 때 칼빈베이 으슥한 절벽 아래 놈이 나타났다. 놈은 약속을 칼같이 지켰다. 평소 유에스 사이버로만 알고 있었던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닥웹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연계되어 있었다. 현금지불을 하고 가방을 받아 들었다. 69개의 라이플 부품과 노란 표지의 핸드북 그리고 스크루 드라이버와 소형 망치가 가방에서 튀어나왔다.

라이플은 176cm 내 키에 적절했다. 익명의 무기딜러는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조립을 하자마자 저격자세를 취해보았는데 팔을 누르는 무게나 기능과 작동에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의 피스톨로 사격을 해 본 경험이 있지만 라이플과 피스톨은 방아쇠에서 느껴지는 손가락의 감각부터가 사뭇 다르다.

올빼미처럼 밤을 새며 라이플의 조립과 탈피에만 몰입했다. 얼굴과 몸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도 잊고서. 사람의 왕래가 없는 오지의 유클립투스 숲으로 가던 날은 장님처럼 손가락의 촉만으로도 조립과 탈피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세 시간 사격훈련을 했고 적중률에 만족했다. 숲에서 빠져나오기 전 잠시 서서 심호흡을 했다.  총알을 맞아 벌집 같은 마네킹을 눈 아래로 째려보며 한 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남자 마네킹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는 자동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 달렸다.

 

모래바람은 지프보다 더 힘이 세고 애보리진 간이스토어는 모두 문을 닫아걸었다. 캐언즈의 주민들이 몽땅 사막 아래 들어가 숨은 모양이다. 사막의 짐승들만이 뜨거운 발바닥을 견디며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길 위로 튀어나오는 캥거루를 발견하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지프는 신음을 내뱉으며 캥거루를 덮쳤고, 캥거루와 지프가 한 덩어리가 된다. 지프는 빙그르르 돌면서 긴 가장자리로, 길가의 선인장 사이에 처박힌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 커다란 선인장을 껴안고 단말마를 토해내고 있다. 시간개념과 균형을 잃고 눈을 감는다. 연기와 짐승의 살이 타는 냄새가 나를 덮친다. 모든 것을 덮친다. 그러고… 암전.

정신이 들었을 땐 오직 정적뿐이다. 그리고 고통, 아직도 선인장이 내 몸 위에 올라타고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건 기적이다. 이런 극적 상황에서도 내가 살아 있는 것이다. 선인장 가시가 탄피처럼 내 몸을 찔러댄다. 손이 안간힘을 써서 호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낸다. 휴대폰에 약봉지가 딸려 나왔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삼십 분 정신을 잃은 것이다. 약 봉지의 강력진통제 ‘퍼듀파머’가 유혹한다. 물도 없이 두 알을 씹어 넘긴다. 진통제가 내 고통을 빨아들일 동안 숨을 거칠게 마시고 뱉기를 계속한다.

진통제에 고통을 의지하고 있는 내가 저주스럽다. 기니피기로 변한 내가 의사가 휘두르는 수술용 칼을 향해 항문에 체온계를 꽂고 배를 쑥 내밀고 있는 꼴이다. 거기다 피에로처럼 키득대기까지 하고 있다. 고혈압, 콜레스테롤, 불면증, 소화불량, 신경안정제…… 일곱 가지 알약을 매일 세 번씩 목구멍에 털어 넣으며 살아가는 나, 그리고 다국적 제약회사와 의료기관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버린 운명을 생각하자 분노가 들끓는다.

 

내가 너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했다. 너를 향한 내 기대는 컸고 의심이라니, 말도 안 돼. 그날따라 동네 펍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어. ‘멜브론컵’ 경마대회 날이었으니까. 성장한 여인들이 화려한 모자를 쓰고 모니터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었지. 나는 네가 타나날 출입문을 바라보다가, 외쳐대는 탐욕스러운 여인들의 확신에 찬 표정을 쳐다보다가 했었지. 출입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너는 약속시간 보다 한 시간 늦게 나타나 손을 내밀었어. 축축한 너의 손바닥에서 일 년 전보다 몰라보게 체격이 단단해진 감이 잡히더군. 우리 아버지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너의 아버지를 내게 소개하던 장면 기억나?

“큰아버지시다.”

나에게 큰아버지가 생겼다. 큰아버지 회사의 하청을 받아서 사업을 하는 아버지 덕택에 이민 2세인 너와 나는 마치 형제처럼 성장했었지. 대학을 졸업하고 너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되었고 나는 전기기사가 되었고.

“잠은 좀 자는 거야? 얼굴이 말이 아닌데.” 네가 말했다.

“아내의 흡연 때문에. 아기를 낳기로 했거든. 이번에도 담배를 못 끊으면 동반자살하려고.” 나는 과장되게 웃었다.

“그래? 그거 내가 도와주지 뭐. 새로 출시한 신약인데 성공할 수 있어. 그 약으로 담배를 못 끊으면 내가 오페라 하우스 지붕에서 바다로 다이빙 할게.”

너의 확신에 찬 대답이 내 머릿속에 흡수될 동안 잠시 호흡을 중지하고 기다렸지. 너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치 말에게 채찍질하는 것처럼 팔을 휘젓고 소리를 질러대는 여인들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었잖아. 그리고 갑자기 네가 말을 아꼈던 것이 기억나?

다음날 아내는 네가 소개 해 준 전문의를 찾아 갔었고, 의사는 아내에게 신약 ‘챔픽스’처방전을 내렸어. 복용 나흘째부터 약간의 환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었지. 지거 벼룩처럼 작은 글씨가 빽빽하게 적힌 긴 설명서 앞 뒤 어디에도 정신과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설명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어. 우선 아내는 잠을 자지 않았고. 복용 2주가 지나면서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어. 집안에 틀어박힌 채 더럭더럭 화를 냈었지. 의사는 담배를 끊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일침 했고. 아내가 대낮에 유령의 얼굴이 창문에 붙어 있다고 소리를 쳤을 때도, 금단의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통과의례라 믿었어.

보이는 것이라곤 유리조각과 선인장뿐이다. 살에 박힌 가시가 내 혈관의 피를 뱀파이어처럼 빨고 있다. 청바지와 셔츠 아래로 피를 흘리고 있지만 피 흘리는 게 그다지 겁나지는 않다. 선인장 가시 제거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신의 선물이다.

지프의 시동을 걸어보기로 한다. 움푹 팬 문의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긴다. 나는 창틀과 함께 뜨거운 모래밭으로 날아가 떨어진다. 캥거루 피, 내 피, 그래도 나는 살아 있다. 엉금엉금 기어가 의자 밑에서 라이플 부품 가방을 끌어낸다. 버려진 지프를 경찰이 발견하게 되면 골치가 아플 텐데.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말이지.

나는 날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 육 개월이 흘렀지만 하늘나라에선 깜깜 소식이다. 오늘 보내게 될 마지막 문자를 생각한다. 아내의 휴대폰을 켜고 아내에게 온 SNS를 확인한다. 아내의 지인들이 보낸 읽지 않은 두 개의 이메일과 다섯 개의 톡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예고에 없던 울음이 폭발한다. 아내가 죽은 사실을 모르는 지인들이 무지무지 그립다. 미쳐버릴 것 같은 고독이 몰아친다. 그것들에 답하고 싶어 손가락이 간질간질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으며 비밀을 지킨다. 여보, 중대한 부탁이 있는데, 꼭 들어줘야 돼. 오늘 마지막 문자 때 알려 줄 거야.

구글맵을 열어 확인한다. 아, 이건 정말 운명이다. 너를 하늘나라로 보낼 운명이 다가오고 있다. 목표물이 1킬로 지점에 있다. 너는 내 손에 죽은 사람이야. 너는 죽었어. 힘내라고? 그래 힘낼 거야. (계속)

 

테리사 리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소설가·단편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 어제 오늘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