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게 사는 것

전당포 (典當鋪)란 물건을 담보로 잡아 금전을 빌려주는 곳이다. 사채업의 일종이며 최근에는 캐싱 (Cashing)이라는 용어를 상호에 쓰기도 한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와 전당포 형태의 사채업을 시작했다. 구한말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일반 서민이 신용으로 금전을 빌리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당시 개인이 금융기관의 대부조건을 만족시키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전당포는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유일한 장소였다. 먹고 살기 힘든 서민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저당 잡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높은 이율의 전당포는 고리대금의 몸통이었다.

전당포 이용자는 거의 다 못사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전당포는 대부분 가난한 동네에 자리잡았다. 대출금은 잡히는 물건 시세의 1/4이 넘지 않았다. 물건을 잡히고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임을 감안한 계산이었다.

전당포업자들은 전당포는 서민들의 편익을 도모해주는 친 서민 금융업이라고 입에 침을 튀기며 헛소리를 늘어놨다. 그러나 솔까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전당포는 가난한 사람들 등치는 떳떳하지 못한 악덕업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Fyodor Mikhaylovich Dostoyevsky 1821~1881)의 장편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빈민가의 지저분한 하숙방에 틀어박혀 먹을 것을 걱정하는 청년이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고리대금업자인 전당포 주인 노파가 있다. 그는 전당포 노파를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가는 사회의 이 (蝨)일뿐이라고 단정한다. 그는 도끼로 노파를 살해한다. 노파를 살해한 후 그는 “나는 인간을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주의 (主義)를 죽인 것이다”라고 자조 섞인 독백을 한다.

물질주의가 모든 것을 덮어버린 지금, 나는 삶의 지혜와 영혼의 울림, 존재의 가치, 인간성 회복, 뭐 이런 거창한 것들을 반추하고 싶어 <죄와 벌>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그럴 깊이도 부족하고 그럴 마음도 없다.

다만 나의 청년시절에 읽었던 그 소설이 나의 신념과 세상의 원칙 사이에서 나를 갈등하게 했고, 또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향에도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글 같았지만 소설 <죄와 벌>은 나의 청년시절에 내가 지키고 싶은 인간의 가치에 대해 깊은 간섭을 하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민 와서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친구가 오클랜드 저쪽, 가난한 섬나라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사는 동네에서 캐싱사업을 한다고 자랑했다. 그때만해도 그게 무슨 사업인지, 장사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기회가 돼 그의 사업을 구경갔는데 그게 바로 전당포였다. 잡아놓은 물건들에는 삶의 고단함이 짙게 배어있었다.

나는 내심 당황스러웠다. 하필이면 내가 증오하고 경멸하는 ‘그런 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혹감을 감추며 그에게 “찾아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넘쳐날 텐데 하필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이거 하면 그저 밥은 먹고 살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나를 더욱더 당혹스럽게 했다. 밥 먹고 살 수 있다면 아무 일이나 해도 되는 것인가?

시쳇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 등치고 주머니를 긁어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로 인간의 가치는 떳떳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고국에서 한때 흥했던 ‘심부름센터’라는 것이 있었다. 말이 좋아 심부름센터지 남의 뒤를 들춰내는 떳떳치 못한 일이다.

저간에 한 교민신문에서 광고를 봤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영어 잘 못하고, 운전 잘 안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대신 심부름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건당 수수료랑 1년 선납회비(?)가 소개돼 있었다. 한마디로 넉넉하지 못한 노인들 주머니 속을 기웃거렸다. 쓴웃음이 나왔다. 이건 떳떳한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사업’거리가 아니라 이웃이 베풀 수 있는 온정 아닌가?

주저리주저리 말하지 않겠다. 힘든 노인들 대상으로 이런 ‘사업’ 하지 말라! 의도는 알 수 없지만 행위의 결과는 떳떳하지 않은 거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