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증후군

<여덟 단어>라는 책이 있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왜 어떤 직함 앞에서 약해질까요? 판사, 의사, 변호사, 교수… 우리는 왜 어떤 대학 이름 앞에서 약해질까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그리고 우리는 왜 어떤 회사 이름 앞에서 약해져야 하는 걸까요? 삼성전자, 조선일보… 등.

솔직해집시다. 누구든 한번쯤 이런 것들 앞에 약해진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을 겁니다. (중략) 어떤 직군, 직함 등 그 앞에서 우리가 약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문턱증후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그 문턱만 들어서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잘못된 증상이죠.

우리는 어느 대학의 문턱만 넘으면, 어느 회사에 들어가면, 어느 직업을 갖게 되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판사가 되는 순간 인생이 바뀌고, 의사가 되는 순간 인생이 바뀌는 것이죠.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유독 우리나라가 심하다는 생각입니다. 문턱만 넘으면 의심 없이 인정을 해줘요.”

맞는 말 아닌가? 내가 사회초년병일 때 고등학교동창 중에 중앙정보부 (현 국정원)에 다닌다는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고등학교 다닐 때 주먹질은 좀 했지만 행동이 개차반이어서 가까이하는 녀석이 별로 없었다. 헌데 어느 날 동창모임에 나타나 중앙정보부에 다닌다고 했다. 중앙정보부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동창들은 녀석을 환대했다. 녀석은 화제의 중심에서 우쭐댔다.

녀석은 정보기관의 비밀이라며 자신의 소속을 밝힐 수 없다고 했지만 동창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후에 알았지만 녀석은 중앙정보부에 다니지 않았다. ‘뻥’을 친 거였다. 중앙정보부에서 일한다는 말 한마디에 굽실거린 자존심이 낯뜨거웠다. 우리는 문턱증후군 환자였던 거다.

사람들은 판사, 검사, 의사 등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찬사를 보내는 경향이 짙다. 사회적 신분 하나만으로 최고의 인간 군으로 인정한다. 판 검사라고 해도 형법, 민법, 상법 등 전담분야별로 다른데도 법의 만능전문가로 인정한다. 전문계통에는 밝을지 모르지만 다른 계통에는 어두울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의사라고 하면 외과인지, 내과인지, 부인과인지 관계치 않고 만병을 치료해주는 ‘화타’ 같은 존재로 간주한다.

인간성 좋고 겸손한 ‘일류대학교’ 출신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일류대학교만 나오면 세상사 모두 터득하고 통달했다는 듯이 으스대는 인간이 의외로 많다. 전공이 경제학이거나 기계공학인데도 역사, 문학, 철학, 법학, 농학 등 온갖 분야에 통달한 만물박사처럼 앞장서서 설쳐대는 거다. 문제다.

헌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일류대학 출신이니 ‘그럴 거야’라고 인정하는 문턱증후군에 빠져있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존심의 문제다. 문턱증후군에 빠져 자존심을 스스로 깔아뭉개고 있는 거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콤플렉스와 아부 근성에 젖어 자신을 스스로 폄하하고 있는 서글픈 자화상인 거다.

뿐만 아니다. 이름 앞에 무슨 박사 칭호 하나만 붙으면 그를 만능지식인으로 착각한다. 그의 전공분야가 문학, 경제, 철학, 역사 어떤 분야인지 관계치 않는다. 인간성이 지저분한지 위선 인지도 개의치 않는다. 그저 ‘박사’라면 훌륭한 인품을 가졌고 모르는 것이 없고 틀리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교민사회에 경영학박사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지방대학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자기소개를 할 때 ‘서울대학교 졸업, 경영학박사’라 한다. 사람들은 으레 그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노린 얄팍한 꼼수다.

교민단체는 행사 때마다 그에게 역사, 철학 강의를 의뢰하고, 교민자녀들의 문학작품, 미술작품의 심사도 부탁한다. 그는 교만에 빠져 거부할 줄을 모른다. 콧구멍 같은 교민사회에서나 통할 코미디다. 어이가 없다. 그러다가 교민노래자랑 심사도 할 것 같아 불안하다. 심각한 문턱증후군이다.

문턱증후군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폄하하며 아부 근성과 노예근성에 빠져있는 서글픈 인격의 문제다.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깔아뭉개는 한심한 인간이 되지 마라!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