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움의 근저엔 아픔이 숨어 있고 향기로움은 주변을 즐겁게 하고 치유합니다

용연향 (龍涎香)을 아시나요? 그것은 세상에서 제일 비싼 향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용연향은 고래로부터 나옵니다. 용연향을 만들기 위해 고래를 잡아 상처를 입힙니다. 굶기고 찌르고 고통을 가하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고래의 체내에서 연고 같은 액체가 흘러나옵니다. 특히 고래의 코와 입에서 이 연고 같은 액체가 흘러나와 그것이 가장 좋은 향수가 됩니다.

 

01_상처는 별이 된다

상처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고래의 몸부림이 세계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향수를 만들게 합니다. 상처는 분명히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처를 잘 치료하면 우리 인생이 그로 말미암아 굉장히 깊어지고 이해력이 많아지고 향기로운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상처를 그대로 내버려 두느냐,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에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행복은 육체를 위해선 고마운 것이지만, 정신력을 크게 기르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그 상처를 디딤돌로 삼았을 때입니다.

“상처는 별이 된다”는 서양격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한 아픔과 고통, 상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 큰 별이 되는 것입니다. 처절한 병상생활을 오랫동안 한 사람은 사람은 환자들을 사랑합니다.

그 옛날 찢어지도록 가난에 시달렸던 사람은 가난은 사람을 현명하게도 처절하게도 만든다는 사실을 압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겪기라도 한 듯이 온갖 슬픔 속에 잠겼다가 헤어난 사람은 슬픈 사람을 위로하게 됩니다.

 

02_하나님은 메달이 아닌, 상처를 보신다

그 질곡의 상처가 오히려 향기롭게 되고, 아름다운 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메달, 학위 혹은 졸업장이 아니라, 당신의 상처를 보신다”는 말도 있습니다. 치료하지 못한 상처는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으로 남아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오지만, 치료받으면 받을수록 그는 더 아름다운 별이 되고 향기롭게 됩니다.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기막힌 표현에 무릎을 쳤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운운하는 진부한 표현보다 얼마나 고상하고, 세련미가 넘칩니까?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바로 구구절절한 그 시인의 삶에서 토해낸 ‘고통의 향기’ 혹은 ‘상처의 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듯이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식물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것 중에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요? 너무나 역설적인 것은 늘 아픔 속에서, 아니 늘 아프기 때문에 향기가 난다는 사실이지요.

인간이 좋아하는 ‘피톤치드’는 나무가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내는 물질입니다. 나무가 아파서 내는 향기를 우리는 수목원에서 마시고 치유를 받습니다. 이처럼 향기로움의 근저엔 아픔이 숨어 있고, 향기로움은 주변을 즐겁게 하고, 치유를 합니다.

 

03_사람 앞에 웃고, 하나님 앞에 울라

그러니 고통과 상처가 우리에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치료 안 할 때 나쁘지 치료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처와 고통은 하나님 앞에 끝까지 겸손하게 하고 타인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소중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오래가는 상처와 울분이라 해도 그 요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세 가지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매사를 자기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기 기분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것, 원망 넋두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실망감은 주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찾아옵니다. 남에게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이 그 상처를 자꾸 끄집어내는 바람에 새로운 출발을 놓치는 기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소한 것 때문에 수많은 상처를 입습니다. 이렇게 상처를 입는 데는 교회출석이나 신앙의 유무와는 거의 상관이 없더군요. 교회에서도 제일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누구누구에게서 상처받았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옮길 때도, 토라질 때도, 때와 장소와 대상과 이유를 불문하고 ‘상처받았다’는 말로 자신을 합리하고 다른 사람을 ‘천하에 몹쓸 사람’으로 단칼에 정리하고 맙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들은 사소한 것을 모두 다 이해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미움은 용서하고, 분노를 크게 강하게 내려 쪼이는 열과 빛에 증발시켜 버리지요, 마음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주님 앞에 드러내놓고 치료받고 변화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별처럼 반짝입니다.

그 비결은 ‘사람 앞에 웃고, 하나님 앞에 우는’ 것입니다. 물론 상처를 입으면 당연히 아픕니다. 그리고 상처는 반드시 그 흔적을 남깁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아프다고 소리칠 때 듣기 싫다고 그 사람에게 화를 내면 당연히 안 되지요.

그 소리는 ‘이해와 사랑’이 그리워 소리치는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지요.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흉터를 보고 웃습니다. 그러나 그 흉악한 흉터가 있기까지 그가 앓았던 상처를 이해한다면 결코 그 흉터를 보고 고개를 돌리거나, 찡그리거나, 웃거나, 남에게 풀어놓으며 도시락 반찬 통에 든 오징어처럼 ‘씹어댈 수는’ 없습니다.

 

Image result for 송기태 알파크루시스글 / 송기태 (상담학박사·알파크루시스대학교 글로벌 온라인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