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

나에게는 두 개의 파타고니아(Patagonia)가 있다. 하나는 물론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남쪽 지방에 걸친 거대하고 황량한 대평원이다. 다른 하나는 등산갈 때마다 메고 다니는 내 배낭을 생산한 브랜드 파타고니아이다.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는 파타고니아에 처음 발을 들이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시작점이다. 파타고니아는 어디서 시작할지 결정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파타고니아 전체가 아르헨티나 땅이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들도 사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부심강하고 떠벌이기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인지 아르헨티나 쪽의 파타고니아에는 사막과도 같은 황무지가 칠레 쪽보다 많은 편이다. 칠레는 파타고니아 알짜배기 땅 사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다. 조용하게 실속 챙기는 칠레인들답다. 땅의 기운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파나고니아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도로가 잘나있을 뿐 아니라 숙박 시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고개에 접어들면 우뚝 솟은 세 개의 봉우리가 나타나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듯 하다. 등산길이 잘 개발되어 있어 등반의 난이도에 따른 선택 여지도 많은 것도 장점이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하이킹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과나코*무리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야생동물이 가까이 존재한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도로에서 움직이지 않는 여우도 만나고 숲 속으로 사라지는 푸마의 뒷모습도 보인다. 남반구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한국의 겨울이 이곳의 여름이다. 1월 한여름에도 웅장한 화강암 봉우리에는 거대한 빙하와 만년설로 덮여있었다. 산속에 있으면서도 남태평양 바닷물보다 더욱 연푸른 빛을 내는 호수들도 곳곳에 있다. 흰색의 눈과 연두색 호수가 어울려 뿜어내는 조화는 투명한 자연이 보여주는 최고의 배색이다.

파타고니아는 거인이라는 뜻의 파타곤(Patagon)에서 유래된다. 눈 속에 남아있던 거대한 발자국 때문에 유럽인들은 이곳 원주민들이 거인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큰 발자국은 원주민들이 신고 다니던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두터운 신발 때문이었다. 파타고니아의 원주민들은 현재 한 명도 남지 않고 몰살되었다. 호주 타스마니아의 원주민들과 비슷한 운명을 맞은 셈이다. 원래 추운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신체적 조건과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이들의 저항도 다른 지역보다 더 컸다고 한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다는 원주민들의 사진을 보았을 때 가슴이 내려앉았다. 나와도 피를 나눈듯한 얼굴이었다. 남태평양인 들의 모습도 약간 있지만 아시아인의 외모가 훨씬 강했다. 남미전체에 남아있는 유럽 제국주의 식민지 찬탈의 흔적을 보면서 무거웠던 내 마음에 바위 하나를 더 얹어놓는 듯했다.

제국주의자들은 이 땅을 떠났지만 아직도 찬탈은 계속되고 있다. 땅이 다 마를 때까지 광석을 파헤치기 때문이다. 칠레의 북쪽 지역에는 핸드폰의 소재가 되는 리튬과 구리 광산 산업 때문에 강이 마르고 땅이 갈라진다. 파타고니아 역시 광맥을 많이 갖고 있어 항상 위협을 받는다.

정치 경제적으로 항상 남미국가에 위협을 가했던 백인들이었지만 큰 선물을 준 사람들도 있다. 노스 페이스(The North Face)의 창업주였던 미국인 더글라스 톰킨스(Douglas Tomkins)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밀림 팔십일만 헥타르, 대략 미국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세 배에 달하는 땅을 사들여 보존하기 시작했다. 밀림의 벌목을 막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고 나무를 심었다. 무차별적인 사냥과 생태계의 변화로 멸종위기에 몰린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광범위한 자연 보호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톰킨스과 젊었을 때부터 모험을 같이 했던 친구가 세계적인 야외용품 브랜드인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쉬나드이다. 그들은 암벽등반을 같이 하면서 그 경험으로 등산용품을 개발하여 사업을 확장했다. 파타고니아라는 이름도 그들이 피츠로이산(Mt.Fitzroy) 정상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그래서 회사로고에는 피츠로이산 형태가 디자인되었다.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 의식을 항상 염두에 두어 재활용품과 유기농제품을 사용하여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파타고니아는 기업운영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해왔고 자사제품의 무료 수선서비스를 하여 불필요한 소비를 방지한다. 회사의 구호가 ‘망가졌으면 고쳐라’라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환경적인 정책도 거침없이 질책한다. 미 정부의 대기업 구조 정책으로 절감된 세금 천만 달러 전액을 기후변화 정책단체에 기부했다. 정부에 주는 메시지였다.

파타고니아 주민들에게 그들의 이름은 존경 받는 기업가이자 진정한 자연인으로 자주 오르내린다. 자신의 직계 안에서만 돈을 숨기고자 하는 한국의 기업인들을 자연으로 데리고 가고 싶다. 그곳에서 제대로 호흡을 시작하면 그들의 눈이 열릴 것이다. 한 사람의 힘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호주의 산불이 남반구의 반을 돌아 칠레와 아르헨티나에까지 연기와 냄새가 날아갔다고 한다. 세계는 하늘로 바다로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안데스산맥은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내가 살고 있다. 나는 이런 놀라운 경치의 한 부분이었다. 파타고니아에서 돌아와 장바구니를 한 개 더 샀다. 물통도 항상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물을 아끼고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을 실천하는 나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과나코(Guanaco): 남미 자생동물로 라마의 야생종이라고 볼 수 있음

 

박지반 (자유기고가·캥거루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