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반전의 은혜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방법은 모든 사람이 다르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가장 적합하고, 가장 인상 깊은 방법으로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양성을 좋아하신다.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방법도 다양하다.

 

01_은혜는 바라고 소망하는 사람에게 때가 되면서 찾아온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혜의 방법을 모방하려는 생각은 버리라. 그리고 시기하지 말라. 나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은혜를 기대하라!

예수님의 은혜는 우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강퍅하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성령님의 은혜는 거칠고 척박한 사막 같은 메마른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언어로 감히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라고 소망하는 사람에게 때가 되면서 찾아온다. 지난 주에 알아 보았던 38년의 오랜 세월 동안 희망(hope)과 소망(wish)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opportunity)가 왔다. 치료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의 병을 고치셨다.

기적이다. 꿈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이 진짜 현실로 일어났다. 상상만으로만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자, 그는 세상을 다 얻은 행복함과 기쁨으로 껑충껑충 뛰었다. 새롭게 태어났다. 그에게 제2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02_‘그 분이 누군지’에 대해 알아볼 생각조차 못했다

환우의 병 고침은 우연히 찾아오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오랜 인내의 결과였다. 오랜 시간 동안, 소망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몸부림치며 버틴 인고의 결과였다.

환우는 정신 없이 좋아하고 기뻐한 나머지 예수님께 ‘고맙습니다’고 인사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38년 동안 억눌렀던 몸의 긴장(tension)과 스트레스(stress)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는데 무슨 정신이 있겠는가?

‘그 분이 누군지’에 대해 알아볼 생각조차 못했다. 이 정도면 환우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충분히 상상이 간다. 그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반전인가? 얼마나 가슴 떨리는 스토리인가? 혹 환우의 친척이나 환우의 지인들이 요한 공동체 안에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감히 예상치도 못한 엄청난 일을 현실로 만드시는 예수님의 이 짧은 일곱 마디 말씀 (헬라어 원어에서) –‘일어나 돗자리를 들고 걸으시오’(Rise, take up your mat, and walk)– 속에 환우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의 통찰력, 그의 가슴을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의 인자하심, 그의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상해 주시는 예수님의 관대하심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03_ 오랜 인내와 인고의 시간은 예수님의 은혜로 한 순간에 보상받는다

이것이 환우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the best gift)–은혜–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선물(the perfect gift)은 없다. 자신의 부모도, 세상의 어떤 사람도 줄 수 없는 가장 최고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밖에 주실 수 없는 세상의 유일한 선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 분의 십자가 죽음과 보혈로 우리에게도 베푸시는 최고의 선물–은혜–이다.

지금 이 은혜를 소망하고 기대하라. 오랜 인내와 인고의 시간은 예수님의 은혜로 한 순간에 보상받는다. 이 은혜의 바다로 들어오라. 마침내 은혜를 깨닫던 그날, 세상에 이보다 축복받을 일이 없다는 걸 깨달으리라. 다음의 말을 곰삭여보라.

“성경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데(은혜) 강조를 두는 것이지, 결코 도덕적인데 강조를 두지 않는다. 종교는 하나님을, 그분의 은혜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의 진정한 본질은 하나님의 은총을 계시해주는 것에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끝없는 용서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를 즐겨하신다. 은혜는 질식할 것같은 도덕적 긴장에서 인간을 풀어준다.” -폴 투르니에

 

글 / 권오영 (철학박사·알파크루시스대학교 한국학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