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혼신의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을 간구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난 유월, 화엄사에 들렀다.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이 화엄사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지리산 자락이라도 밟아 보겠다는 심사였다. 순천에서 출발한 첫날, 버스 노선을 착각하는 바람에 결국 다음날 외국 관광객처럼 구례역에서 택시를 잡아타야 했다.

 

01_가라앉았던 마음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동안 말끔해지고

이틀을 허비했구나 싶어 가라앉았던 마음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동안 말끔해졌는데, 늘어선 나무들이 뿜어내는 싱싱한 열기 덕분이었다. 매일 이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절의 이름처럼 화사하면서도 마음을 엄숙하고 단정하게 만드는 기운이 내 숨결 속으로 전해지고, 이런 유산을 물려주고 떠난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명치께가 뻐근해왔다.

고마운 마음에 어딘가에 엎드려 절이라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두서없이 드는 동안, 맑은 날에는 섬진강이 보인다는 연기암 암자로 올라섰다.

그러자 눈앞에 이런 곳에 있을 법하지 않은 대형 포스터가 건물 이층만한 길이로 늘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외부에서 법문을 설파하러 오시나?’ 크고 굵직하게 적힌 것을 읽어 보니 ‘고시를 비롯한 모든 시험과 취업, 소원성취’라는 글과 그 밑으로 전화번호가 있다.

그러고 보니 기와 1장이면 ‘래생에 집 걱정을 없게 한다’ 는 광고도 눈에 뜨인다.

 

02_넓은 뜰엔 부처님의 모든 경전을 넣어뒀다는 ‘마니차’라는 탑이

멀리 강의 흐름과 주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넓은 뜰엔 부처님의 모든 경전을 넣어 두었다는 마니차라고 불리는 탑이 있고, 탑을 돌면서 ‘옴 마니 반메 훔’을 한 번 부르면 경전을 한 권 읽은 것과 같은 효험이 있다’고 쓰여 있다.

마니차는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소 마니차 250만원’이라는 현수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죄와 업이 덜해지는 소형 마니차를 집에다 모셔 놓으면 자자손손이 번영한다는 공식이 성립하나 보다.

나도 그런 심정이었지 싶다. 한국에 가면 다른 일을 제쳐 놓고 어느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도원부터 찾아가곤 했었다. 그곳에서는 대개 부흥 강사의 독무대가 펼쳐지는데, 예배의 끝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의 간구, 그리고 헌금 바구니가 도는 것으로 순서가 마무리된다.

대강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작은 사랑방이 있는데, 오전 부흥회에서 받은 은혜가 성에 차지 않는 신도들은 영험한 원로 목사에게 특별 기도를 받으려고 다시 그곳으로 모인다.

 

03_“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정성스럽게 된다”

기도 제목을 말하며 헌금 봉투를 내미는 사람들에겐 누가 들어도 좋은 덕담을 하시지만, 그렇지 않을 때 노령의 목사 말투는 위태롭다.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내가 그렇게 염원했던 일들이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강연에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암살미수 사건을 각색한 영화 ‘역린’이 소개됐다. 영화 속 정조는 ‘중용 23장’을 생의 지표로 삼는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하다 보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배어 나오면 드러나게 된다.’

강사는 스크린 속의 정조를 통해 ‘혼신의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 ‘정성’이라고 정의 내렸다. 무얼 원하는지, 그리고 왜 원하는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뭔가를 달라고 내가 믿는 신에게 떼를 쓰던 지난날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을 간구해야 하지 않았을까.

언제 다시 화엄사에 가게 될지 기약이 없다. 다음에 가게 된다면 시간이 좀 걸린다 해도 노고단으로 향하는 계단을 정성스럽게 올라 보고 싶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