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자씨의 민트 3호

춘자씨의 첫 집.

하나의 거대한 저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열 가구가 다닥다닥 붙은 타운하우스를 보자마자 춘자씨는 단번에 그 곳이 마음에 들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큰 궁궐처럼 잠시 현실에서 꿈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에 빠져 그 중 작은 조각인 그들의 첫 집3호로 빨려 들어갔다. 맨들맨들한 민트빛에서 몽글몽글 페파민트 향이 흠씬 풍기는 듯하다. 앞마당에는 술이 많은 연분홍 플라밍고 꽃무리가 흔들거리며 그들을 반긴다. 안방과 연결되는 베란다에 아담한 찻집을 연상케 하는 고풍스런 빈티지 테이블과 나이테 물결의 나무 의자 두 개가 그녀의 눈을 잡는다. 테이블 중앙에 꽂힌 햇살을 가리는 큰 테라스 양산이 휴양지를 연상시킨다.  그 의자에 앉아 있으면 갓볶은 커피향이 코 끝을 타고 머리 속까지 헤집고 다닐 것 같다. 춘자씨는 집주인이 된다면 그날부터 저 작은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에 잠겨 보리라 상상했다. 버짓에 맞추어 이미 여러 군데의 집을 보고 눈을 낮춘 덕인지 단독 하우스가 아닌 벽들이 줄줄이 붙은 타운 하우스였지만 춘자씨는 그 아담한 이층집이 눈에 밟혀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계약을 했다. 그즈음 남편이 이미 직장을 옮기기로 결정했기에 융자때문이라도 서둘러 집을 구입해야만 했다.

 

전주인이 가구배치를 적절히 해서였는지 상당히 넓어 보였던 그 집은 막상 이사하려니 춘자씨네 짐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침대와 앉은뱅이 화장대와 서랍장을 놓자 안방은 꽉 차서 간신히 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덕분에 차고는 이사가는 그날부터 창고로 쓰였고 당장 쓰지 않는 짐들을 그곳에 차곡차곡 부렸다.

 

부엌과 거실, 세탁실과 차고가 있는 일층과 방 세 칸과 화장실이 있는 이층으로 된 유닛에서 쌍둥이가 태어났다. 타운하우스 특성상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특유의 시끄럽고 왁자함 속에서도 남자 아이들만 넷인 춘자씨 집에서 나는 소음이 가장 컸을 것이다. 춘자씨 옆 옆 집에는 둘째와 동갑인 남자 아이가 살았기에 타운하우스의 공용 앞마당은 유치원처럼 왁자해졌다. 삼년 전, 앞 집에는 삼십 대 초반의 아이가 없는 백인 부부가 살았다. 작고 통통했던 부인은 춘자씨에게 호의를 표하면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사적인 이야기도 나눌 만큼 친해졌다. 하지만 얼마 안가 화가 잔뜩 난 듯 눈이 세모꼴로 변하고 얼굴은 누렇게 떴으며 주근깨는 도드라졌다. 한국 아파트의 층간소음 만큼이나 벽을 타고 창을 넘어 아이들이 내는 고함 소리가 아우성치며 번졌던 모양이다. 그 부부는 커튼을 통해 소음방지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장막처럼 두터운 검정색 겨울커튼을 창마다 치고 춘자씨 아이들에게 겁을 주면서까지 제발 조용히 해 주기를 종용하더니 어느 날 소리없이 이사를 했다.  몇 주 후에는 춘자씨 바로 옆집 노부부 역시 소란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집을 옮겼다. 가끔 앞마당 등받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오수를 즐기던 은퇴한 부부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타운 하우스 단지는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소음과 함께 살아가는 소란스런 터전으로 변해갔다.

 

어쨌거나 민트 3호에서 춘자씨의 네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아이들의 몸이 자라고 키가 크면서 그 공간은 점점 더 작게 느껴지고 반지르르 윤이 났던 외벽은 금이 가고 거무죽죽 때가 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엔지니어였던 그녀의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기술을 배워 전기와 건축 자격증을 땄다. 그이 역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저녁이면 3호로 들어가 고단한 몸을 누였다.

 

이층 층계참에는 앞니가 빠진 개구장이 남자 아이들 셋이 어깨를 맞대고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 속의 쌍둥이와 1호집 아이를 보자 춘자씨는 문득 그 사건이 떠올랐다. 한 살 위였던 1호 집 남자아이와 쌍둥이들은 자주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춘자씨 아이들이 시무룩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이유를 묻자 그집 아이의 로보트 장난감 하나가 없어졌는데, 그 친구의 엄마와 할머니가 대뜸 쌍둥이들을 의심하고 마치 아이들이 그 로보트를 가져간 것처럼 몰아세운 모양이다. 덩치 큰 춘자씨 남편이 얼굴이 벌개져서 그들에게 따져 묻자 그들은 겁 먹은 듯 머뭇거렸지만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에 젖은 눈빛으로 도둑 취급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춘자씨 부부는 쌍둥이들에게 1호 집 출입금지령을 내렸고, 그 날 오후 다른 친구에게 빌려준 것을 잊었던 그 집 아이가 장난감을 돌려 받았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1호집 부모는 사과대신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래도 아이들 셋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서로 어울리고 깔깔거렸다. 반 년이 지나 이사를 나가면서야 그들은 마지 못해 사과했고 춘자씨는 못 이기는 척 그들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씁쓸한 어른들의 행태에 춘자씨는 쌍둥이들이 그 집 아이와 더 이상 교류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된 그들은 아직도 간간히 소식을 전하는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민트 3호에 살면서 춘자씨는 동네 친구의 소개로 베티를 알게 되었다. 바이블 스터디를 베티의 집에서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스터디 멤버가 하나 둘 줄면서 결국 그녀와 춘자씨만 남았다. 나이와 인종, 언어와 환경을 떠나 그들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다. 베티는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여든 중반의 마음이 젊은 할머니였다. 춘자씨가 방문하는 날에는 대단한 손님이라도 되듯이 갈색이 감돌고 크림이나 팥 등을 넣지 않은 윗부분이 오돌도돌 거칠어 보이는 스콘을 구웠다.  생크림과 버터향이 구수하게 퍼지는 베티 집 현관을 들어설 때면 춘자씨는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달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맛이 나는 스콘과 직접 만든 잼과 버터, 연하게 내린 커피나 홍차로 그녀를 맞았던 베티. 이제는 고인이 된 할머니를 추억할 때마다 그녀의 곱슬거리는 백발과 따뜻한 미소, 모락모락 김이 나던 버터향 가득한 스콘이 떠오른다. 그녀는 어린 시절과 처녀 시절의 이야기를 마치 어제의 일인 양 들뜬 목소리로 춘자씨에게 속삭였다. 춘자씨만 보면 수다보따리를 있는대로 풀고 상대방이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던 베티.  그녀는 오랜 시간 어머니와 할머니로만 살아서 자신의 젊은 시절 삶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으리라.

 

민트 3호를 팔면서 춘자씨는 그 집을 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베란다 찻집에서 단 한 차례도 커피를 마셔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는다.

 

 

조나신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