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하나하나 내려놓는다

두 분께 큰절을 올리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예비며느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연실 싱글벙글하신 아버님의 모습에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나? 그날 아버님은 잠깐 나갔다 오신다며 입고 계신 옷 그대로 나가셨다.

 

01_예비시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왔다 날벼락 맞은 나는…

다음날이 추석 명절이라 차례상을 차려놓고 아버님을 기다렸지만 오시지 않았다. 동네 친구분들과 소주 한잔하시고 가셨다는 것이 마지막 행적이었다. 전날 저녁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아버님 등에 업혀 여러 곳을 다녔다. 이제 그만 가야겠다며 날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어둑한 골목에서 손을 흔드시며 가셨다. 그 꿈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님은 통곡을 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다.

온 가족이 아버님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경찰서에 들러 실종신고를 하고 돌아왔다. 시어머님은 서울에 용하다는 점집을 들려 찾아 다녔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곳은 없었다.

온 가족이 허공을 걸어 다니는 공허한 상태였다. 예비시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왔다 날벼락을 맞아 나는 집에 갈 생각도 못 했다.

“너와는 인연이 안 되는 집안이니 정리하고 집으로 오라”고 친정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식사도 못 하시고 울고만 계시는 시어머님을 두고 집에 갈 수 없었다.

 

02_시어머님을 면전에서 바로 볼 수 없었지만 결혼식을

결혼도 하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내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의 결정을 못 했다. 밤이면 수없이 떠 있는 별들에게 답답한 내 마음을 하소연하면 쏟아지는 눈물을 훔쳐야 했다.

3개월쯤 되어 중부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연고자가 없는 시신이 있다며 확인하러 오라고 했다. 동대문 길에 쓰러져 계셔서 어떤 분이 병원에 모시고 왔는데 그날 새벽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경찰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아버님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파주에 있는 곳에 가매장을 해놓았었다. 시신이 많이 부패하여 모셔올 수가 없었다. 화장해서 그곳에 뿌려드렸다. 그때 시아버님 연세가 54세, 시어머님은 44세, 너무 젊으신 나이였다.

새 식구가 인사하러 온 날 그런 불상사가 났으니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나는 그날부터 시어머님을 면전에서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결혼식을 올렸다.

1년이 쉽게 지나가고 아버님 첫 제삿날이 되었다. 어머님은 가게를 나가셔야 한다며 내게 모든 걸 맡기고 나가셨다. 몇 번이고 제사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며 주의를 주셨다.

 

03_49년 동안 다섯 번의 제사 한 번도 소홀하지 않아

생전 해보지 않은 제사상을 어떻게 차려야 될지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겨우 20살, 어린 며느리한테 이런 큰일을 맡겼으니….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시어머님 담가 놓으신 포도주병이 보였다. 마음도 답답하고 심란한데 한 잔만 먹자 하고 시작한 게 달콤한 맛에 홀짝홀짝 한 병을 다 먹어 치웠다.

생전 처음으로 마신 술이 그렇게 달고 맛있는 줄 몰랐다. 일어서다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시어머님이 돌아오셔서 소리를 지르셨다.

제사 준비는 안 하고 술에 취해 자는 철없는 며느리. 시어머님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죄스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내 가슴 속에 자리 잡는 약속이 있었다. 시아버님과 함께 못한 아쉬움 때문에 제사만이라도 내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49년 동안 많은 일을 하면서도 다섯 번의 제사를 한 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때 항상 할아버지 제사와 겹쳐 놀러 갔다가도 5-6시간 걸리는 곳이라도 우린 집으로 돌아와 제사를 지내고 다시 돌아가 편히 연말을 보내고 오곤 했다.

 

04_며칠 동안 힘들었던 순간이 며느리들 손에 빛이 난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님이 항상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우리 조상님들은 배고프지 않으시다며 부지런한 며느리 덕이라며 내 등을 토닥거리셨다. 내 마음에 지주였던 시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며 넌 내 며느리가 아니고 딸이라고 하셨다. 행복하게 살다 간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올해부터는 어머니 한 분 더 제사를 지낸다. 늦은 시간 우리 집으로 오는 손자들이 잠에서 깨 칭얼거리다가도 응접실에 차려진 제사상을 보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의젓해진다.

두 손을 무릎에 포갠다. 할아버지, 아들, 손자들 삼대가 줄을 맞춘다. 어린것들이 곁눈질하며 자리를 잡는다. 방안에는 향내와 촛불 그을음 냄새가 가득하다.

똑똑똑 세 번에 울림에 음식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는다. 빈 잔이 넘치도록 제수를 올린다. 손자 녀석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며칠 동안 힘들었던 순간이 며느리들 손에 빛이 난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하나하나 내려놓는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