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일, 인간 예수가 죽음을 박차고 부활했다

그렇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것이 아니다! 인류 최대의 수치스런 처형인, 예수의 십자가 처형 후 3일이 지나지 않아 스토리의 급반전 (a radical change of strorylines)이 일어났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일, 인간사에서 절대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인간 예수가 죽음을 박차고 부활했다.

 

01_그 순간, 그 그리스도

그가 다시 생명을 회복하고 숨쉬기 시작했다. 현대 의학으로 죽음을 공식 발표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3일이 지나서야 예수가 어둠에서 깨어났다. 이 순간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되는 순간이다.

한 인간 (a human being)이 신의 속성 (divine attribute)을 완전히 덧입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힘있게 통과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이 인간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 (the very Christ)’가 되었음을 온 세상에 공식 발표하는 순간이다.

그리스도는 인간들의 죄를 위해 죽어야 하고, 또한 인간들에게 천국의 영원한 소망을 부어주기 위해 부활해야 한다. 영원히 살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 (메시아)의 요건이다. ‘적그리스도’ (anti-Christ)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02_하나님의 디자인

예수가 인간으로만 머무르다가 죽음과 함께 생(life)을 마감한다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그리스도는 될 수 없다. 그리스도(Christ)는 인간임(humanity)과 동시에 신(deity)이어야 한다.

신의 속성(divine attribute)을 갖지 못하는 그리스도는 영원한 존재(eternity)자로 혹은 영원한 생명(immortality)의 소유자로 예배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멸시와 천대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deity)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인간 예수가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음을 당할 때, 유대 종교지도자들, 로마 군인들, 그리고 사람들이 그를 조롱했던 이유이다. 누가복음 23장 35절은 이것을 잘 표현한다. 통치자, 권력자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조롱하며 말한다.

“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 (the Chritst of God, the Chosen One; 헬라어, 에이 호우토스 에스틴 호 크리스토스 토오우 테오우 호 에크레크토스)이면 자기 자신도 구원할 것이다,”

이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인간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부연설명: 예수 죽음의 내막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은 십자가 처형 당하는 예수를 ‘인간 말종 중의 말종’으로 보았을 것이다).

누가 그를 신의 속성을 가진 그리스도로 보겠는가? 그렇게 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비정상적일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극악 무도한 죄수(criminal)로 보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것이 구약 이사야 53장 3절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멸시 받고(despised) 버림받는(rejected) 그리스도!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자인하신 메시아의 모습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안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인 예수가 선택한 메시아는 본인의 입술로 스스로를 프로모션(promotion)하는 메시아가 아니다. 자신은 멸시와 천대를 받을지언정 묵묵히 하나님의 계획대로 메시아 프로젝트를 수행해가며 소리 없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메시아, 이것이 예수가 선택한 메시아의 삶이었다.

 

03_평범 이하의 비범한 삶

인간 예수가 살았던 그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 풍조(Greco-Roman social trends)는 종교 지도자들이나 교사들이 자신의 뛰어남, 우수성, 우월함을 스스로 프로모션해도 전혀 흠이 되지 않았다. 인간 예수의 삶은 그 당시 시대 풍조에 역행하는, 아니 반대되는 삶이었다.

인간 예수는 섬김 받기 좋아하는 사회풍조에 역류하며 다른 이를 먼저 섬겼다. 아무도 말 걸지 않는 자에게 말을 걸었고, 사회밑바닥 계층 사람들, 소위 기층민중들과 식사하며, 아무도 만지지 않는 자를 만졌다. 그리스도(메시아)다 되기엔 보좌도 없고, 면류관도 없고, 종의 무리도 없고, 병정도 없었다. 그저 태어날 땐 빌린 구유에다, 죽을 땐 빌린 무덤이 그가 가진 전부였으며, 살아생전엔 머리 둘만한 방 한 칸도 없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흠모하거나 관심 가질 것이 전혀 없는 초라하고 유약한 자의 모습! 하지만 내면에는 분명한 사명과 소명의식을 간직한 외유내강의 모습! 이런 인간 예수의 모습은 외강내유의 그 당시 시대 풍조에 일침을 가하기에 충분한 삶이었다.

이것이 그가 선택한 메시아의 삶이었다. 화려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지만 인간 예수의 말과 행동에는 분명 힘과 권위가 묻어났다. 그의 말에는 다른 어떤 스승들도 흉내내지 못하는 위엄과 영향력이 있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다간 인간 예수의 짧은 3년의 공적 행적은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철학의 응집보다 모든 현인의 충고보다 더 인간세계를 부드럽게 하고 더 큰 개조를 불러왔다.

이런 예수의 모습!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이 예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고 내 삶 전체를 드리며 저의 목숨까지도 드리겠노라고 고백하며, 매일 매일 닮고 싶은 인간 예수! 비록 평범 이하의 외모(less ordinary looking person)를 소유했지만, 비범한 일 (extraordinary work)을 감당했던, 사람이었던 예수! 이런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글 / 권오영 (철학박사· 알파크루시스대학교 한국학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