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으로 누군가를 만나, 친하게 이어지는 마력을 지닌 곳…

중년의 일탈을 꿈꿔오던 친구가 드디어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연락이 왔다.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이란 시간 속에 쉼표를 찍어야 할 순간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맘속으로 그녀의 용기 있는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남편과 딸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주부로서 혼자서 외국여행을 한다고 결정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01_시드니 다음으로 생긴, 200년 넘는 역사의 내륙도시

수선화를 닮았던 여리고 고왔던 그녀. 학창시절 나의 찬란했던 젊은 시간들을 함께 했던 친구였다. 그녀도 그 동안 만만치 않은 인생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나름 많은 경험들을 하며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친구가 온다는 소식에 어디를 구경시켜 줘야 할지 마음이 분주해진다. 나에겐10년 동안 살아온 이곳 Bathurst가 그녀에겐 처음으로 맞는 여행지가 될 터이니….

Bathurst는 Sydney 다음으로 생긴 Inland (내륙) 도시로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10년전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의 인상은 아주 조그마한, 한 낯선 마을이었다. 메인 도로만 지나면 한산하고 어두워 저 어두운 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며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그 곳이 내가 10년 동안 살아온 정든 동네가 될 줄이야….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세 시간 떨어진 Bathurst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The big gold panner (커다란 금 캐는 사람) 상이 서 있다. 과거에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부를 좇아 금을 캐려 몰려들었다는 역사적 단면을 보여준다.

 

02_매년 10월 ‘Bathurst 1000 Motor Race’ 자동차 경주

Bathurst 근처인 Hill End나 Sofala에 금광을 캤던 흔적을 아직까지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swagman (여행자)들이 Matilda (호주 민속노래 중 하나)를 부르며 고단함을 달랬을 것이다.

 

‘옛날에 한 즐거운 swagman (떠돌이)가 연못 근처에 야영을 했네

그리고 그는 그의 양철통이 끓기를 기다리며 노래 불렀네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중략)

 

주말이 되면 자주 가게 되는 Mountain Panorama는 이 도시의 상징이다. 오래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낮은 산이라 한 바퀴 도는 데는 걸어서 약 한 시간이 걸린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모습을 보면서 땀을 흘리며 걷고 나면 기분도 상쾌하다.

매년 10월마다 Bathurst 1000 Motor Race라 불리는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데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이맘때면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된다. 이 산과 주변에 한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Bathurst인구도 1만 명 이상 늘어난다.

몇 년 전 자동차 경주를 실제로 보면서 가슴을 쿵쾅쿵쾅하게 만드는 차 엔진 소리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목숨까지도 걸면서 경주를 하는 것일까….

 

03_슬픈 역사 담고 있는 Machattie Park, 지금은 가장 아름다운 공원

Image result for Machattie Park이 기간에 열리는 축하 에어쇼는 Mountain Panorama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지인 집 베란다에서 안락하게 관람하기도 한다. 그 동안 열린 경주 우승자들의 이름은 시청 앞 보도 블럭에 하나씩 새겨지는 것이 관례다.

시청 앞은 또한 골동품 차 동호회원들이 온갖 차를 끌고 나와 골동품 차 쇼를 하는 주말이 되면 시내가 또한 분주해진다. 이 산을 돌고 입구에 있는 National Motor Racing Museum을 들러 자동차 경주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Bathurst는 자동차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도시인 것 같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Machattie Park도 Bathurst의 명소 중 하나인데 이곳은 슬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 극형에 처한 죄수들을 의도적으로 모든 시민이 볼 수 있도록 참수시켰던 장소이기도 했으니….

현재에 와서는 시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가족과 방문객들이 한가로이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결혼식도 가끔 열리는데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게 도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잘 가꾸어놓고 있다.

빅토리아 풍을 담은 이 공원은 특히 봄에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할 수 있고 사시사철 수많은 오리들이 노니는 연못에서 자연과 가까이 교감할 수 있다. 공원 맞은 편에는 Bathurst War Memorial Carillon (전쟁기념탑)이 있고 35개의 종이 울리면 시내에서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데 그 종소리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04_맥콰리 리버… 강아지와 산책, 가족 야외영화관…

Image result for macquarie river bathurst세계 양대 전쟁과 말레시아, 베트남,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호주 국군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볼 수 있으며 매해 Anzac Day 행사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이 행사를 같이 하기 위해 새벽같이 어린 학생을 이끌고 나온 시민들은 분명 평화의 중요성을 후세에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공원 주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 한가롭고 평화롭다.

맥콰리 리버라고 불리는 작은 강줄기가 Bathurst를 지나가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워 가끔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때면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가족들이 야외영화를 보며 연말 분위기를 즐기기도 한다.

다리를 건너면 동양을 연상케 하는 작은 정원에서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도 가끔 본다. Bathurst의 한적한 여유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05_16대 총리 Ben Chifley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가장 추앙 받는 호주 총리 중 한 분인 Ben Chifley는 Bathurst에서 태어났다. 16대 총리를 지내면서 노동당을 대표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지금도 시골인 이곳이 그가 태어났던 해 1885년에는 어떠했을까….

어린 시절을 보내고 기차 운전자로 지내다 그는 총리 자리까지 올라간다. 그가 살았던 집도 현재까지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도시 상수원지인 댐도 그의 이름을 따서 Chifley Dam이라 불린다. 이곳이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인지 수상 여가활동을 하는 시민들은 이 댐을 자주 찾는다.

1870년대 개척자였던 Stewart 집안이 건축한 Abercrombie House는 50개나 되는 방에 30개의 벽난로, 7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스코트 양식을 한 대 저택이다.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Morgan 가족들은 귀신을 보며 자라온 것이 일상이 되었다며 담담히 얘기한다. 관광객들에게 개방해 투어를 해온지도 벌써 올해로 50년을 맞고 있다.

Bathurst 미술관과 도서관은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가끔씩 멋진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접할 때면 로또를 맞는 기분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캥거루 가족을 만났던 흥분된 사건이 알고 보니 일상이었다. 사람들을 멀리서 지켜보거나 이른 아침 캠퍼스를 자기 집처럼 성큼성큼 뛰어다니는 캥거루들은 내가 호주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06_이곳 토박이들과 직장 따라 이사온 이방인들의 어우러짐

Bathurst에 사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이곳에서 태어난 토박이들과 우리처럼 직장을 따라 이사온 이방인들.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르며 평생을 살아왔던 지인이 최근 세상을 떴다. 그는 말레시아에서 이민 와서 자식 하나 없이 부인과 단 둘이서 Bathurst에서 만난 이들과 친하게 지내며 살아왔다.

우리와는 운동을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만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금방 친해졌다. 번듯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아름답게 은퇴한 그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매번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들을 한움큼씩 들고 돌아왔다. 세상 구석구석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던 웃음을 좋아했던 그 분. Bathurst Crematorium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언젠가 다른 저 세상에서 또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미처 다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듣게 될 것이다. 완벽한 타인으로 누군가를 만나 친하게 이어지는 마력을 지닌 곳…. 이들이 서로 어우러져 사랑을 나누는 따뜻한 이곳을 친구에게 온전히 다 보여주려면 며칠은 걸릴 것 같다. 나의 사랑, 나의 둥지 Bathurst.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School 수학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