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시티 퀸 빅토리아 빌딩 산책길

벽은 사방에 있다. 내 밖에 내 안에 그리고 벽 안에 또 벽들…  나는 무수한 말로 무수한 벽을 또 쌓고 있다. 벽들은 서로 잇닿아 담장을 만들고 결국은 미로를 만든다. 미로의 끝에 선다. 또 하나의 미로를 바라보면 어깨 너머 미로들이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다. 그것도 슬픈 단조음의 간격으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미로 끝에서 한 사람이 서있다. 딱히 누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덕목도 없이 서 있는 것은 아닐 게다. 가까이 다가선다. 본다. 최근 페인트를 새로 입힌 퀸 빅토리아 빌딩이다. 시드니 중심가에 있는 퀸 빅토리아 건물은 내게 일종의 산책길이다. 요즘처럼 온도가 섭씨 36도를 웃도는 여름철에는 건물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 선선한 가을 날씨가 나를 맞아준다. 건물 지하상가는 또한 타운홀 지하역과 연결되어 있음으로 시티에서 일하는 나는 원하든 원치 않는 이 건물을 일주일에 두세 번 통과해야 한다.

특별히 바쁘지 않은 날이면 건물 안에 있는 다양한 숍들을 한 번 돌아본다. 산책인 셈이다. 물론 내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어서 눈길을 끄는 장면이 나타나면 거의 본능적으로 장면을 프레임 속에 담는다. 같은 장소임에도 방문할 때마다 다른 얼굴, 다른 모습, 다른 분위기로 나를 맞아주기 때문이다. 상점에서 무엇을 파는지 가게 이름이 무엇인지는 내겐 관심 밖이다. 제한된 공간에 진열된 각종 상품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그냥 스치고 지나는 행인들이 일종의 거리 드라마를 만들어 준다. 마이크로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상념으로 포착하려는 마이크로 히스토리언인가? 아무튼 사진 몇 장으로 나의 산책길이 된 퀸 빅토리아 건물과 그곳을 방문한 낯선 사람들과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본다.

 

포토 # 01 – 여인들

이 가게를 지나갈 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쇼윈도우 안에서 파란 빛을 강렬하게 뿜어내고 있는 형광등이었다. 그 형광 빛은 두 여인, 정확하게 말해서 두 마네킹을 비추고 있다.  두 여인이 서로 바라보며 무언가 비밀스런 말을 주고 받는 듯한 형상이다. 여인들이 걸친 옷은 지금의 패션이 아니다. 영화 ‘그레이트 개쓰비’에 나오는 20세기 초반 미국 동부에 살던 부잣집 여인들이 입으면 딱 어울릴 그런 패션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표정과 자세가 눈길을 끈다. 이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필경 여자끼리의 가십일 것이다. 평생 혼자 살면서 독신철학을 강의하던 동창의 결혼 이야기 또는 잉꼬부부로 소문난 친구의 이혼 이야기, 시어머니에 대한 험담, 은근한 남편 자랑 또는 애인 자랑…  여자들의 대화는 누군가가 중단시키지 않으면 끊임없이 계속될지 모른다. 쇼윈도우 안에는 여자들의 꿈과 욕망과 허영과 사치는 이브의 원죄에까지 이른다.  마치 밀림 속의 모든 나뭇 가지와 잎 위에 앉아서 헐떡이며 마지막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황제 나비의 군집과 같다고 할까? 나도 한 마디 거든다. 여인들이여 그대들이 무엇을 하든지 다 좋다. 그러나 딱 한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자녀는 남녀 구분 없이 하나만 낳아달라고. 지금 지구는 초만원이다.

 

포토 # 02 – 나를 사가세요

쇼윈도우 안에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 여인 셋이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 앞으로 한 아시안계 여인이 지나간다. 프레임 전면의 테이블 위에는 랩텁이 열려진 채 애플 로고에는 불이 켜져 있다. 아마도 직장 동료인 듯한 두 여인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것이 사진이 보여주는 거의 전부이다.

어두워진 실내 조명으로 느려진 셔터 스피드 때문인지 지나가는 여인의 윤곽이 흐르는 물결처럼 처리되어 있다. 여인의 발길 밑으로는 카페트의 회오리 바람 문양이 마치 ‘시간의 강’처럼 흐르고 있다. 10분의 1초 도 안 되는 시간 속에 포착된 마이크로 역사이다. 그녀는 지금쯤 시간의 강 저편의 피안에 닿아 있을 지도 모른다. 환하게 밝혀진 쇼윈도우을 자세히 보면 ‘세일’이라는 작은 문자가 보인다. 그것도 마지막 세일인 모양… 그렇다면 점포정리 세일일 수도.

그렇다면 테이블 위에 랩텁을 오픈한 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정체는? 아마도 가게를 팔려는 숍 오너와 가게를 사려고 하는 미래의 가게 주인? 삶이란 치열한 전쟁이다. 숍을 오픈한 것도 하나의 삶의 전쟁을 치르기 위함이고 숍을 사기 위해 흥정하는 것도 새로운 전쟁을 치르기 위한 숨 고르기이다. 해마다 올라가는 렌트비에 비해 매상은 매년 떨어지고 급기야 여사장은 백기를 들고 가게를 내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싼 가격에 내놓은 가게를 더 싼값으로 후려치기 위해 바이어는 가게에 대해 이런 저런 흠을 잡는다. 그 이후 가게는 새 주인을 맞이 했는지 나는 모른다. 사실 관심도 없다. 그것은 오랜 인류역사를 통해 반복되는 영겁회귀와 같은 삶의 한 단편일 뿐이다. 산다는 것은 치열한 힘겨루기이고 지루한 반복이다. 한 장의 마이크로 역사로서 그 시작과 끝을 다 알 수 없다.

 

포토 # 03 – 이곳으로부터

이 사진은 대칭구도이다. 전경에 의자 4개와 테이블이 위치해 있고 그 뒤로 퀸 빅토리아 건물의 중앙에 있는 회전하는 전시장이 보이고 양 옆으로는 각종 숍들이 즐비하게 도열해 있다. 사진 중경에 보이는 두 여인은 아마도 외국이나 호주의 타 주로부터 시드니를 방문한 여행자일 것 같다. 한 여인의 등에는 대각선으로 쇼울더 백이 걸쳐져 있고 옆에 서 있는 여인은 후드가 달린 자켓을 입고 있다. 멀리 회전하는 원통형 전시관에는 호주의 지도가 초점이 흐린 채로 잡혀져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호주 200년 역사가 몇 장의 그림으로 설명되고 있다. 관광객을 위한 간이 역사 전시관인 셈이다.

호주 역사를 잠깐 짚어보자. 원래 이 땅은 호주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그리고 시드니 CBD가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이오라’ 종족의 영토였으며 이오라의 뜻은 ‘여기에서’ 혹은 ‘이곳으로부터’라고 한다. 1788년 필립 총독이 첫 번째 함대를 이끌고 이곳 시드니 항에 도착했을 때 해변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이오라 국의 26개 부족 중 하나인 가디갈 부족 아이들이었다. 그때만해도 이곳은 가디갈 부족에게 생존을 위한 수렵 장소였으며 또한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을 것이다. 시드니 만을 따라 엄청난 수의 다양한 고기들이 있었고 비치 가에는 캥거루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었을 것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백인들과 원주민들 사이에는 작은 무력충돌이 있었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원주민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영국인들의 총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국인들이 가지고 온 매독이나 우두 같은 질병에 감염되어 원주민들의 인구는 격감했고 드디어 거의 멸종되었다. 북반구에 있는 유럽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구의 반대편에 자리한 호주대륙에서 수십 만년 동안 고립된 생활을 해왔던 원주민들은 서구인들의 질병에 대해 미처 면역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화를 불러왔다.

바로 그 자리에 퀸 빅토리아 건물 (Queen Victoria Building)이 정교한 대리석 조각들을 자랑하며 로마네스크 풍의 건축물로 들어섰고 이 건물이 끝나는 한 쪽 끝 공간에는 빅토리아 여왕 청동상이 제국의 위엄을 상징하는 홀을 들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오만한 자세로 내려다 보고 있다. 말하자면 바로 이곳에서 이오라 국은 사라지고 호주 영연방 국가가 탄생한 셈이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간다. 멀리 호주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저 백인 여인들은 무슨 상념에 잠겨 있을까? 이들도 이 땅의 옛 주인이었던 가디갈 부족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이들에게는 지금의 생존문제 또는 패션 문제가 더 급하기 때문이다. 피정복자는 역사책에서 몇 줄을 차지하지 못한다. 사가들의 관심은 온통 승자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호주의 사가들이 호주의 흑역사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기는 하지만… 글쎄… 도심 한 가운데 홀을 들고서 위엄을 갖추고 앉아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청동상이 존재하는 한, 원주민의 이야기는 그냥 드림타임 전설로 회전하는 원통 전시관 속의 삽화로만 남는 운명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게 바로 사진의 우측 프레임에 홀로 찻잔을 마주하고 있는 백인 청년이 생각하는 바일 것이다. 엥? 테이블 위에 커피잔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토그라퍼는 보이지 않는 사물조차 끌어다가 자신의 사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가? 그런 점에서 역사가와 포토그라퍼는 닮은 점이 많다.

 

포토 # 04 –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대, 라이카

라이카 카메라는 모든 포토그라퍼의 로망이고 꿈이다. 그러나 너무 비싸다. 그래서 나에겐 항상 욕망으로만 남는다. 사진은 퀸 빅토리아 건물 3층에 자리잡은 라이카 대리점이다.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라이카라고 정갈하게 도안된 로고조차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가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프레임에 담았다. 사진을 보니 윈도우에 ‘모우션 블러’라는 레터가 보인다. ‘Blur’는 희미한, 불명료한, 불확실한, 흐릿한 등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고 ‘motion’은 동작, 움직임이란 뜻일 게다. 그러니 합쳐서 ‘희미한 움직임’ 누구의 말인가? 창업주의 말인지, 어느 유명한 포토그래퍼의 말인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라이카에 걸맞는 광고 카피라고 여겨진다.

그렇다. 예술은 희미한 동작으로 표현된다. 과학은 반면에 뚜렷한 선과 면을 갖는다. 예술은 모호한 제스추어를 암시할 뿐이지 그 어느 것도 단정 짓지 않는다. 그래서 라이카는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트’를 추구한다는 뜻을 이렇게 멋진 말로 알리고 싶은 모양이다. 라이카를 잡는 순간 당신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이라 더욱 신비하고 더욱 고귀해 보인다. 일반 카메라 가격보다 턱없이 비싼 가격이 소비자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다음에 이곳을 지나치게 되면 용기를 내어 한 번 들어가 보리라! 나의 욕망의 대상을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고 쓰다듬어 보고 냄새를 맡아 보리라! 결국 우리는 욕망에 힘입어 기동하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던가!

 

포토 # 05 –  삶은 치열하고 진지하고 그리고 무의미하다

퀸 빅토리아 건물은 아름답다. 또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도 유명하다. 건물의 창들은 거의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사람들의 잦은 발걸음으로 마모된 돌층계마다 어김없는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지만 손이 닿을 수 없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변함없는 오색찬란한 빛으로 100년전 원형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재현해 보여준다. 사진은 스테인드글라스 윈도우를 카메라에 담는 다른 포토그래퍼의 뒷태를 보여준다.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냐고 몰아의 경지에 빠진 모습이 영락없이 나의 모습이다. 아치 모습을 하고 있는 윈도우의 상단 부분과 많은 선들로 연결된 난간 레일을 병치함으로써 곡선과 직선들을 조화시킨 구도이다. 그리고 난간에 기대인 채 사진을 찍고 있는 인간을 우측 끝에 배치해보았다. 곡선이 직선을 만나면 생명이 탄생한다. 하나의 커다란 난자 주위로 수백만 개의 정자들이 진입하기 위해 치열한 경주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무튼 삶이란 겉으로 드러난 평온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는 진지하고 치열한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결국은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  사진작가가 찍고자 하는 것은 결국 빈 공간을 꽉 채운 ‘무의미한 색들의 격돌’ 인지도 모른다.

 

포토 # 05 – 자화상

사진은 한 가게의 쇼윈도우에 진열된 소품들의 집합. 일종의 정물사진이다. 사진 한 가운데 거울이 있고 그 거울 안에 사진을 찍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잡혔다. 그래서 자화상이기도 하다. 희미하고 모호한 치열하고 격정적이면서도 결국은 무의미한 나의 모습니다. 모든 존재를 색과 선과 면 그리고 질감으로 대하는 포토그래퍼이다. 그는 자연과 교감하지만 자연을 초월해 있고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만 늘 대화 밖에 서 있다. 역사를 공부하지만 역사를 경멸하며 예술품의 가치를 인식하지만 동시에 그 가치를 땅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시공 속에 존재하는 것이 영 못마땅하지만… 어쩌랴! 그것 외에는 존재의 방식이 없다. 우린 모든 시공이란 프레임에 갇혀 사는 무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사진은 거울의 프레임 속에 작가를 포획하고 수감시킨다. 그리고 작가는 거울 뒤로 뒷모습을 보인 채 사라진다.

퀸 빅토리아 건물 밖으로 나간다. 미로가 끝나고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 비인가. 내 안에 있는 농부가 비를 향해 두 손을 든다. 들판이다. 황량한 호주의 오지, 사방으로 붉은 색 지평선이 병풍처럼 쳐져 있는 황무지 한 가운데에 선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본다. 시커먼 장막이 머리를 풀어헤치면서 그 원시적인 분노를 쏟기 직전이다. 아마도 조만간 이 황무지는 거대한 호수로 변할 것이다. 도시와 자연은 이렇듯 하나이던가! 비 오는 장면을 잡은 사진 한 장으로 나의 퀸 빅토리아 건물 산책길을 마친다.

 

포토 #06 – 비 오는 QVB 거리

 

최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