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회귀

좋았습니다. 새삼스런 얘기이지만 먹고 놀고 즐기는 일이 이렇게 신나는 건지를 오랜만에 실감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100%는 아니었지만 회사 업무에 관한 신경까지 거의 끄고 지내다 보니 스트레스도 없었습니다.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졌던 값진 시간들… 우리의 2주 남짓한 자유시간은 그렇게 아내와 저에게 많은 엔돌핀과 에너지를 선사했습니다.

남의 나라를 이틀 남짓 만에 돌아본다? 어차피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는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은 생각이 드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말로만 들어왔던 1000년 역사의 앙코르와트 사원은 그 웅장함과 정교함에 발 닿는 곳마다에서 감동과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비록 가난한 삶을 살고 있긴 했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의 눈망울은 더없이 맑고 고왔습니다.

‘신들의 놀이터’라 일컬어지는 하롱베이… 여섯 시간 남짓 동안 3000여 개의 섬들을 벗삼아 바다 위에 떠 있었던 시간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만난 호치민 주석… 초등학교 시절 ‘월남을 공산화 시키려는 빨갱이’로 우리에게 주입됐던 그는 그곳 사람들에게서는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그리고 ‘조국의 통일을 갈구했던 민족지도자’로 칭송 받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을 물리친 강철같은 의지의 지도자, 탁월한 전략가, 냉철한 혁명가였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그는 ‘호 아저씨’라는 친근한 애칭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늘 검소한 옷차림에 소박한 웃음을 머금고 아이들을 사랑했다는 호치민 주석은 유언장에 “내 장례식 때문에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폐타이어로 만든 검정고무신’을 유산으로 남긴 호치민 주석… 우리 시대에 그런 지도자가 아주아주 절실해지는 대목입니다.

5박 6일 동안의 두 나라 여행에 이어 가진 한국에서의 일주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2년 반 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아내와 제가 세운 목표(?)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만나지 말고 둘이서만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다니자.’ 여러 가지 정황상 자주는 갈 수 없는 곳인 만큼 한국 방문 때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 세 팀씩을 소화(?)해내기도 했고 새벽 네 시까지 붙들고 놔주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다음날 일정을 비몽사몽간에 치른 경험도 있습니다.

호주에 살면서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건 음식들입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산낙지, 해삼, 멍게, 조개구이 그리고 차원(?)이 다른 길거리 떡볶이, 김밥, 순대, 오뎅, 호떡, 만두 거기에 고향의 맛을 실감케 하는 생선구이 백반, 아구찜, 곱창, 간천엽….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를 먹고 놀고 마시며 지내는 호사가 넘치는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삶의 현장… 집안 수북이 쌓인 먼지, 앞뒤로 텁수룩이 자라 있는 잔디… 원래부터 한깔끔(?) 하는 성격, 잠시라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우리는 오자마자 바빴습니다. 그리고 정신 없이 시작된 50번의 다람쥐 쳇바퀴 중 첫 번째 작업….

그렇게 우리의 2019년은 시작됐습니다. ‘이왕 하는 일, 즐겁게 1등으로 해야 한다’는 신념에 언제부터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올 한해 동안도 코리아타운을 만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역주행으로 달려오는 자’들도 잘 피하면서…. 코리아타운 애독자 여러분, 광고주 여러분께도 건강과 행복 그리고 성장과 발전이 함께 하는 2019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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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