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이

제가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면 제 아들은 다른 반응을 보였을 거예요”

“엄마, 나는 왜 이렇게 흉하게 생겼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힘겹게 누르며 질문 아닌 질문을 한다. 2017년에 개봉됐던 ‘WONDER’는 소설 ‘원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애칭으로 ‘어기’라고 부르는 어거스트 풀먼이라는 열 살의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다. ‘THE ROOM’에서 잭으로 출현했던 제이콥 트렘블레이 (Jacob Tremblay)가 어기 역을 맡았다. 영화의 시작에서 어기는 자신을 그저 평범한 아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자기가 정말 평범하다면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자기를 보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데….

 

01_첫인상

Jacob Tremblay, Noah Jupe, and Elle McKinnon in Wonder (2017)어기는 ‘트리처 콜린스 신드롬 (Treacher Collins Syndrome)’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나라 말로는 ‘안면 발달 장애 증후군’이다. “네가 어디가 흉하냐?”고 되묻는 엄마에게 “엄마는 내가 아들이니까 그렇게 말하지” 아이가 눈물을 훔치며 반박한다.

“엄마가 하는 말이니까 믿어야지. 엄마만큼 널 잘 아는 사람이 누가 또 있어? 너를 아는 사람은 네가 절대로 못생긴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 하지만 아이들이 어기 옆에 앉으려고도 말을 걸려고도 안 하는데 언제 어기의 진가를 알게 될까?

 

02_얼굴 없는 아이

Jacob Tremblay in Wonder (2017)‘얼굴 없는 아이’ 편으로 SBS에서 소개했던 줄리아나는 안면 발달 장애가 심한 경우다. 골격 교정을 위해 아이의 얼굴에 꽂혀 있는 여러 개의 보조 기구는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어른도 마음 편하게 보기 어렵다.

그런데 줄리아나의 언니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아무도 줄리아나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기저귀를 두툼하게 찬 두 살짜리 꼬맹이가 갓난아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것처럼, 그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줄리아나는 자신들의 전적인 애정과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아기일 뿐이다.

 

03_반응

Jacob Tremblay and Noah Jupe in Wonder (2017)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아이’로 번역된 ‘원더’는 호주 초등학교 4학년 필독서가 되었다. 저자 라켈 팔라시오 (R. J. Palacio)는 한 인터뷰에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어느 날 두 아들과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큰아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 갔구요. 그때 우리 옆에 안면 발달 장애 여자아이가 서 있는 걸 보았어요. 문제는 저의 세 살짜리 아들이 그 아이를 보고 울어대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라켈은 허둥대며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려고 했단다. 그때 여자아이 엄마가 “얘야, 이제 그만 갈 때가 됐네.” 안내 방송을 하는 것처럼 침착한 목소리엔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을 여인의 삶이 보이더라고 했다.

그날 저녁 작가는 ‘원더’를 쓰기 시작했다. “제가 여자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보거나 말을 걸었다면 제 아들은 다른 반응을 보였을 거예요.” 라켈은 자기가 침착하지 못해서 여자아이와 그 가족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입히게 된 것이 못내 괴로운 기억으로 남는단다.

 

04_도디

Sônia Braga and Izabela Vidovic in Wonder (2017)소설가 스티븐 킹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글에서 도디라는 같은 반 여자아이를 다른 여학생들이 조롱했던 이야기를 그렸다. “도디의 흰색 블라우스가 점점 낡아 누렇게 변했고 땀에 찌든 얼룩들이 늘어났다….”

여학생들은 그녀를 비웃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증오했다고 한다. 그는 그 심리적 배경을 두려움이라고 표현했다. 도디가 여학생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한 몸에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원더’의 한 장면엔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이 학교 식당에 혼자 앉아 있는 어기를 흘끔거린다. 전염병이 옮을 것처럼 아이들은 어기와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꺼린다. 병든 우월감일까? 나약한 두려움일까? 어기처럼 어린 소년이 야비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아이들 틈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05_메건

Julia Roberts and Jacob Tremblay in Wonder (2017)“엄마는 내 편이어야 하는 것 아냐?” 메건 마이어 (Megan Meier)가 2006년 10월 17일, 열네 살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메건의 엄마 티나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딸 아이가 고통을 당하는 걸 알았다고 했다. 채팅장에서 사귄 남자친구가 다른 아이들과 합세해 메건을 따돌리고 모욕을 주기 시작했다.

티나는 메건에게 채팅장에서 나오라고 야단쳤다. 채팅하면서 험한 말을 주고받는 것도 못마땅했지만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독한 말들을 딸아이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보고 있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 애들 이야기는 무시해버리고 너 할 일이나 해. 그럼 걔네들도 지풀에 시들해질 것 아냐!” 메건도 지지 않고 “엄마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대들었다. “그래, 그럼 내가 학교로 가서 이 문제를 선생들과 상의 해야겠다!” 그 말에 메건은 티나를 붙들고 학교에 가지 말라고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06_티나

Julia Roberts and Owen Wilson in Wonder (2017)티나는 메건을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 사이버 폭력으로 고통 받는 10대 청소년들을 돕기 시작했다. 상담을 위해 티나가 만난 아이들의 75%는 자신의 고통을 부모와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의 부모들은 아이들끼리 겪는 갈등을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야단을 치거나 “같이 안 놀면 되고 채팅 안 하면 되잖아!”라는 일차원적 대안을 들이대는 것이 대부분이다.

티나는 자신이 바로 그런 엄마였다고 한다. 티나가 상담하는 10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원하는 것은 공감이라고 한다. 고통의 무게를 나누어서 지는 것, 또래 집단으로부터 거절당할 때의 그 쓰린 감정 속으로 부모가 함께 들어가 주는 것, 무엇보다도 수치심으로 달구어진 아이의 열기를 식혀 주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얼마나 아프겠니…’

 

07_친구들

Jacob Tremblay, Noah Jupe, and Ty Consiglio in Wonder (2017)“내가 다른 아이와 다르게 생긴 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지만 엄마, 그게 잘 안돼!” 자기의 생긴 모습을 가지고 ‘사람들이 앞으로도 늘 문제 삼을 거야?’ 어기가 엄마에게 묻는다. 희망적인 앞날을 아이에게 약속해주고 싶은 엄마의 간절함을 누르며 줄리아 로버트는 “엄마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문제 삼는 아이들에게 결정권이 있겠지…. 티나는 대부분의 10대들이 부모의 공감은 원하지만 자신들의 문제에 개입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골리고 따돌릴 때 주변의 친구들이 나서서 막아주길 원했다. 요즘은 학교 폭력과 왕따를 한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학교 안에서도 학생들을 계몽하면서 시스템과 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골리는 아이와 골림을 당하는 아이, 정의로운 아이와 정의롭지 못한 아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영화의 다소 미흡한 부분이다. 그러나 어기의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 곁에서 편이 되어주는 친구를 등장시켰다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는 긍정적인 움직임을 제시했다.

아이들이 어기 같은 아이를 보고 놀라서 수선을 떨며 수군거릴 수도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어디 있어? 쌍둥이도 틀리게 생겼다는데. 어기는 그렇게 다른 사람 중의 한 명일 뿐이야’ 하고 말할 수도 있다.

 

08_홀로라는 것

Jacob Tremblay in Wonder (2017)내가 대학 신입생 때 일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학교 식당에 내려가니 우리 과 여학생들 몇 명이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그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나에게 이름을 불린 사람이 “내 나이가 몇인 줄 알고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고 다그친다.

삼수를 했기 때문에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은 ‘언니’라는 이야기다. “나는 삼수생이다!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지 그러세요!”라고 한 마디 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었다. 4년 내내 삼수생 옆에 몇몇 여학생들이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 떼처럼 모여 있었고 내가 그 무리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09_어느 초등학교

Julia Roberts and Jacob Tremblay in Wonder (2017)보통 어느 학교나 쉬는 시간은 분주한 가운데 소란스럽다. 그런데 이 초등학교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데가 있다. 아이들이 물건을 던지거나 고함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교사들은 ‘서로 사이 좋게 지내’라거나 ‘친절’을 주입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을 통해 자기 생각 속에 떠도는 것들을 실제로 그리거나 만든다. 한 아이가 종이상자를 개조해 강아지 집을 짓고 있다. 옆의 아이는 자투리 옷감에 자기가 디자인한 앞치마를 그려 넣고 있다. 원하는 것을 하되 누구의 아이디어와도 겹치지 않도록 상상력을 동원한다.

여기 아이들은 각자만의 독창적 세계를 펼치면서 옆 사람과 쓸데없는 경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프로젝트에 몰두하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옆의 친구에게 협조를 구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뿐 아니라 자기가 성장할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성장한다고 느낄 때 행복한 감정이 찾아온다는 것도 안다. 이곳 아이들은 ‘상부상조’라는 것을 통해 ‘친절한 관계 형성’을 덤으로 얻는다.

 

10_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은…

Noah Jupe in Wonder (2017)

예전에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아동이 자기보다 어린아이를 해하려고 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 아이는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원들은 아이가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가 끝나갈 무렵 상담가가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해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물었다. 대답을 주저하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한 말이다. “내 안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거죠?”

내 상상 속 학교에선 아이들이 혼자 점심을 먹으며 책을 읽는다. 이 학교에서는 혼자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놀림을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아이들은 여러 명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럿이라는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은 더욱더 아니다. 내 상상 속 학교 학생들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조롱할 때 자신들 안의 아름다운 별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걸 안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