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아버지는 이 둘이 불구덩이에 뛰어들 준비가 된 사람들이란 걸…

윤동주 회장 부부는 성북동 자기 집 이층의 베란다에서 저녁노을의 끝자락으로 붉은색을 더해가는 단풍잎을 내려다본다. 오늘 아침 영주는 사귀는 남자를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통고했었다. 느닷없는 소식에 놀랐지만 누구인지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이라고 내심 기대가 됐다.

 

 

01_내 사윗감

Sidney Poitier and Katharine Houghton in 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딸 아이가 태어난 날의 감격이 떠오른다.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할 무렵 영주가 태어났다. 딸이기 때문에 섭섭하기는커녕 아이가 세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랬다.

그런 간절함이 있어서였나, 영주는 자라면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에는 누구에게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윤 회장은 그런 딸이 늘 기특했다. 장래 사윗감이 내과 의사면서 유엔에서 일한다는 말에 ‘건강한 정신을 가졌겠군’ 하는 마음으로 슬며시 입가에 웃음까지 번지지 않았던가.

일찍 귀가를 서두른 윤 회장은 현관문을 들어서자 자기 집 소파에 흑인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구지?

 

02_‘누가 이런 영화를 보겠나?’

Sidney Poitier and Katharine Houghton in 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1967년 컬럼비아 영화사는 ‘Guess who’s coming to dinner’ 상영을 하루 앞두고 크게 고민에 빠졌다. 백인들은 버스에서 흑인과 함께 앉을 수 없다고 공공연히 길거리에서 데모를 벌였고 인종간의 결혼이 합법화되었지만 백인과 함께 팔짱을 끼고 걷는 흑인에게 돌을 던져도 경찰이 우두커니 지켜보던 시대였다.

감독과 배우들이 흥행에 실패할 경우 출연료를 포기하기로 결정이 난 후에야 겨우 영화의 막이 올랐다. 당시 영화사만큼이나 고민이 많았던 사람은 남자 주인공 시드니 포이티에였다.

지금까지도 이 바하마 출신의 흑인 미남에게 버금갈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출중한 외모에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그는 흑인 배우로는 최초로 ‘To sir with love’에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그가 ‘Guess who’s coming to dinner’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고려했다는데 출연하는 영화마다 관객에게 보여주는 그의 영웅적 모습은 백인 주류사회에서 흑인들이 겪는 현실과는 너무도 커다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드니에 대한 흑인 팬들의 질책 어린 시선과 함께 ‘백인들의 인종차별을 풍자한 영화를 누가 보러 오겠냐?’고 조바심을 치던 영화사의 걱정을 단번에 물리치고 이 영화는 당시 콜롬비아사가 제작했던 영화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03_등장인물들

Sidney Poitier and Katharine Houghton in 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영화는 조애너라는 상류층 백인 여성이 흑인 약혼자 존을 집으로 데려와 그녀의 부모님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부부는 딸의 급작스러운 결정이 보통 불편하지 않다. 부부가 허둥거리며 이 일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동안 조애너는 존의 부모님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존의 부모는 장래 며느릿감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미래 사돈집에 도착하고 양가의 부모는 인종 간의 결혼이라는 난감한 문제에 부딪힌다. 그 와중에 위층에서는 조애너가 여행 가방을 꾸리고 있다.

빈으로 떠나는 존을 따라 밤 비행에 오르려는 것이다. 그녀는 존이 빈에서 일을 마치면 그곳에서 결혼식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두 집 부모들은 이 결혼에 대해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를 빠르게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결혼을 밀고 나갈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사람은 존 자신이었다. 이 결혼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는 사람은 조애너 한 사람뿐이다.

 

04_조애너

Sidney Poitier and Roy Glenn in 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존은 자기가 흑인이라서 우리 부모님이 자기와 나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실 거라고 걱정한다. 아빠가 백인 우월주의를 얼마나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는지 몰라서 그런 거지. 지금까지도 인종차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데….’

 

05_조애너의 아버지

‘딸 아이가 존과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확고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당장 허락을 해달란다. 나 어릴 때만 해도 백인들은 흑인은 절대 야구선수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니. 존이 얼마나 유능하고 건실한 사람인가는 젊은 나이에 병원에서 중책을 맡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나는 사람은 피부색에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막상 내 딸이 흑인과 결혼하겠다고 나서는데 이건 아니지 않은가! 장래 사윗감이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사돈 될 사람들까지 오늘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는 게 말이나 되나?’

 

06_존의 아버지

‘아들 녀석 의과 공부시키려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집배원으로 달나라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할 만큼 걸으면서도 아들놈이 공부를 잘하고 말썽 한 번 피운 적이 없으니 그 어려운 뒷바라지가 견딜만했지. 그런데 백인 여자하고 결혼을 해? 정신 나간 놈. 기름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걸 내가 보고만 있을 성싶으냐? 이놈을 단단히 타일러야지 안 되겠다!’

 

07_

‘조애너는 그녀의 부모님이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할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나를 보자 곧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조애나는 그녀 부모님의 승낙 없이도 나와 결혼하려고 하겠지. 그렇다면 그녀는 부모님과 영원히 등을 지게 될 텐데…. 그들이 서로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잖아. 모두의 축복을 받고 시작해도 만만치 않은 결혼에, 조애너가 부모님 때문에 불행한 모습까지 더 한다면….’

 

08_흑인 vs. 인간

“아버지는 자신을 흑인으로 생각하시는 거고 저는 저 자신을 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조애너와의 결혼을 결사반대 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인 시드니 포티에가 한 말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호주에 이민을 온 한국 남성이 자기는 영화관에 가서도 호주 여자들 옆에는 절대 앉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오늘 정말 재수 없었어!’ 자기 같은 유색인종이 옆에 앉으면 호주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텐데 애당초 왜 남이 싫어할 일을 하겠냐는 말이다. 60년대 재미교포 한 사람이 흑인 전용 화장실로 들어가려는데 “당신은 유색인종이니 백인들이 쓰는 화장실을 사용해도 돼요”라고 어떤 백인 여성이 친절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 또 한번 적진에 뛰어드는 거야. 하지만 나는 오늘도 살아남을 거야.’ 어느 흑인은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건투를 빈다고 한다. 각자의 경험이 긍정적이었던 부정적이었던 백인과 함께 살아가는 유색인종이 자신의 피부색에 대한 자의식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09_1967년, 그리고 50년 후 

“네 딸 어떻게 된 거 아니니? 너 이제 어떡하니?” 조애너의 엄마 역은 캐서린 헵번이 맡았다. 극중에서 헵번은 자신의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그녀의 일을 돕는 직원이자 친구인 힐러리라는 여인은 조애나가 흑인과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쏜살같이 집으로 찾아와 곧 천재지변이라도 날 듯이 법석을 떤다.

헵번은 힐러리의 호들갑 속에 섞인 비웃음과 야유를 침착하게 듣고 있다. “힐러리, 네가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하지만 넌 내 삶을 함께 나눌 만한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영원히 꺼져 줄래?” 헵번이 힐러리를 해고하면서 던진 말이다.

힐러리라는 여인의 등장은 미국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한국계 독일인 작가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각 시대는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했다.

“아휴, 네가 한국 사람하고 결혼했다니 너무 안심된다. 너 호주에 산다는 이야기 듣고 외국 사람이랑 결혼할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한국에 사는 동창과 최근에 전화 통화로 나누었다는 대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세월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진다.

 

10_사랑이네요

지행합일이라… 그리스 철학자들은 알면 행한다고 가르쳤다는데 과연 그럴까? 조애너의 아버지는 피부색에 따라 사람의 내면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알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야 하는 흑인 사위에 대한 저항감을 어떻게 걷어 내야 하는지 그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아내 크리스티나도 자기에게 도움이 되어 주지 않는다. 그녀는 딸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이 결혼을 성사시키려고 한다. 딸 아이와의 관계가 깨지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막아야 한다. 존의 아버지도 자기와 의견을 함께하지 않는가?

이 결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괴변을 조용히 듣고 있던 존의 어머니가 한마디 한다. “왜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건가요? 저 두 아이에게서 흑인과 백인의 문제만 보이나요? 젊은 날 당신의 아내를 뜨겁게 끌어안았던 기억은 까마득하게 잊었다는 말이지요? 조애너를 향한 내 아들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아마 제 남편도 저를 향했던 그런 열정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가 봐요. 그때를 기억한다면 어떻게 저 두 아이의 사랑을 막으려고 하겠어요.”

존의 어머니는 존과 조애너가 사랑에 빠진 두 청춘 남녀라는 것을 일깨운다. ‘지금 내 육체적 사랑은 식었지만 피가 끓을 만큼 아내를 원했던 시절만큼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뚜렷하다.’ 그제야 조애너의 아버지는 이 둘이 불구덩이에 뛰어들 준비가 된 사람들 즉, 사랑에 빠졌다는 걸 인식한다.

 

11_영화, 그 이상의 것

“저녁식사에 누구를 초대했다고요? 마틴 루서 킹 목사님이 오시나요?” 극 중에서 가정부가 물었던 대사였다. 그러나 킹 목사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영화사는 급하게 그 대사를 삭제했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최고 배우였던 스펜서 트레이시가 캐서린 헵번과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그는 실제 캐서린 헵번의 인생 동반자였다. 영화를 찍을 당시 투병 중이었던 스펜서를 위해 헵번이 경제적 지원을 하며 제작진을 도왔다고 한다.

병세가 위독해지자 병원과 영화 세트장을 오고 가며 헵번은 스펜서가 영화를 완성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했고 스펜서는 촬영을 마친 후로부터 1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먼저 간 스펜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정작 캐서린은 완성된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후설도 있다.

영화의 원작자 윌리엄 로즈는 피부색이 아니라 영혼의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는 주제로 백인에게 호소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 결국 인종간의 갈등 문제는 백인들의 태도에 따라 그 형태가 크게 달라질 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뉴욕타임즈>는 영화가 지극히 예민한 흑백 문제를 코미디 형식을 빌려 표현함으로 백인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열었다는 평을 실었다.

 

12_나도 한국 사람이에요

‘저녁식사에 누가 오는지 아세요?’는 세계가 하나 되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꼭 한번 보았으면 하는 영화다. 오래 전에 ‘인간극장’에 스리랑카 가족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그 가족에겐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젊은 엄마는 아이가 자기의 피부색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아 안쓰럽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한국말을 배우는지 아이가 공책을 카메라를 향해 펼쳐 보였다. 그때 수줍어하면서도 밝게 웃던 잘생긴 아이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또렷하다. 그 아이는 이제 청년이 되었겠다. 아직 한국에 있으려나? 어디에 있든지 부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행복하길….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