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고 신의 다리에 서는 순간, 내 삶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걸…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한번 들어나 보자는 마음이었다. 운을 고친다니 하는 말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주역학자는 운을 고치는 것이 뒷동산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란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하는 생각이 들면 그릇을 깨라는데 천원에 몇 장 하는 싸구려 그릇을 하루에 한 장씩 깨라고 한다.

 

01_운명

Reese Witherspoon in Wild (2014)웬 미신 같은 소리인가 했지만 그릇을 깬다는 건 지금까지의 삶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상징적 의미라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의식의 전환인 ‘접시 깨기’ 다음 해야 할 일은 걷기라고 한다.

‘액운이 좋아하는 것이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있는 것’이라는 말에 방청객들이 “오호…” 하는 반응을 보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으로 당면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나 보다.

동네 몇 바퀴 도는 것은 소용이 없단다.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발에서 피가 나고 쓰러질 때까지 몇 날 며칠을 걸어 보라고 권고한다.

 

02_틀 깨기

Reese Witherspoon in Wild (2014)1995년 셰릴 스트레이드 (Cheryl Strayed)는 모하비 사막의 작은마을에서 태평양 연안으로 이어지는 PCT (Pacific Crest Trail) 장거리 여행을 단독으로 시작했다.

‘와일드’는 그녀의 여행에 대한 회고록으로 2012년 출판되어 3년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평론가들은 ‘인생의 절박한 이야기들을 노골적이며 거칠고 자세하게 엮어낸 수작’이라는 평을 했다.

별이 떠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뻗은 손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깜깜한 밤, 부엉이와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야생의 세계로 혼자 들어선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절실하게 바꾸고 싶었던 운명의 틀이 있었나 보다.

그녀는 과연 자신의 틀에서 벗어났을까? 리즈 위더스푼이 셰릴 역을 맡았고 장 마크 발레 감독에 의해 그녀의 스토리가 2014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우리를 대자연 속으로 불러들인다.

 

03_PUT YOURSELF IN THE WAY OF BEAUTY

Reese Witherspoon in Wild (2014)“얘들아, 아름다움 속에 너희 자신을 놓아두렴.” 셰릴의 엄마 바비에게 아름다운 것은 자연을 의미했다. ‘내 삶이 아이들과 얼마나 행복한가’를 노래했던 이 부요한 여인의 인생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운한 것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재학 중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임신을 했고 그와 결혼한 지 사흘 뒤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아이가 셋이 되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야반도주해야 했다. 미니애폴리스의 작은 읍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녀 앞에 좌절할 일, 어렵고 힘든 일들이 줄기차게 놓였다.

“애들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야. 실망스럽고 짜증 나는 순간이 있지만 너희 스스로가 그런 감정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지.”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 아이들에게 바비가 늘 해주는 말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들판의 판잣집엔 화장실이 없었다. 양동이가 그들의 화장실을 대신하고 머리를 감기 위해 장작불에 물을 데워야 했다. 바비는 아이들이 이런 삶에 대해 고마워하는 날이 분명히 올 거라고 장담했다.

“동이 틀 때와 석양이 질 때 그 아름다운 광경에 머무는 것은 너희에게 주어진 특권이야.” 엄마의 낙관적인 태도에 사춘기에 들어선 셰릴이 가끔은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도 바비의 삶을 사랑하는 태도는 가히 초인적이었다고 한다.

 

04_잃어버린 꿈

Reese Witherspoon in Wild (2014)그런 엄마가 어느 날 감기 증세를 보이더니 7주 만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저녁노을이 지는데 같이 놀던 친구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본 기억이 있다면 가슴 한구석이 텅 비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쓸쓸함을 이해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불현듯 떠나버리면 그 상실감을 받아들이기는 훨씬 더 어렵지 않을까. 언니와 남동생은 병원에 오지 않았다.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는 슬픔을 넘어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었다.

셰릴이 동생을 찾아 병원에 데려오는 동안 바비는 사랑했던 아이들과 작별을 고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형제 중 누구도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서로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충격과 슬픔을 안고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셰릴은 자신이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마약을 시작하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그 텅 빈 그림을 메워보려 했단다.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 일인가…’ 빈번히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꿈을 잃어버린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악순환의 고리는 무력감의 깊이만 더해주었다.

 

05_한 가지씩, 한 걸음씩

Reese Witherspoon in Wild (2014)인생의 바닥을 치며 무력감에 빠져 있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의사가 내리는 처방은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이부자리를 개고 우체통을 점검하고 전기세를 내는 일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정희라는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가 승려로 출가하자 살아갈 의욕을 잃었다. 숨을 쉬는 일도 옷을 입고 벗는 일도 귀찮아 견딜 수가 없다. 왜 살아야 하는가? 무력감에서 생을 끝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지만 살기 위해 세수를 하고 양말과 속옷을 빨아 넌다.

‘나는 괜찮습니다. 나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가장 작은 일을 하면서 그녀가 되뇐 말이다. 셰릴은 엄마가 꿈꾸고 기대했던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고 싶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 했다. 9개의 산맥, 사막과 황무지, 인디언 부족들의 땅으로 이루어진 곳을 지나야 했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갔다.

 

06_견딜 수 없는 일을 견디는 것

Reese Witherspoon and Cliff De Young in Wild (2014)가파른 산등성이 위에서 셰릴이 벗어놓은 등산화 한 짝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골짜기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옆에 내려놓은 배낭이 쓰러지면서 튕겨져 날아가 버린 것이다.

누구의 충고나 사전지식 없이 셰릴이 꾸린 배낭은 그녀의 말대로 하자면, 그야말로 쓰러져 있는 거대한 짐승이었다. 이미 몇 개의 발톱이 떨어져 나가고 가방이 닿는 등과 옆구리의 살점이 뜯겼다.

그러나 돌아갈 수도 없다. 샌들을 테이프로 발에 감아 매고 다시 일어서서 길을 떠난다. “돌아와! 돌아와!” 떠나가는 애인을 부르듯이 셰릴을 보고 멀찌감치 도망가 버리는 여우를 그녀는 목이 터져라 부른다.

돌이켜 보면 그 견딜 수 없는 무게를 견디며 나아가야 했던 일이 여행이 자신에게 주는 궁극적인 의미였다고 한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고도 계속 걸어야 했던 것처럼 엄마가 죽어서 다시는 돌아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07_겸손

자연이 주는 의미를 내게 처음 맛보게 해준 것은 7일간의 타스마니아주에 위치한 크래들마운틴 하이킹이었다. 통상 자기 몸무게의 20%를 넘기지 않는 것이 여행하기에 적당한 무게라고 하지만 텐트와 침낭, 식사도구, 몇 가지의 갈아입을 옷 그리고 물처럼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짐은 15kg을 훌쩍 넘어가기 시작했다. 끼니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 일일이 저울에 잰 후 한 끼 분량씩 지퍼백에 넣고 날짜를 적어 짐을 꾸렸었다.

비누를 반으로 쪼개고 간식으로 넣었던 사과를 뺐다. 하루에 평균 10km를 걸었다. 어느 날은 17km를 걸은 적도 있다. 내 몸은 비상사태라고 생각했는지 배가 고프지도 몸살이 나지도 않았다.

재래식 화장실 사용 후에 쌀겨를 뿌리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가다가 만나는 시냇물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누구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땀으로 끈적해진 목과 얼굴을 씻은 후 물병을 채웠다.

자연 속에서는 작은 컵라면과 옹색하게 끓여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웬 호사인가’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내게 주어지는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 일행 중 누구도 어리광을 부리며 자기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거나 영웅인 척 남의 짐을 떠맡을 수 없다.

모두는 하루의 식사를 마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드는 배낭의 무게에 위로를 느꼈다. 식사를 끝내면 각자의 짐을 등에 진 후 다음 목적지를 향해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배낭의 무게 앞에서 늘 겸손했다.

 

08_대 자연 속에서

Reese Witherspoon in Wild (2014)셰릴이 경험했던 여정은 열 명이 함께 움직인 나의 일주일 여정과는 비교할 수 없다. 94일, 1700km, 그녀는 백두산에서 부산까지 두 번이 넘는 거리를 혼자 걸었다.

‘오랜 시간을 혼자 걷는 일은 자기 생각과 대면할 기회를 줍니다. 그런 기회는 현대인에게 흔하지 않죠.’ 자신의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 후 셰릴이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녀는 그 생각의 과정에서 아버지를 용서하고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였다. 야생이 그녀에게 준 또 다른 깨달음은 항복이었다. “그 거대함 속에서 제가 상황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허상이란 것을 알았어요. 자연은 매몰찹니다. 순복할 수밖에는 딴 길이 없죠. 그러나 야생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펼쳐 놓습니다.” 그저 고개를 들기만 하면 됐다고.

 

09_여정의 끝, 또 다른 시작

Reese Witherspoon in Wild (2014)오솔길에서 빠져 나오자 컬럼비아강 줄기를 타고 작은 강변마을 앞에 ‘신들의 다리’가 보인다.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했던 바로 그곳에 그녀가 서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배낭을 진 셰릴을 향해 손을 흔들고 경적을 울렸다. 무사히 도착했음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몸짓이다. 그 동안 운명을 바꿀만한 깨달음이 있었을까?

“여행이 끝나고 신의 다리에 서는 순간 제 삶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나 거친 야생의 들판에서 한 걸음씩 걸었던 것처럼, 자신의 삶이 시작될 것을 알았단다.

“누구의 삶이든 한 개인의 삶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바뀔 수 없는 신비하고 성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삶의 신비가 아니겠나. ‘만일 내가….’ 여정 속에서 그녀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했던 질문을 뒤로하며 사이먼과 가펑클의 ‘El Condo Pasa’가 흐른다.

 

10_셰릴의 독백

왜 어떤 일은 일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일은 그렇지 않은지,

무엇이 풍성하게 하고 혹은 시들게 하는지,

혹은 그 어떤 다른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은 결코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나를 가엾게 여기는 일은?

만일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단 한 가지도 다르게 행동할 것 같지는 않아.

어쩌면 내 삶의 모든 실패가 나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았는지도 모르지.

 

내가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난 벌써 구원을 받았는지도…

엄마가 날 키운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사 년 칠 개월, 그리고 삼 일이 걸렸다.

엄마 없이 나 혼자서.

 

‘슬픔의 광야’에 빠져 있다가,

드디어 나오는 입구를 발견한 거야.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여행이 끝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잖아.

 

고맙습니다, 지나온 길이 내게 가르쳐 준 모든 것이 거듭 고맙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내 앞에 펼쳐질 모든 일까지도요.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