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언덕에서 즐기는 롤러코스트?!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낸 라이온 킹…

이번 여행은 시작 전부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설렘과 짜릿함으로 가득했다. 저 드넓은 사막을 4WD를 타고 질주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 우리 네 사람은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스톡튼 비치 (Stockton Beach)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을 공유했다.

 

01_이젠… 그들도 준 연예인?!

아내야 뭐 워낙 그렇다 치더라도 김용규 라우렌시오, 김혜진 베로니카 부부도 요즘은 ‘준 연예인(?)’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 책에 여행기가 실리고 나면 “코리아타운에 사진 예쁘게 나왔더라”며 여기저기에서 인사 받기에 바쁘단다.

우리도 어딘가를 다녀오면 거의 예외 없이 코리아타운에 ‘테레사&토니의 껌딱지여행기’를 싣다 보니 “김 사장 부부는 여행 참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좋은 데 있으면 혼자만 다니지 말고 우리도 좀 데려가 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는다.

실제로 코리아타운 애독자들 중에는 코리아타운에 실리는 우리 여행기를 스크랩해놨다가 직접 그곳을 찾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테레사&토니의 껌딱지여행기’에 보다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고마운 여행길라잡이’ 김용규 라우렌시오, 김혜진 베로니카 부부가 있다. 우리의 스톡튼 비치 여행은 7월 29일, 마지막 일요일 에 이뤄졌다. 원래 6월 3일 헌터밸리 여행 때 스톡튼 비치까지 내달리려 했었지만 하루에 소화해내기에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이날로 미뤄졌다.

여행 전날, 라우렌시오 형제에게서 카톡이 도착했다. “안토니오 형제님, 이번 여행은 사막을 달려야 하니 형제님 차는 저희 집 앞에 두고 제 차로 가시지요.” 이렇게 친절하고 고마운 가이드(?)가 또 있을까?

아침 일곱 시 미사 후 성당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마치고는 오전 8시 30분부터 고대했던 사막여행이 드디어 시작됐다. 참 신기하게도 늘 날씨가 흐리거나 꾸물꾸물하다가도 우리가 여행길에만 나서면 어찌 그렇게 따뜻하고 화창해질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02_Heaton Lookout에서 만난 ‘사랑의 자물쇠’

스톡튼 비치 가는 길에 한 곳을 더 들르기로 했다. Heaton Lookout… Watagans National Park 안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 (Heaton Rd. Cooranbong NSW)은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즐기기에 딱 좋은,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라서 못 가는 아주 호젓한 곳이다.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뉴카슬 쪽으로 한 시간 반을 달리다가 오전 10시 10분 비포장도로가 시작됐다. 하지만 심각하게 울퉁불퉁한 길은 아니어서 굳이 4WD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들어갈 만한 곳이다. 작은 자갈길을 5분쯤 달려 Lookout에 도착하니 저 아래로 탁 트인 뷰가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까마득히 먼 곳으로 화력발전소 두 곳이 보인다. 하늘이 더 없이 높고 푸르다. 아직 조금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한적하다. 바비큐와 모닥불 피우는 시설 그리고 테이블이 세 군데 마련돼 있다. 화장실도 깨끗하게 청소돼 있다.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맑은 공기와 산뜻한 바람을 친구 삼아 라우렌시오 형제가 준비해온 ‘모닝 와인’을 한 잔씩 마셨다. 문득 고개를 돌리다 보니 펜스에 노란색 자물쇠가 하나가 걸려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자물쇠에는 ‘Two hearts locked in one. Alicia & Dalton Forever 20·5·2018’라는 문구가 음각형태로 새겨져 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이 두 사람은 펜스에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저 멀리 숲 속으로 던져버렸을 것이다.

문득 2년 전 서울 남산 꼭대기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도 젊은 친구들 틈에 섞여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새긴 연두색 길쭉이 자물쇠를 굳게 잠그고는 열쇠를 숲 속 깊숙이 던져 넣었다. 그 기억을 담아 아직 세 달이 채 안된 사랑의 자물쇠 후배(?) Alicia와 Dalton의 따끈따끈하고 영원한 사랑을 기원했다.

 

03_캠핑장 그리고 암벽타기 준비하는 사람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캠핑장이 있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조금 심한 오프로드 (off road)가 시작됐다. 이 국립공원 안에는 다른 쪽으로 가면 폭포도 있고 여기저기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코스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트레킹 하는 사람, 산악마라톤 연습하는 사람… 어찌 알고 이 외진 곳까지 들어오는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차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동양인은 우리뿐인 것 같다. 반대편에서 녹색 P를 단 빨간 승용차 한 대가 험난한 길을 거침없이 질주해온다.

그렇게 10분쯤을 제법 울퉁불퉁 흔들흔들 하며 들어가니 열 대쯤 되는 자동차와 여러 개의 텐트들이 모여있다. 대부분이 4WD 차량이지만 캠퍼밴도 한 대 있고 용감한(?) 승용차도 한대 섞여 있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분다. 그런데 이곳에서 암벽타기를 하려는지 자일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자일을 타고 내려간다니… 생각만 해도 간담이 써늘해진다. 이 추운 날씨에 반 바지에 반 팔 차림을 한 남성 두 명이 와인 잔을 손에 든 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용감성에 감탄하며 다시 전망대 쪽으로 돌아 나왔다. 어느새 몇몇 가족이 저마다 와글와글 자리를 차지하고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한 가족이 피운 모닥불 냄새가(?) 정겹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이 인형처럼 예쁘고 아이들과 함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강아지의 모습도 귀엽다. 참 정겹고 부러운, 호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다.

 

04_마카다미아 농장에서의 ‘가성비’ 높은 시간들

오전 11시 30분, 그곳을 떠나 Medowie Macadamias (672 Medowie Rd. Medowie NSW / 02 4982 8888)로 향했다. 우리의 우아한 점심식탁을 위해서이다. Medowie Macadamias는 마카다미아 농장을 겸하고 있는 제법 유명한 레스토랑인데 16종, 3300그루에 달하는 마카다미아 나무를 보유하고 있다. 공휴일을 제외한 주7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Medowie Macadamias Open Steak Sandwich, Flathead Fillet, Eggs Benedict, Macadamia Mango Chicken Salad-Gluten Free 그리고 플랫화이트 두 잔과 카푸치노 두 잔을 시켰는데 89불 89센트가 나왔다. 음식은 넷이서 쉐어했는데 모두모두 맛있다. 내가 우리 일행의 사진을 찍으려 일어서자 지나던 스타프가 친절하게 사진촬영을 자처한다. 이래저래 가성비가 높은 곳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내가 껍질을 까서 포장한 마카다미아 한 봉지와 마카다미아 스프레드 한 병을 샀다. 베로니카 자매는 집에 마카다미아 까는 기구가 있다며 생 마카다미아 네 자루를 샀다. 가격도 착하고 퀄리티도 좋다.

잠시 마카다미아 숲 구경을 하기로 했다. 나무에 많은 열매들이 달려 있고 땅에도 엄청난 양이 떨어져 있었다. 아내가 행운을 상징한다며 일곱 개의 마카다미아를 주워들었는데 우리 집 거실로 이사온 이놈들이 요즘은 스스로 입을 조금씩 벌려가고 있다.

 

05_2차 세계대전 당시엔 일본군에 대항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저만 치에 집이 하나 보이고 험상궂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라우렌시오 형제가 다가가자 녀석이 꼬리를 치며 반겨줬는데 안쪽으로 더 들어가려 하자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만 허락을 하는 모양이다. 녀석이 짖는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닭이 한 마리 나타났는데 이 녀석은 또 어찌된 영문인지 털이 발바닥을 덮어 땅에 질질 끌리는 털북숭이(?) 형상이어서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오후 1시 40분, 본격적인 사막투어를 위해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부터는 모래언덕 질주가 시작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오프로드 전용 차량만이 허락된다. 윌리엄타운에서 스톡튼 비치로 들어가는 길목의 주유소에서 3일 동안 사용이 가능한 출입증을 10불에 샀다. 1년짜리 패스는 30불이라지만 그리 자주 올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길이가 32킬로미터에 달하는 스톡튼 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일들을 해냈다고 한다. 일본군에 대항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임무에 더해 윌리엄타운 공군기지에서 필요로 하는 포탄들을 이곳에 내려 공급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실제로 일본군 탱크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금도 여러 곳에 남아 있고 모래언덕에서 가끔 불발탄이 발견되기도 한다.

스톡튼 비치 진입로에서 우리 차의 타이어 공기압을 낮추는 작업을 마치고 오후 2시 10분 본격적인 사막 주행이 시작됐다. 이미 많은 차들이 사막 주행을 즐기고 있었고 사막용 사륜오토바이들이 줄지어 달리는 모습들도 보였다.

 

06_지금은 사라져버린 난파선 ‘시그나호’ 잔해

금방이라도 꼬꾸라질 듯한 모래언덕을 롤러코스트처럼 쉴새 없이 오르내리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던 듯한 모래언덕에 우리 차 타이어 자국을 새기기도 했다. 바다를 옆으로 두고 쾌속주행을 할 때 튀어 오르는 바닷물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각양각색의 모래언덕은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그 모양이 변한다. 차에서 내려 아무도 밟지 않은 모래언덕에 우리의 첫 발자국을 남기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넷이서 와인 잔을 부딪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이곳에서 똑바로 가면 칠레가 나온단다. 천천히 걸어가면 한 3일쯤 걸리려나….

원래는 낚시 계획도 갖고 있었지만 일정상 생략하기로 했는데 낚싯대를 던져 넣으면 금방이라도 큼지막한 녀석들이 달려나올 것만 같다. 저 만치 바다 위에 뭔가 삐쭉삐쭉 튀어나온 것들이 보인다. 스톡튼 비치의 명물 난파선 시그나호 (Sygna)의 잔해이다. 5만 3000톤급, 길이 217미터의 노르웨이 선박 시그나호는 처녀 항해를 나왔다가 1974년 5월 26일 17미터가 넘는 스웰에 이곳에서 좌초됐다.

시그나호는 42년 동안 스톡튼 비치의 랜드마크로 굳건히 자리하다가 2년 전인 2016년 6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계속된 폭풍에 휩쓸려 잔해의 일부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라우렌시호 형제가 시그나호 잔해가 사라지기 전에 찍은 사진을 제공해줬다.

 

 

07_사막에서 만난 고마운 호주인 청년 세 명

바람이 계속 불어옴에 따라 모래들이 날리면서 희한한 모습의 모래언덕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베로니카 자매는 그 모습들을 향해 ‘바람 발자국’이라는 시적인 표현을 썼다. 모래언덕 군데군데에 오아시스 같은 작은 연못 혹은 물웅덩이 같은 곳들이 있었고 조개무덤도 곳곳에 형성돼 있었다.

저만 치에 라이온 킹을 닮은 듯한 모래언덕이 보이고 그 위의 구름은 마치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어 감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우리 차 앞 바퀴가 몽글몽글한(?) 모래 늪에 빠져든 것이었다. ‘문제 없다’며 라우렌시오 형제가 모래 구덩이 탈출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함께 모래를 파내고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우리 차는 점점 더 모래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30여분을 우리 힘으로 해결해보려 했지만 안 될 것 같아 지나가는 차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마음 착한 호주인 청년 세 명이 장비를 들고 우리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이젠 됐다 싶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전문업체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생면부지의 그 청년들은 직접 전문업체를 수소문해 전화를 해주고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우리 곁을 지켜줬다.

 

08_다음 번에는 틴 시티도 직접 보고 낚시도 해볼까?

해는 이미 완전히 넘어갔고 상황은 어려워졌지만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이 그림 같았었고 사막에서 바라보는 별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믿기지 않게도 시드니에서는 카메라에 담겨지지 않던 별의 모습이 그곳에서는 너무너무 선명하게 들어왔다.

결국 우리는 두 시간 만에 모래 구덩이를 탈출할 수 있었다. 고마운 청년들 셋은 우리 차가 완전히 구조돼 출발하는 것까지를 지켜보고 나서야 자기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생수 세 병으로 고마움을 대신했지만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틴 시티 (Tin City 양철마을) 구경을 못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사막 한 켠에 양철조각으로 조립한 오두막집 열한 채가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단다. 이곳 사람들은 물도 전기도 없어 빗물과 태양열을 이용하는데 19세기 말에 두 채가 최초로 건립됐고 대공황시기 (1929년-1939년)에 추가로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의 존폐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바닷바람에 날리는 모래이다. 수시로 날아드는 모래바람에 오두막이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중장비와 삽으로 자연현상과 치열한 투쟁을 끊임 없이 벌여야 한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감동과 왠지 모를 아쉬움이 공존하는 스톡튼 비치 여행… ‘다음 번에는 틴 시티도 직접 보고 낚시도 해보자’고 슬그머니 라우렌시오 형제를 유혹(?)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