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ing Rita

사랑과 우정이라는 모든 관계는 변해… 그것은 배신이 아닌 성장

전북 고창의 선운사라는 절로 가을이 되면 아줌마 수천 명이 단풍보다 더 빨간 잠바를 입고 나들이를 나온다고 한다. 하늘도 땅도 붉은색으로 뒤덮인 그곳에서 오십 대로 보이는 여인 둘이 영화 같은 대사를 날렸다. “미자야, 나 다음에는 이런 하늘 밑에서 새처럼 살고 싶다.”

 

01_두 여인

감수성의 극치를 나타내는 여인에게 미자라는 친구의 답변은 “아유, 미친년”이었다. 불타듯 단풍으로 물든 산 밑에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두 여인의 반응이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똑같은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그 무언가를 소망한다. 이것은 옳고 그르거나 누가 더 잘나고 누가 더 못났느냐는 문제가 분명 아닐 것이다.

스물여섯 살의 ‘리타’는 영국 리버풀의 작은 동네 미용사이다. 그녀는 남편과 친정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인근 대학에서 주최하는 열린 문학 강좌에 등록했다. ‘리타 길들이기’의 상연 연도는 1983년이었지만 나는 영화가 상영된 지 십 년도 훨씬 지나서야 백화점 좌판에 놓인 DVD를 헐값에 사보게 되었다.

내용이 좋든 나쁘든 표지의 마이클 케인을 보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게 좋은 영화를 말하라고 하면 빠짐없이 이 영화를 떠올린다. 영화는 몇 개의 굵직한 주제를 피하지 않고 펼쳐냈다. 사회 계급과 여성의 선택권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프랭크와 리타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이 관계에 미치는 변화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02_투박한 맛

한국에서 살던 사람들이 호주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남편 월급이 얼마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냐 등등의 걸러지지 않은 질문을 하기도 한다. 리타도 처음 만난 프랭크 교수에게 그의 결혼생활을 물어왔다.

이혼했다는 대답을 해주었지만 왜 이혼했느냐 지금 사는 여자와는 잘 맞느냐는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불쾌해 하며 화를 내는 프랭크에게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왜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유별난 반응을 보이느냐며 도리어 핀잔을 준다.

귀한 분에게 여주인장이 삶은 호박잎과 된장찌개를 끓여냈다고 한다. 비싸고 세련된 음식보다 투박하고 격식 없는 것이 더 신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가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프랭크는 문학적 담론을 핑계로 고상한 척하는 문학생도들이 한참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교수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늘 공손하며 교양과 격식을 따지고 거리를 지키는 학생들에 비교하면 리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무례할 만큼 저돌적이고 생각나는 대로 자기 속을 드러내는 리타가 프랭크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더운 여름날 들이치는 맞바람처럼 자신의 속을 후련하게 하면서 말이다.

 

03_놓친 것

이혼당하고 싶으면 멋대로 하라고 위협을 하는데도 공부를 포기하지 못하는 리타를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 영민한 아이일수록 자신 앞에 놓인 벽에 더 극렬하게 저항한다는데 그것은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걸 직감하기 때문이란다.

수잔은 자기가 놓친 것이 배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남편이 원하는 것처럼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사는 것보다는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수잔은 여성작가의 이름을 따라 리타라고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다며 프랭크 교수에게는 대학에서 정규과정의 문학도들처럼 자기를 훈련해달라고 요구한다.

교수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 몇 번의 문학강좌가 아님을 직감했다. 읽은 책에 관해 말해보라면 ‘글이 환장하게 지루하다’ 혹은 ‘끝내주게 재미있다’는 식인데 과연 대학에서 원하는 고된 학문의 과정이 그녀에게 꼭 필요한 걸까?

‘네가 가진 그대로의 모습이 개성 있고 가치 있다’며 대학과정에 통과하려면 ‘너의 고유한 생각의 패턴과 방식들을 모두 버려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대학생처럼 되려느냐?’고 프랭크는 안타까워하며 묻는다. 그러나 리타는 자신의 독특함이라는 것이 요릿집 음식에 염증을 느낀 후 뚝배기에 담긴 된장 맛을 원하듯 자기의 걸러지지 않은 생각과 행동은 배운 사람들에게 박장대소를 일으키는 재밋거리 아니겠느냐고 반박한다.

리타의 간절한 호소는 이렇다. ‘교수님, 모르시겠어요? 전 저의 촌스럽고 경박스러운 모습이 싫어요. 고상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프랭크도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리타는 자신에게서 배운 사람 티가 나길 원했다.

 

04_품 안의 아이

자기가 발전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개인지도를 시작한 후부터 리타는 프랭크가 권해 주는 책을 읽고 연극을 보며 자신이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뜨는 것으로 하루하루가 새롭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고 온 날 벅차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강의실 문을 두드리며 수업 중인 프랭크를 불러낸 적도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엄마에게 달려와 그날 배운 것들을 신명이 나서 조잘거린다. 리타는 남의 사생활에 관한 잡담 대신 문학 속에 들어 있는 삶과 존재의 의미 같은 심도 있는 이야기를 교수님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이혼 후 술 중독으로 매사가 시큰둥했던 프랭크는 리타의 배움을 향한 열정으로 삶의 활력을 찾아간다. 그녀는 자기 품에 날아든 작은 종달새였다. 그 즈음 리타의 남편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리타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이혼을 선언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성장을 도울 뿐 아니라 어떤 굴레로도 자기를 옥죄지 않는 프랭크 교수를 리타가 따르고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나.

 

05_떠나려는 아이

내 품에 있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제 친구들과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리면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소외감을 느낀다. 리타와 프랭크와의 관계가 조금씩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프랭크의 추천으로 다른 지방대학에서 주최하는 여름방학 문학수업에 리타가 다녀온 후였다.

예전의 리타는 정규 대학생들과 자기와는 수준이 다르다며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렸다. 프랭크 교수가 집으로 그녀를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집 안에 있던 우아한 사람들의 모습이 자기가 들고 간 싸구려 샴페인과 비교되어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써머스쿨 기간 동안 리타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그야말로 그녀가 원했던 대학생다운 신나는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명석하면서도 대담하고 거친 리타의 논쟁 스타일은 주변의 대학생들에게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프랭크와 나누었던 작품이 갖는 의미와 작가의 사상 같은 문학적 대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된 것이다. 머물던 자리에서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 성장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프랭크는 둥지를 떠나려는 리타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06_자격지심

딸 아이와 나 사이에는 숨기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가끔 본다. ‘네가 누구누구와 지난주에 산책했다면서 그 일에 대해 왜 한 마디도 말이 없었어?’ 자신의 통제 아래 아이들을 조정하려는 부모의 이런 요구와 압력에 부딪혔을 때 약한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부모의 간섭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아이들은 그들의 간섭을 막기 위해 몰래 일을 꾸미고 부모를 피한다. 프랭크는 리타가 일하는 작은 레스토랑에 찾아가 예전에는 자기에게 모든 것을 말하더니 미용실을 그만둔 일은 왜 말하지 않았느냐며 리타를 추궁한다.

그는 제자의 사적인 삶에 간섭함으로 그녀의 독립성을 침범하고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는 리타가 최근 알게 된 타이슨이라는 대학생을 질투하며 그를 좋아하느냐고 캐묻는다. 당찬 리타는 피하지 않고 대답한다. “네 선생님, 전 타이슨이 좋아요. 그 친구들은 어디에 매인 것 없이 자유로워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사귀는 게 즐거워요.”

그러자 프랭크는 “나에게 더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찾아올 필요 없다”는 억지를 부린다.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이 개인지도 받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는 리타의 항변에도 “나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우면 동정해서 찾아오는 행위는 사절이다”는 주정을 한다.

리타를 찾아 다니는 자신의 처지가 스스로 비참해서 하는 소리였다. 리타는 프랭크의 집착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안타까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다. 무엇 때문에 미장원을 그만두는 것 같은 시시한 일에 신경을 쓰느냐며 시인으로서 좀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에 매진해보라는 충고를 한다.

 

07_하극상

이치에 맞는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보통은 부모가 자식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것이 편안하다. 그런데 내 덕으로 자란 사람이 이제 날 가르치려 한다. 딸이 조곤조곤 옳고 그른 것을 따져 가며 엄마를 가르치고 후배가 선배에게 전은 이렇고 후는 저러니 마음을 넓게 가지라고 충고한다.

스승에게 선과 악의 도리를 깨우친 분이 그러면 되겠느냐고 어르는 것처럼 실력 있는 시인이 왜 재능을 낭비하느냐며 프랭크를 나무라는 리타가 그에겐 기가 막힐 하극상이다. “리타 네가 삶의 의미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도통한 것 같구나. 그렇다면 나 같은 무명 시인의 시로 의미 있는 비평을 한번 해보지 않겠니?”

리타는 곧이곧대로 지금까지 그에게서 배운 비평 언어를 적용해 프랭크의 작품을 평한다. 문학박사인 프랭크는 리타의 수준으로 자신의 시가 평가되는 것이 고역스럽다. “어유, 그러세요? 내 시가 그렇게 훌륭한 줄 몰랐네요.” 순진한 리타는 사람마다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고 싶은 대상은 따로 있다는 걸 아직 모른다.

그가 더는 견딜 수가 없으니 나가 달라는 말에 리타는 무얼 견딜 수 없느냐고 묻는다. “너, 바로 너라는 사람을 견딜 수가 없다.” 그제야 리타는 그의 비아냥이 자신을 향했던 것임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프랭크를 향해 한마디를 던진다. “교수님이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말해 드릴게요. 교수님은 제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운 거예요.”

 

08_성장과 선택

교육은 자신에게 선택할 능력이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그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열정적으로 한 여자의 성장을 도왔던 선생이 정작 그녀가 자신의 품에서 멀어지려니 괴롭다. 인생의 또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자영업을 하며 가게에 묶여 있는 친구를 찾아가면 좋을 소리를 듣기 어렵다. 몸에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면 ‘그렇게 돌아치며 무리를 하니 감기에 안 걸리고 배기냐’는 핀잔을 듣는다.

모임에서 만나 알게 된 사람과 친해지려고 하면 그 사람 조심하라는 전화가 한 두통은 꼭 온다. TAFE에 공부하러 다닌다고 하면 ‘그런 것 다 해봤는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짓’이라며 사기를 꺾는다. 우리가 이런저런 말로 가까운 사람을 통제하려는 마음의 저변엔 나를 더는 원하지 않을 것 같은 거절감, 소외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

<기쁨을 유통하는 삶>의 저자는 자기와 어린 딸 이야기를 했다. 평소처럼 아이를 안아주려 했더니 자기를 밀어내더란다. 서운했지만 녀석 기분이 안 내키나 보다 해서 아이를 놓아주었는데 다시 쪼르르 달려와서는 ‘날 잡아봐요’ 놀이를 하자고 하더란다.

저자는 저 멀리 도망가는 아이를 쫓아가며 건강한 관계를 생각했다고 한다. 밀어내면 놓아주고 잡아달라고 하면 쫓아가 잡아주는 관계. 대학에 가거나 아이를 낳거나 아니면 다 그만두고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거나. 이제부터는 리타, 그녀의 선택이다.

 

09_내 곁에서 훨훨

몹시 사랑했던 자식일수록 우정이 깊었던 친구일수록 그 상대편을 자유롭게 놓아주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변한다. ‘리타 길들이기’는 그것이 배신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린다.

리타가 성장했듯이 누군가 나를 떠났다면 그들이 성장했기 때문인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나도 내 성장을 그럴듯한 말로 저지하고 자신들의 틀 속에 묶어두려는 사람들을 떠나왔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신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답이 없더니 성장의 과정이었다고 해석하니 희망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은 새로운 삶을 위해 호주로 떠나는 프랭크 교수를 리타가 공항에서 배웅하는 장면이다. 프랭크는 시험 합격 여부를 알리는 통지서를 리타에게 건넨다. 리타가 확인한 후 쑥스럽게 웃으며 “합격이네요” 하니 프랭크가 리타의 손에서 통지서를 받아 들고 재차 확인해본다.

“최고 점수를 받았네.” 심혈을 기울여 다듬은 조각품을 안아보듯이 작별 인사로 프랭크는 리타를 그의 품에 꼭 끌어안는다. 절절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돌아서는 그를 향해 리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고마워요.” 이 장면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일이 조금은 더 수월해질 것도 같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