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둔 것은 아무도 모르게 당신 혼자서 장만해둔, 당신이 입고 떠날 수의 (壽衣) 한 벌과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 그리고 동전 몇 닢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등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벌 중 한 사람인 대한항공 회장으로 더 잘 알려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미국에서 치료 중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70이다. 요즘 같은 100세시대에 70이라면 얼라 같은 나인데 참 안됐다. 나이도 나이지만 천문학적인 재산을 남겨두고 떠났으니 너무나도 안타까운 죽음이다. 모르긴 해도 죽는 순간에도 참으로 억울했을 것이다.

사망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폐질환의 일종인 폐섬유종이라는 것이 추측이라고 한다. 폐섬유종은 흡연이 주된 요인이며 병증이 진행되면서 딱딱해진 폐 부분이 넓어지고 종국에는 폐의 전반적인 기능이 소실되며 호흡부전으로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질환이라는 거다.

폐섬유종의 특징은 유난히 스트레스에 약하다는 것이 의학계의 주장이다. 짐작컨대, 의료시술이 뛰어나다는 미국에서 풍족한 돈을 가지고도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진 것은 무소불위 성격의 소유자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발아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의 아내와, 장녀와, 차녀가 저지른 행태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사망의 주요 원인이지 않았냐는 분석도 있다.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그의 큰딸은 기내 땅콩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무릎 꿇리고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진에어 부사장이었던 그의 작은 딸은 광고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직원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물컵을 집어 던지는 횡포를 수시로 저질렀다. 일우재단 이사장인 그의 아내는 가사도우미를 불법고용하고 생활용품을 밀수하고 직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이런 갑질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서민들을 울렸고 분노케 했다.

감히 치마자락도 건들지 못하는 재벌가족으로 떵떵거렸지만 그의 아내와 두 딸의 갑질 때문에 아내와 두 딸은 물론이려니와 그 자신도 횡령, 배임혐의로 검찰에 출두해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법적인 심판을 받게 됐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오만과 편견과 교만 속에서 존경 아닌 존경을 받으면서 살아오던 그에게는 감내하기 버거운 충격이었을 거다. 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어림이 된다. 정말 폐질환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스트레스가 쌓여 쓰러지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아내와 딸들은 그들이 저지른 행태가 남편이자 아버지의 생명을 단축시키게 된 한 원인임을 알기나 하는지.

그는 죽고 나서도 편치 않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 회장이 남긴 재산 중 보유한 주식가치만 해도 3,579억원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단순상속세율 50%만 적용해도 상속세가 1,790억원이라는 것이다. 이 상속세를 납부해야 조 회장의 남은 가족이 한진그룹의 실제 경영자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서는 조 회장의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분율이 낮아져 최대주주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가족들은 슬픔은 뒷전이고 고민부터 깊어지는 거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고국의 또 다른 모 재벌그룹은 벌써 오래 전에 식물인간이 돼버린 회장을 숨만 쉬게 해 침대 위에 눕혀놓고 ‘좋아지고 있다’고 뻔히 알고 있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살려놓는 동안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식 앞으로 재산을 빼 돌려놓는 거다. 그들은 죽음이 공포다. 비단 재벌들만이 아니다. 재산 많은 권력자들도 마찬가지다. 돈 많고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의 삶은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도 살지 않는 허무함인 거다.

나는 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수의 한 벌과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과 몇 푼 동전을 보면서 삶의 덧없음에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남길 것 없었던 내 어머니는 평온한 모습 그대로 잠든 채 안녕을 얘기했다.

남길 것 없는 세상살이가 축복받은 삶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무얼 남겨야 할까? 그래도 화장장 사용료 정도는 남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걱정이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Previous article코리아타운 특별기획 : 2019 부활절 이야기 전 세계 부활절 풍경 &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의 모든 것!
Next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96강 숫자읽기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