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스마니아 자연 속에 풍덩!

Three Capes Walk… 하루 최대 48명 만 허용, 최소 6개월 전 예약 필수

 아내는 ‘쉴라 (Sheila)처럼 나이 들어가고 싶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쉴라는 영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엄마로부터 태어난 재능이 많은 여성이지만 체력단련도 열심인 우리 등산클럽 회원이다.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상해에서 보내고 60년대 중반쯤 스포츠 교환 프로그램으로 상해를 방문한 호주 남자와 사랑에 빠져 호주로 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남동생 어니 (Earnie)도 동행을 하였고 어니는 퀸즈랜드대 치대에서 공부를 마쳤다.

 

01_야생동물만이 다니던 길을 내가 간다고 상상하니 가슴이…

졸업 후 어니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 호주정부에 청원을 하여 오지인 타스마니아 (Tasmania)에서 치과개업을 하는 것으로 그의 호주 정착은 성공을 하였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그 어니가 어느덧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다. 호바트 (Hobart) 공항 옆구리를 휘감은 세븐 마일 비치 (seven mile beach)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사는 어니는 유명한 관광지 포트 아서 (Port Arthur)의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 머두나 (Murdunna)에 별장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

이 집이 2013년 이곳을 휩쓴 큰 화재로 불에 탔는데 다행이 보험회사와 협상이 잘 되어 지금은 번듯한 현대식 별장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누나인 쉴라가 이곳으로 등산클럽 회원을 불러모은 것이 3월 초였다. 목표 지점은 ‘트리 케이프 워크 (Three Capes Walk)’이다. 케이프 (곶, cape)는 만 (bay)과 반대로 육지가 바다 쪽으로 튀어 나온 지형을 일컫는다.

2015년 크리스마스 바로 며칠 전에 처음으로 길을 연 곳이라 아마도 호주에서는 가장 최근에 개장을 한 등산로인 셈이다. 야생동물만이 다니던 길을 내가 간다고 상상하니 가슴이 벅찼다. 개장이래 이곳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볼 때 전혀 새로운 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일정이었다. 더군다나 이 등산로는 인원제약이 있어 우리는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만 했다.

삼박사일의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이틀 전 우리는 3 capes중 하나인 ‘케이프 라울 (Cape Raoul)’을 걷기로 했다. 왜냐하면 Three Capes Walk 프로그램에는 사실 2개의 케이프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Cape Raoul은 프로그램에서 빠져 있는 셈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케이프에서 프로그램에 들어간 다른 2개의 케이프로 연결되는 워킹트랙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02_첫째 날: Cape Raoul 찍고 돌아오기

Cape Raoul 트랙을 걷기 위해서 일단 트랙이 시작되는 주차장을 찾아야 했다. 주차장에서 타스만 반도 (Tasman Peninsula) 남쪽 끝에 이마의 혹처럼 나온 곳의 Cape Raoul을 찍고 돌아오는 왕복길이 14킬로미터이지만 내려가고 올라가는 길이 수백 미터씩이나 되고 울창한 숲길도 통과해야 하므로 시간이 좀 걸린다.

오전에 출발해 Cape Raoul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오는 계획으로 하루를 잡으면 넉넉하다. 등산로가 주로 바닷가 옆의 절벽 위로 형성되어 있으니 아름다운 풍경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주상절리의 암석기둥으로 된 절벽들이 드넓은 바다와 함께 만들어내는 곳곳의 지질유산 풍광들은 급한 마음을 다잡아준다. Cape Raoul의 트랙이 끝나는 절벽 위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저 건너편 절벽의 아래에서 떼지어 살고 있는 바다표범 (seal)을 감상하는 것이 아마 이 등산로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체내에서 배출된 오물로 절벽 한 쪽이 하얀 색으로 변색된 것을 보면서 이 동물들이 수백 년 동안 이곳에서 집단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일행 중 몇 명이 성능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와 돌려가면서 오랫동안 그들의 놀이와 먹이 행동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자연에서 자연의 주인을 만나 그들의 삶을 면밀히 감상하는 것이 손님인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 같았다.

 

03_둘째 날: 작은 마을 리치몬드 방문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삼박사일 프로그램을 앞두고 우리는 호바트 공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인 리치몬드 (Richmond)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사암 (sandstone)으로 만들어진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Richmond Bridge)가 있는데 당시의 죄수들이 동원되어 1823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이년 후에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지어진 감옥 (Richmond Gaol)을 둘러보고 마을 전체에 흐르는 느림의 템포에 맞추어 마을 거리를 어슬렁 걸어보는 것도 추천할 만 하다.

 

04_셋째 날: 포트 아서 그리고 덴만스 해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치른 삼박사일 일정이 시작된 날이다. 일단 우리의 집결장소는 포트 아서였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가야 트랙의 첫 출발지점으로 갈 수 있다. 배가 출발하는 시간이 남아 일행은 드넓은 포트 아서를 둘러보았다.

아서 필립 (Arthur Phillip) 선장이 1788년 1월 26일 화창한 날씨를 등에 업고 시드니 항구 (Sydney Cove)를 통해 호주 땅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시드니 식민지가 만들어지고 그 후 1830년경부터 타스마니아에 중범죄 죄수들을 실어 나르면서 타스마니아 식민시대가 시작되었다.

지형적으로 죄수들이 도주를 못하게 된 이곳 포트 아서에 거대한 감옥시설을 만들었고 10대 죄수들은 따로 가까이에 있는 섬에 가두는 정책을 펼쳤다. 수용된 죄수들이 만든 교회, 부엌 등 여러 부대시설들을 비롯해 남아있는 거의 모든 건물들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 포트 아서는 이제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 된 셈이었다.

출발시간이 되자 일행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첫 등산로까지의 뱃길은 순전히 관광객을 위한 것이다. 한낮의 태양이 만들어내는 황금색의 모래언덕을 끼고 형성된 해안 절벽에서 집단서식 하는 물고기 잡이의 명수인 가마우지도 가까이 보고 물개 몇 마리까지 보는 행운을 얻으면서 우리는 목적지인 덴만스 해변 (Denmans Cove)에 도착했다.

그런데 배가 해안 쪽으로 닿을 수가 없어 모든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올려가면서 배에서 모래사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젖은 다리를 말리면서 우리는 이른 점심을 먹고 드디어 첫날의 트랙을 시작했다.

이날 밤을 보낼 첫 숙소는 불과 4킬로미터 거리에 있어 수려한 자연을 벗삼아 사색하면서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첫 숙소 이름은 서베이어스 (Surveyors)인데 숲 속에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진 건축가의 상상력이 돋보인 아름다운 건물이다.

침실은 대부분 이층침대로 8인실인데 4인 침실도 미리 예약하면 가능하다. 부엌과 화장실도 자연을 최대한 보호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고 이곳에서는 전날에 갔던 Cape Raoul이 저 멀리에서 보이기까지 한다. 재미있게도 남극에서 오랫동안 사용하다 용도폐기 된 돔 형태의 숙소를 이곳에 갖다 놓아 가끔 직원들이 사용한다고 한다.

 

05_넷째 날: 복잡함과 단순함이 공존한…

이날의 트랙거리는 11킬로미터. 부지런히 걸으면 두 번째 숙소인 먼로 (Munro)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 생각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는 까마득히 높은 해안절벽으로 된 등반로 곳곳이 장대한 경관을 펼쳐 보이니 마냥 빨리만 갈 수도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그 전날에 묵은 다른 등반객들은 이미 떠나 뒤라 조용했다. 점심을 먹기 전 나는 군대에서 익힌 신속한 동작으로 간단한 야외 샤워를 찬물로 했다.

이곳 숙소에서는 저 멀리 보이는 해안 절벽의 위용이 드넓은 하늘과 청명한 바다와 어우러져 명상하기에 좋았다. 방문객들 서로가 방해 되지 않게 배려하는 마음이 보기 좋았다. 요가를 하는 사람 또는 독서삼매에 빠진 사람 그리고 일기장을 부지런히 채워가는 사람들로 인해 복잡함과 단순함이 공존한 오후였다.

 

06_다섯째 날: Cape Pillar에서 바라본 타스만 섬은…

이날의 일정은 특이했다. 왜냐하면 일단 무거운 배낭은 숙소에 놔두고 가벼운 배낭만을 가지고 타스만 섬 (Tasman Island)과 맞닿아 있는 ‘케이프 필라 (Cape Pillar)’를 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마지막 숙소로 가는 일정이기 때문이었다.

트랙 곳곳에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여러 모양의 조형물들과 글귀들이 있었고 인공적인 워킹트랙이 자연과 잘 어울렸다. 깎아지른 높은 곳의 Cape Pillar 암석 기둥 꼭대기에서 바라본 타스만 섬은 포근하고 가까웠다. 그곳에 있는 등대와 속세와 떨어져 반년 동안 이곳 섬에서 관리 일을 하면서 살고자 하는 자원 봉사자들을 위한 집 2채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마침 반대방향에서 혼자 이곳까지 온 할머니 한 분을 만나 등산이 주를 이루는 그녀의 생활상을 들을 수 있었다.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만을 물려받아 지금껏 산양 (mountain goat)으로 불리는 쉴라와 체격적으로 비견되는 분이었다. 이 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건강한 늙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배낭을 챙겨 마지막 숙소인 레타쿠나 (Retakunna)로 향했는데 이날은 총 17킬로미터를 걸었다.

 

07_여섯째 날: 중년을 넘어 노년층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는…

삼박사일 일정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케이프 아위 (Cape Hauy)’를 보기 위해 우리는 일찍 숙소를 나섰다. 트랙 시작되는 곳이 마침 숙소 옆으로 높이 솟은 거의 500미터의 산이어서 이 구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트랙 중간쯤에 있는 교차로 (Track Junction)에서 Cape Hauy로 이어지는 등반로는 무성한 덤불을 멀리하면서 겨드랑이처럼 가까이 따라오는 바다 풍경과 더불어 사람의 넋을 앗아갈 정도로 아름답다.

Cape Hauy에는 암벽등반가 (rock climber)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일자 기둥형으로 생긴 토틈 바위 (Totem Pole)가 있다. ABC에서 방영된 Australian Story에 수년 전 소개된 이야기도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데 한 젊은이가 이 토틈 바위를 등반하다 사고를 당해 신체 불구가 되었으나 그런 몸을 이끌고 다시 등반하는 도전에 나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등반로 교차로까지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와 트랙이 끝나는 포테스큐 만 (Fortescue Bay)까지 걸어나오면 그곳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이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 일정을 대부분 사람들이 서두른다. 버스는 이곳에서 다시 일행을 포트 아서로 데려다 준다. 이런 일정 때문에 주차장에 3일간 차를 주차해두는 것이 필수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번 타스마니아를 방문해 많은 등산 트랙을 다녀봤지만 이번 여행처럼 여유롭고 느긋하게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4일이 소요되는 이 트랙을 걷기 위해 외국에서 오는 방문객 숫자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중년을 넘어 노년층의 방문객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는 명확하다. 타스마니아 자연 속에 풍덩 빠질 수 있는 유일한 트랙이기 때문 아닐까?

 

참고로 우리의 스케줄을 적어본다.

3월 4일: 시드니 – 호바트 비행

3월 5일: Cape Raoul

3월 6일: Richmond 방문

3월 7일 – 10일: Three Capes Walk

3월 11일: 호바트 – 시드니 비행

 

08_도움말 하나: 예약은 최소 6개월 전에

하루에 최대 48명 만을 걷게 하기 때문에 예약은 최소 6개월 전에 해야 한다. 가격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성인 한 명이 거의 500불 정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만만한 비용은 아닌 셈이다.

 

09_도움말 둘: 시간 비용 여의치 않으면 케이프 아위 만

비용과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삼박사일 프로그램 중 마지막 날에 있는 ‘케이프 아위 (Cape Hauy)’만 할 수도 있다. 그 풍광이 빼어나 전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예약도 필요 없고 포테스큐 만 (Fortescue Bay)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로를 따라 Cape Hauy까지 갔다 오면 된다. 왕복 약 9킬로미터로 4-5시간이면 충분하다.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찰스스터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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