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 밴

“지금이다!” 몇 날 며칠을 찔끔거리다가 때로는 폭우로 변해 계속되고 있는 비…. 아직 더 많이 필요한 지역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동네에는 이제 비가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슬며시 듭니다.

지난 화요일, 해가 잠시 잠깐 모습을 드러냈고 그 틈을 타 얼른 잔디 깎는 기계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도중에라도 비가 올까, 뒷마당을 시작으로 앞마당까지 서둘러 잔디를 깎았습니다. 까짓 잔디 좀 길면 어때서…. 하지만 별난 성격의 아내나 저는 요 며칠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저놈의 잔디를 언제 깎나…’ 걱정을 하던 차였습니다.

솔직히 다른 집들에 비하면 우리 집 잔디는 양호한 편인데도 우리는 최소 2주에 한번은 잔디를 깎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제가 잔디 깎는 기계를 돌리는 동안 아내는 정원가위를 들고 잔디밭 가장자리를 정리합니다.

어찌 보면 허리를 숙여 잔디밭 끄트머리를 다듬는 게 더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장자리 다듬는 기계를 사용해 아주 편하게 그 일을 하는데 겁 많은 아내는 무섭게 회전하는 칼날을 보며 저한테도 ‘위험해서 안 된다’며 정원가위를 고집합니다.

한번 시작하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잔디 깎기… 다행이 보슬보슬 잠시 내리던 비는 더 이상의 심술은 부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둘 다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분명 힘든 일임에도 그렇게 잔디를 깎고 나면 기분은 더없이 좋습니다.

평소 즐기지 않는 콜라 한 캔을 뚝 따서 나눠 마시며 기분 좋은 눈빛을 교환합니다. “자기야, 우리도 이 집 팔고 아파트로 이사 갈까?” 자신이 힘든 것보다는 제가 땀을 뻘뻘 흘리는 게 더 안쓰러워서 하는 소리일 겁니다.

사실 하우스에 살면서 집을 깨끗하게 유지 관리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잔디도 잔디이지만 여기저기에서 치고 나오는 잡초들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닙니다. 지난 연말 2주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한국을 다녀오는 동안 우리 집 뒷마당은 그야말로 개판이 됐습니다.

이름 모를 잡초들이 곱게 잘 크고 있던 한국부추 군단을 완전히 뒤덮었고 온 사방을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초토화 시켜놨습니다. 엉망이 돼버린 텃밭을 원상복귀 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세상에는 왜 남을 귀찮게 하는 존재들이 그리도 많은지….

“우리는 나중에, 몇 년 더 지나 펜션 받을 나이 되면 캠퍼밴 (Camper Van)한 대 사서 여기저기 여행 다닐 거예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여행하다가 돌아와 조그마한 집에서 잠시 머물다가 또 여행 떠나고…. 이 세상 전부가 우리 집인 거죠. 날마다 새롭고 널찍한 정원에서 바비큐도 하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와인 잔도 기울이고….” 며칠 전 함께 술자리를 했던 선배지인 부부의 원대한(?) 계획에 아내와 저도 “우리도 함께 다니게 해달라”고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호응했습니다.

더 나이가 들면 잔디며 텃밭이며 집안 가꾸기가 쉽지 않을 터, 깔끔한 원룸 아파트로 둥지를 옮겨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방에서 침실, 거실, 샤워실까지… 모든 시설이 다 갖춰진 캠퍼밴, 이른바 캠핑카 한 대만 있으면 정말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어디에서든 우리 집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낚시까지 얹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날 우리는 세 시간 동안 노가다(?)를 하고는 이내 가방을 챙겨 들고 GYM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두 시간 반 동안 또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2주에 한번 잔디를 깎아도 괜찮을 만큼의 열정과 체력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게 고맙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시기가 있고 즐길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미루지 않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잔디도 부지런히 깎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아내와 둘이 캠퍼밴을 타고 호주 전국을 누비게 될 그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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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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