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소망을 품고 기다리면 기회의 문은 반드시 열리며 기적은 기차처럼 기습한다

해마다 새해 첫 신문을 펼치면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신춘문예로 배출된 새로운 ‘문인들’의 사진과 약력, 그리고 소감문이다. 수천 일의 가슴앓이와 수십 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등용문의 꿈을 이룬 문청 (문학청년)들의 앞길은 비단길 위에 쫙 깔린 진달래 꽃을 밟고 가는 길이 아니라 솔직히 수백 대 일의 바늘구멍을 통과한 ‘신문문예’보다 더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01_쓸모 없는 사람들의 쓸모 없는 이야기?

그때부터 본격적인 글쓰기의 가파른 절벽을 올라야 하는 숙명의 밧줄에 운명을 묶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인 문호들도 예외 없이 ‘서러운 무명’의 세월을 눈물로 삼켜야 했다.

“지리멸렬하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얄팍하기 짝이 없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작가가 정신 차릴 필요가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쓸모 없는 사람들의 쓸모 없는 이야기를 쓸모 없는 수다로 풀어놓은 두 권의 두꺼운 책”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인용표 안의 단 한 줄의 문장은 걸작을 못 알아본 당대 최고 출판사와 평론가의 ‘민망한 한 마디’들이다. 지금은 ‘문호’ 소리를 듣는 작가들도 생전에는 이처럼 혹평과 야유로 억장이 무너졌다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훗날 노벨문학상을 탄 러드야드 키플링의 원고를 퇴짜 놓으며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는 이런 거절 편지를 썼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선생께서는 영어를 쓸 줄 모르는군요.”

프랑스의 한 편집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고를 읽다 두 손 들면서 이런 말도 했다. “내가 아둔해서 그런지 몰라도, 주인공이 잠들기 전 침대에서 뒤척이는 모습을 서른 페이지나 묘사하신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악평에 악평으로 복수한 작가도 있다. 시인 E. E. 커밍스는 열 군데 넘는 유명 출판사에서 딱지 맞은 뒤 간신히 책을 내면서 헌사에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썼다. “이들에게 감사 드리지 않는다. 사이먼앤드슈스터, 랜덤하우스, 하퍼스, 스크리브너스….”

아일랜드 극작가 브랜던 비언은 문학적 재능이 모자라 창작을 포기한 사람들이 서평을 쓴다고 했다. “비평가들은 할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가 없다.”

 

02_가장 큰 실수

그렇다고 출판사와 평론가만 대가를 못 알아봤는가? 그것도 아니다. 대가들도 대가끼리 못 알아봤다. 혹은 인간이 마음에 안 들어서, 혹은 자만심, 질투심, 교만함에 휘둘려서 그런지, 때로는 단순히 다 읽기 귀찮아서 그런지 서로를 깔아뭉갰다.

볼테르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고 “술 취한 야만인이 쓴 줄 알았다”고 했다. 샬롯 브론테는 제인 오스틴에 대해 “약삭빠르고 영민할 뿐”이라고 했다. 눈 밝은 앙드레 지드도 문예잡지 ‘누벨르뷔프랑세즈’ 주간으로 일할 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가치를 못 알아봤다. 그는 다른 출판사에서 책이 나온 뒤 비로소 정독하고 프루스트에게 사과 편지를 썼다. “이 원고를 거절한 건 우리 잡지가 저지른 가장 커다란 실수요.”

헤밍웨이의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썼지만 이 책이 다룬 1차 세계대전 후의 황량한 연애는 지금도 문학청년들 가슴을 울린다.

고전은 세월이 검증하고 독자가 기립박수 친 초장기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도 조이스의 대작 ‘율리시스’를 읽고 “산만하다”고 지겨워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명작가가 되려면 “그러니 좌절 말고 계속 쓰라”고 권한다. 시간과 독자가 판단하니 말이다. 일단 어떤 책에 ‘고전’ 혹은 ‘명작’이라는 딱지가 붙고 나면 무식하다고 욕먹을까 봐 함부로 솔직한 감상을 말할 수 없게 된다.

 

03_인내의 결과

만사는 치열하게 노력하며 끈기 있게 기다리는 자에게 찾아온다. 인간의 지혜는 단 두 단어 ‘기다림과 희망’으로 집약된다.  기다림은 우리의 마음속에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꾸게 한다. 그리고 그 꿈은 소망의 기다림을 다시 이끌어 낸다.

오늘의 우리 일에 큰 성과가 없고 사면팔방이 꽉 막힌 것 같지만 마음에 소망을 품고 기대하며 기다리면 기회의 문은 반드시 열리며 우리에게 기적은 기차처럼 기습한다.

독일이 자랑하는 문학가 괴테의 최고작은 ‘파우스트’이다.  그가 23세에서 82세까지 장장 60년간 써서 완성한 작품이 ‘파우스트’이다. 그는 법학자요, 정치가요, 사상가요, 소설가요, 시인이요, 물리학자이다.

그런데 그 작품은 그런 것 하고는 상관도 없다. 그 작품은 순전히 인내의 결과였다. 요즘엔 인내가 없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그날그날 그냥 쉽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삶에 깊이가 없고 생각이 없고 무게가 없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익에 집착하고 내가 좀더 유리한가에 따라 움직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온갖 배반과 유익과 이익과 유리함만 좇아가고 있다.

 

글 / 송기태 (상담학박사·알파크루스대학교 원격교육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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