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

하버 브리지를 건너는데 어느 해 가을의 철탑이 떠오른 건, 잿빛 하늘 때문이었을 것이다. 30여 년 전 이즈음, 나는 인천 용동 마루턱에 있는 아치형 철탑에 오르고 있는 한 선배를 지켜보아야 했다. 허리 벨트, 안전모도 없는 그에겐 전단지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허리춤에 동여맨 가방은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철탑 뒤로 잿빛 하늘과 회색 건물들이 영화 속 배경처럼 어우러졌다. 나와 동기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골목마다 진을 치고 숨을 죽였다대한서림 옆 골목에 서 있던 나는 그의 머릿속이 가방속보다 더 무거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이슈도 날짜도 기억에 없다. 그런데 철탑을 오르던 그의 마딘 몸짓과 먹빛 하늘만은 왜 이렇게 또렷하게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일까. 1980년대, 빠른 경제 성장과 5.18이란 화두 속에서 우리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아니면 중간이 없던 시절이었다. 유신의 땟국물은 여간 해서 빠지지 않았다. 아니, 한 곳이 빠졌나 싶으면 다른 곳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체가 물들어 있는 것은 간과하고 진하게 물든 곳만 지워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었던 셈이었다.

운동권이라는 신조어가 대중적으로 퍼졌다. 그런데 진보와 민주화의 선봉이라 자처하던 이곳도 들여다보면 다를 바 없었다. 선배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두 갈래 길만 제시했다. 흑백 논리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흑과 백보다는 농도 짙은 회색일 때가 많았다.

스물 두 살, 대한민국의 꽃다운 청년 C 선배는 회색인이 되지 않기 위해 철탑을 오르는 중이었다데모를 주동해서 다는 별은 색깔을 증명하는 증명서였다. 군 입대를 앞둔 운동권 남자들이 선택해야만 했던 길, 별을 달거나 강제 징집을 당하거나….

 우리는 그렇게 보통 사람의 삶을 뒤로하면서 어둠 속에 있는 진실을 알려 했고 달라질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데 그 지점을 싸고 도는 기류는 어쩐지 잿빛 톤으로만 내 기억에 남아있다설익은 젊음을 흑백 논리에 저당 잡히고 세월을 소진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많이 흔들렸던 날이었다.

 끌려간 선배와 남아있는 나 사이에 끼인 간격을 좁히지 못해 한동안 통증에 시달렸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선배는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군대로 강집 되었다. 너무 선한 용모와 온순한 성품 때문에 취조관들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후문이 유력한 이유로 돌아 다녔다그 후 우리는 저마다 자리를 옮기고 싶어 조바심을 냈었고 각자의 방법으로 자리를 찾아갔다. 나 또한 현장으로의 선택을 회피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색인 대열에 자리 매김을 했다. 아득히 멀리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다.

 얼마 전, 문학인들의 모임 단톡방에 ‘시드니 촛불혁명 2주년 기념행사’ 공고가 올라왔다. ‘김 아무개님이 퇴장했습니다. 박 아무개님이 퇴장했습니다…’ 연이어 퇴장을 알리는 메시지가 뜨고 정치성향이 있는 이슈는 자제해달라는 누군가의 메시지가 올라 왔다.

 가짜 뉴스를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덧붙이며 끝을 모호한 색깔로 마무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비이락일지 모르지만 촛불혁명에 대한 거부감처럼 여겨졌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가 마음이 불편했다. 2년 전, 시드니 첫 번째 촛불모임 공고가 SNS를 타고 물결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스트라스필드 광장 공사 관계로 장소 변경’에 관한 정보가 흘러 들어왔다. 당시 나는 그저 구경꾼 마냥 흐르는 물살을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그물망 하나가 삐죽이 올라와 물살을 그냥 흘려 보내질 못했다. 속해 있는 종교모임 단톡방에 공지를 공유한 것이다.

그때 바로 올라 온 외마디 답이 빨갱이였다. ‘빨갱이라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빨강이라…’ 둔탁한 빗장이 심장에서 턱 걸렸다. 온 몸을 돌아다니던 빨강 피가 하얗게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큰 죄를 지은 사람 마냥 아주 죄송하다는 말로 상황을 종료했지만 불편한 감정은 쉽게 삭혀지질 않았다. 무엇인가 많이 변화된 세상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여전히 색깔론에 갇혀 있는 우리였다. 그런데 그때 나는 뭐가 그렇게 죄송한 것이었을까….

손가락 한 개만 톡톡 거리면 세계 소식이 다 열리는 세상을 살고 있다. 조국 소식에 목말라 헐떡거리며 살던 때가 차라리 좋았다 싶을 정도로 눈만 뜨면 터져 나오는 드라마 같은 소식들에 쌓여 눈과 귀가 편안할 날이 없다아득히 멀어져 간 그 시절에는 감추어진 진실을 밝히고 싶고 알 권리에 대한 목마름이 우릴 움직이게 했었다.

2년 전 촛불이 타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세월호의 진실이 수장되면서 바다 속 물고기 수만큼이나 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넓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하나같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집단 멘붕을 알려왔었다.

멀리서 보는 내 조국 대한민국은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곧 침몰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행이도 촛불과 함께 다시 떠올랐고 세월호도 희미하게 몸체가 올라왔다그런데 나는 지금 여전히 색깔론에 갇혀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가 섞여 있어 진실을 취사선택해야만 하는 시대그렇게 가슴 졸이며 희생을 감내하며 기다리던 그 미래 속에 서 있는데도 이 세상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2018년 가을, 나는 지금 시드니 하버 브리지 철교에 서서 그 해 가을의 철탑을 바라보고 있다같이 가던 이들을 문득 손 놓아 버린 거기, 다시 손 붙잡고 말 한번 붙여 보고 싶지만 아무도 없는 여기는 어디인가. 인천의 작은 철교 아래에서 하버 브리지 꼭대기에 옮겨 와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 빛깔로 살고 있는 것일까오늘 시드니 하늘은 먹빛이고 바다는 노랗다. 너무 멀리 왔나 보다.

 

유금란 (캥거루문학회 회원·수필가·산문집: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Previous article캠핑
Next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91강 강가의 꽃들은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