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바램?!

“싫다. 이 나이에 책상머리나 지키고 앉아 있으라니…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동료 선후배들은 저를 향해 ‘출세가 빨라 좋겠다’며 부러워했지만 서른셋의 어린(?)나이에 편집데스크 발령을 받은 저는 심하게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인사권은 사장의 고유권한’이라며 인사발령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고 한 달여에 걸친 저의 투쟁 혹은 투정(?)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편집데스크는 최소 10년 이상은 현장을 뛰다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저는 그때부터 이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다른 기자들처럼 현장취재를 하고 저녁에는 데스크 업무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가 월급을 두 배로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는 순전히 제 자신을 위해 그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했고 일거리를 집에까지 싸 들고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졌습니다.

몸이야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그리고 주변에서는 ‘참 희한한 친구’라며 쑤군대기도 했지만 저는 지금도 그때의 결정이 옳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시킨(?) 덕분에 저는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었고 그 같은 열정은 지금의 코리아타운으로도 고스란히 옮겨져 와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2주 동안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낮에 그렇게 시간을 쓰고 나면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순서입니다. 밤 열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하나하나 마무리돼가는 일들을 보며 저는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켜곤 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일들 중 하나가 이번 주 코리아타운에 실린 ‘주요 한인봉사단체 심층탐방’ 기사입니다. 더 나은 삶, 더불어 사는 삶을 교민사회에 실천하기 위해 가장 낮은 위치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분들의 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코리아타운은 지난해에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한인사회의 미래를 개척하는 5인 직격인터뷰’와 ‘시드니 한인 502명 대상 한인들의 삶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코리아타운은 전 세계 한인매체들 중 7개의 우수매체 속에 포함됐고 올해 2연패(?)를 욕심 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때마침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분석팀 과장 한 분이 ‘재외동포 언론 실태조사’를 위해 출장을 와서 두 번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4개 매체가 함께한 좌담회에서는 답답하기만 한 시드니 교민매체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도무지 개선점이 보이지 않는 내일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일주일의 짧은 출장기간 동안 교민매체 여러 곳을 일일이 방문하는 것은 물론, 주요 매체들과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도 가졌습니다. 그 밖에도 객관적인 현황파악을 위한 각계각층 교민들과의 만남, 다른 소수민족 매체 방문, 각종 언론관련 단체 및 전문가들과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빡빡한 일정을 짰느냐?’는 질문에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그분을 보며 문득 저의 30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귀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녹차선물세트까지 챙겨 들고 온 가녀린 체구의 그 분은 한국으로 돌간 후 알고 보니 세 살짜리 딸을 가진 워킹맘이었습니다.

해외출장 혹은 해외연수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외국에 나와서는 본질을 망각한 채 흥청망청 노는 일에만 몰두하는 일부 높은 사람들한테 그분의 일에 대한 열정과 출장스케줄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분야가 다 그렇긴 하겠지만 특히 매체는 전문성과 어느 정도의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야만 진정한 ‘언론’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이번 실사를 통해 파행과 역주행이 계속되고 있는 시드니 교민매체의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작지만 큰 바램’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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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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