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요

스완둥지로 날아들다, 파랑새는 있다… 정말, 나는 새가 되고 싶었을까?

오전에 받은 동생의 외식 권유 전화는 확실히 자극적이었다. 요즘 힘들게 다이어트를 실행하는 중이어서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승낙 하고야 말았다. 장소는 디와이 (DEE WHY) 비치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01_동생은 “언니는 오늘 새 고기를 먹을 것”이라 단언한다

낙조가 물든 바닷가에는 하루를 마감하는 피서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있었고 개구쟁이 몇몇 소년들은 여전히 철썩이는 파도에 열열이 환호를 하고 있었다.

식당은 아직 조용했다. 안벽에는 벌써 촘촘하게 붉은 등을 켜놓아 부담스러워 보였지만 은은한 클래식 음조가 분위기를 편안하게 안내하였다.

좌석에 앉자마자 동생이 메뉴판을 넘기면서 킥킥 웃는다. 나는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동생은 웃음을 참으며 같이 간 친구에게 언니는 오늘 새 고기를 먹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친구는 좀 의외라는 듯 동생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지난 이야기를 친구에게 풀어놓을 수밖에 없다.

그날도 오늘처럼 저녁이었던가… 여하튼 가족 외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약속 장소가 하필이면 시드니 중심가였다. 시내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주차난으로 고생고생 하다가 시간을 넘겨 헐레벌떡 식당을 찾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시내에 있다가 쉽게 왔지만 집에서 달려간 나는 지칠 대로 지쳐 미안한 마음보다 짜증이 앞섰다. 레스토랑 이름이 ‘41 (forty one)’이라니 정말 웃긴다고 불평부터 늘어놓았다.

 

02_새 고기가 너무 맛있어 하늘 보기가 황송해 보자기를 쓰고 먹는다는…

딸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엄마! 41 은 포크와 나이프를 상징하는 거야. 좋은 레스토랑이니 마음 좀 풀어.”

메뉴판을 훑어보아도 너무 지쳐서 그런지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다. 그때 눈에 확 들어온 메뉴가 ‘새 고기’였다. 새 고기에 대해 전에 재미있는 온라인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어떤 새 종류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어느 식당에서는 새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고객들이 하늘 보기가 황송하다고 모두 보자기를 쓰고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어릴 때는 ‘참새구이’라는 것도 있었다. 당시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참새가 소에게 ‘네 고기 열 점 주어도 내 고기 한 점하고 안 바꾼다’라고 한다고….

식구들이 독촉을 하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래 좋아, 난 오늘 새 고기를 맛 보겠어.” 가족들은 모두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속으로 나는 쾌재를 불렀다. ‘하루에 2시간 이상 하는 웹 써핑 덕분이지. 정보의 시대에 살면 정보가 최고라니까.’

 

03_ 새 고기 하는 식당 알아냈다고 불러내놓고 다른 메뉴라니?

“…….” 드디어 주문했던 새 고기가 식탁에 올려졌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새 고기를 썰던 나는 그만 기절할 것만 같았다. 어린 새 몸뚱이에서 시뻘건 핏물이 방울방울 스며나오는 것이 아닌가.

“우~웩~” 그날 나의 자존심은 한없이 무너졌고 배도 고팠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호주 어딘가에 새 고기를 아주 맛있게 요리하는 식당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기대인지 오기인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꼭 그 식당을 찾아내서 맛있게 외식을 하고 싶다는 희망이 오히려 힘차게 불 타올랐다.

‘galetto alla sicilliana De-boned bbq spatchcock with lemon, chili rosemary garlic & roasted vegetables.’ 식당 메뉴에 적혀진 바로는 시칠리아 전통 새 즉석요리에는 레몬과 고추, 로즈마리와 마늘 그리고 구운 야채로 맛을 낸다고 소개되어 있다.

멋지지 않은가! 맛있겠다는 내 말에 동생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새 고기를 주문하지 않았다. 친구도 소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새 고기 하는 식당을 알아냈다고 좋아서 불러내놓고 이제 와서 다른 메뉴라니?

 

04_혼자 먹은 새 고기는 맛이 있지도 맛이 없지도 않았다

내 눈치를 보던 동생이 변명을 한다. “모닝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우연히 식사 메뉴 중에 새 요리 소개를 보고 언니가 좋아할 것 같아서… 근데 내게 새 요리는 식욕이 안 생길 것 같아.”

결국 혼자 먹은 나의 새 고기는 맛이 있지도 맛이 없지도 않았다. 바싹 구워서 핏물은 안 보였지만 보자기를 쓰고 먹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할 것 같지 않았으니 다행인가 불행인가.

잠시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왜 이렇게 새 요리에 집착하지?’ 전에 어떤 분이 내가 쓴 책을 다 읽고 “새가 되고 싶으세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내가 당황해 하자 그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소 제목 두 개가 모두 새 이야기네요. 우연인가요?” 스완둥지로 날아들다, 파랑새는 있다. 정말, 나는 새가 되고 싶었을까?

 

글 / 그라시아 (글벗세움 회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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