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안개 속이다. 산을 보러 왔는데 한 치 앞도 가늠하기 힘들다. 축축한 공기 사이로 흙 냄새와 나무 냄새가 반긴다. 눈앞에 푸르게 펼쳐져 있을 블루마운틴의 경치를 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지난해 불탔던 자리엔 타고 남은 흔적을 딛고 생명이 이어가고 있다. 살면서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다 서로 버무려 돌아가듯이 나무들도 그렇게 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블루마운틴은 산불이 자주 난다. 지독히 건조한 날씨 탓으로 자연 발화된 산불이 한번 시작되면 여지없이 큰 불길로 이어져 인근의 주거환경까지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블루마운틴 나무를 뿌리째 태워버리는 걸 보지 못한다. 한 달 내내 산불이 번져 아예 사라져버리는 것 아닌지 우려하지만 불이 꺼진 후 색깔은 바뀌어도 그 장엄한 모습은 반드시 되살아난다.

요즘은 한국 뉴스 보기가 겁난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끔찍한 소식들을 열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살인이나 성폭력 사건도 연령과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일어난다. 친족 관계에서 행해지는 사건 소식을 접할 때면 과연 우리나라 소식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에 대한 사건 소식은 점점 더 잔인해지고 있다. 피시방 살인사건 범인의 얼굴이 공개되었을 때 잔인한 사건의 내용을 보며 악마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모습은 어눌해 보였다. 우울증약을 먹고 정신과에 다녔다는 진단서가 경찰에 제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심신미약 감형 반대의 국민청원이 빗발쳤다. 저 청년은 도대체 가슴속에 뭘 담고 있었기에 그토록 잔인해졌을까?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착각이라도 한 건 아닐까? 희생된 젊은이의 안타까운 사연도 가슴이 아프고 아직 창창한 나이에 살인범으로 전락한 사람도 안타깝다.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다. 한국 영화 보기도 겁난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무렇지도 않게 섬뜩하게 사람을 베고 피를 흘리는 장면이 펼쳐질까 봐 미리 영화 포스터를 꼼꼼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일상이 힘겨워졌을까? 모두가 우울증 환자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자신을 온전한 정신으로는 붙들고 있을 자신이 없어진 사회가 됐을까? 우리가 놓쳐버린 뿌리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풍족해진 세상이라는데 사건과 사고는 더 잦고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 크다. 세상에 좋은 책도 많고 지식과 정보도 넘쳐나는데 정작 알아야 할 기본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개가 걷히자 수묵화 같던 풍경 속에서 마알간 얼굴로 초록빛 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을 잠시 벗어나니 멈춘 듯 고요한 공간이 가까이에 있다. 며칠째 지끈거리던 두통과 어지럼증이 맑아지는 듯하다. 나무는 나무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심각한 불길에도 뿌리가 타지 않는 한 고사 하지 않는 유칼립투스의 존재처럼 우리에게도 끝까지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김미경 (수필동인 캥거루 회원 / 수필집 배틀한 맛을 위하여 / berala-ajoom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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