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민의 사전적 의미는 “외국에서 영구적이거나 오랜 기간 살 의도로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의 영토에 이주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이다.

허나 이는 판에 박힌 교과서적인 설명일 뿐이다. 함께 살아온 형제 친척 친구를 떠나 남은 인생을 홀로 버텨가야 할 이민이라는 삶을 작정하고 낯선 이국 땅에 몸담는 사람에겐 이민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고국에서처럼 이 동네 저 동네로 이사해 새 이웃과 친교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삶과는 본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민은 고독, 불안, 방황, 두려움과의 싸움이다. 고국에서는 지금까지 살다가 아무리 먼 곳으로 옮겨가도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습성에 젖어있는 같은 문화에 익숙해진 동족일 뿐이다.

그러나 이민은 다르다. 전혀 다른 익숙하지 못한 낯선 언어, 생김새가 다른 모양새, 곤혹스럽고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어색한 문화, 그것들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대중식당에서 코를 탱탱 풀어대는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 짓고, 꺼억 하며 자연스러운 생리작용의 일환인 트림을 하는 이민자는 자신의 트림에 놀라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

몇 명이 모여 즐긴 술자리를 끝내고 계산대 앞에 일렬로 죽 늘어서서 자기가 먹은 것만큼만 계산하는 그 야박하고 인정머리 없고 정나미 떨어지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오늘 술자리 계산은 내가 하겠다고 계산대 앞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인정 넘치고 후덕한 이타주의자인 이민자는 그들에 눈에는 도마뱀 닮은 해괴한 인종으로 취급되어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된다.

그들의 차별하는 눈초리가 두려워 그들의 일원이 돼야 한다는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서구문명이 우위라는 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이방인이라는 명패를 결코 떼어주지 않는 그들에게 동화되고 싶어 동족을 비하하는 언행에 젖어 드는 이민자는 불안하고 고독하다.

이민을 선택한 이민자들의 사연은 개인마다 다르다. ‘나라가 개떡같아서’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지상천국을 찾아서’ ‘새 삶을 위해서’ 등등 이민 온 이유와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그렇지만 정말 무얼까? 불법이민자라는 주홍글씨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이민을 단행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어떤 상처와 아픔이 담겨있는 걸까. 가슴을 열어 보여주질 않아서 그렇지 때론 이민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삶의 마지막 선택인지도 모른다.

리오그란데강은 멕시코에서는 리오브라보강이라 불리며 길이는 3,051Km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따라 흘러 멕시코만으로 흘러 든다. 리오그란데란 이름은 스페인어인데 리오 (Rio)는 강을 의미하며 그란데 (Grande)는 크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민을 원하는 중남미 사람들이 미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리오그란데강을 건너야 한다. 하지만 불법이민을 강력히 단속하는 미국의 감시로 인해 리오그란데강에서는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리오그란데강 인근에서 엄마로 추측되는 20대 여성과 젖먹이 어린이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해는 미국 국경과 리오그란데강 사이에서 28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체포돼 구금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 생명들이 교도소 같은 시설에 갇혀있는 거다. 단속은 계속 강화되는데도 국경을 넘으려는 목숨 건 이민자는 계속 밀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빠는 고국 엘살바도르를 떠나 미국으로 불법이민을 결심하고 리오그란데강을 헤엄쳐 건넜다. 먼저 23개월된 딸을 강둑에 데려다 놓고 아내를 데리러 다시 강을 헤엄쳤다. 불안해진 딸이 멀어지는 아빠를 부르며 강으로 뛰어들었다. 아빠가 곧바로 돌아가 딸을 붙잡았지만 거친 물살에 휩쓸려 아빠와 딸은 숨졌다. 아내는 이 장면을 보고 울부짖었다. 휩쓸려간 수백 미터 떨어진 강가에서 발견된 아빠와 어린 딸은 서로를 껴안은 채 엎드린 모습이었다. 가녀린 딸은 아빠의 목을 꽉 붙잡고 있었고 아빠는 셔츠 안으로 딸을 넣어 잡고 있었다.”

목숨 걸고 떠나온 아빠는 어떤 아픔과 희망을 품었는지 모르지만 누구든 더불어 살자고 안아주면 안 되는가? 거저 와서 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이민자의 삶인데.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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