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만남이 아름다운 것은 새롭고 순수하고 진솔하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나건 시드니 딸내미 집에서였다. 악수하고 말 섞으면서 만난 것이 아니라 그가 발행하는 잡지의 지면을 통해서였다. 그의 칼럼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기에 그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는 지면 위에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가 쓰는 ‘발행인 칼럼’은 존대어다. 그가 쓰는 칼럼은 문어체보다 구어체에 더 가깝다. 지인에게, 선후배에게, 이웃에게, 아내에게, 손자손녀에게 다정하고 낮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얘기하듯 칼럼을 쓴다.

그의 칼럼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그의 글은 동화책 속의 무지개가 그려져 있는 책장이다. 그가 그리는 세상은 깨끗하다. 그의 글속에는 사랑과 평화, 자유와 감사가 있다. 그의 글 속에서는 못된 것들, 흉한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싫고 좋고 구분해놓은 어른들의 경계도 없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뭔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번지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내가 소년처럼 순수해지는 느낌이다. 그런 그의 세상에 슬쩍 한발을 담가보고 싶었다. 편가르고, 흉보고, 헐뜯고, 증오하는 그런 세상을 벗어나보고 싶었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사위와 딸내미로부터 ‘그’에 대한 세간의 얘기를 들었다. 나의 상상대로 ‘멋진 사람’ 그리고 ‘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은 겉모습만 가지고는 그 사람 참 됨됨이를 알 수 없다는 걸. 사람은 오래 만나봐야 진정한 내면을 알 수 있다는 걸 나는 많이도 겪어봤다. 믿고 감쌌던 후배가 어이없는 뒤통수를 치고, 선하고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알았던 동료가 위선자로 드러나 나를 아프게 하고 분노케 했던 일들이 내게도 적잖이 있었다.

그렇지만 왠지 그의 미소 짓는 얼굴과 글은 벌써 오래 전부터 친교를 나눠온 벗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나는 ‘그’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그대가 칼럼을 쓰고 발행하는 <코리아타운> 속으로 들어가 그대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와 나는 글로 얘기를 나눴다. 그는 나와의 만남을 반기고 기꺼워하면서 나의 발 담금을 흔쾌히 약속했다.

‘그’와 약속대로 지정된 날에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원고를 보냈다. 그런데, 전날까지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전달되던 이메일이 ‘발송실패’라는 붉은 글씨를 보이며 수신을 거부했다.

수 차례 시도한 끝에 겨우 발송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읽지 않음’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을 조금 안다는 녀석에게 물으니 ‘수신거부’를 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설마, 그럴 리가! 그렇게 따뜻한 얘기를 나눈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약속을 깨버린단 말인가? 허긴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살이이긴 하지. 그렇게 2주일이 흐르고 나는 마음을 접었다.

헌데, 느닷없이 “혹시 최 선생님 맞으시면 회신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이 내 이메일에 떴다. 보낸 사람은 그였지만 이메일 주소는 달랐다. 나는 조금 섭섭한 감정을 담아 그에게 회신을 했다. 빠르게 답신이 왔다.

“선생님과 연락이 닿지 않은 2주 동안 제 나름대로 속을 많이 태웠습니다. 혹시라도 보내신 메일이 되돌아가서 선생님이 상황을 알아채셨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함께… 저간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 드리면, 코리아타운 메일로 hotmail, hanmail 심지어 호주 내 중요한 메일들조차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계속 벌어져 지난주에 웹호스팅회사를 긴급하게 옮겼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웹호스팅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갖고 있던 메일박스가 완전히 날아가버려 선생님을 비롯한 다음메일을 사용하시는 분들의 연락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문득 혹시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가 hashalbae? 라는 기억이 떠올라 메일을 보내봤습니다. 저녁 취재가 있어서 나갔다가 돌아왔더니 최 선생님 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기적을 만난 느낌, 반가움이 가득합니다.”

‘그’의 회신을 받고 나의 옹졸함이 너무 부끄러워서 혼자 얼굴을 붉혔다. ‘그’는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만남을 애닯아 하며 기어이 아름답게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 순수하고 진솔할 수 있다면 세상은 늘 ‘그’의 미소처럼 아름다울 것이리라.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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