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푸른 숲을 볼 수 있고 동백나무와 야생화가 만발한…

거제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군데군데 보이는 크고 작은 이름 모를 섬들을 품고 있다. 그 섬들의 유일한 푸른 빛들은 바다 위의 겨울 햇살을 받는다. 굴을 재배하는 양식장이 육지 가까이에 띠처럼 둘러져 있고 어부들과 인적이 보이지 않는 겨울 바다는 적막할 정도로 잔잔하다.

 

01_겨울에 간 거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경기도 잿빛 공기 속 겨울과는 상반되는 따스하고 맑은 겨울의 맛들이 어느새 피부 속 온몸으로 파고들며 자리잡는다. 반짝이는 햇빛들이 바다 위에서 눈부실 정도로 해맑게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바다 바람은 신선하고 깨끗했다. 바다는 언제나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햇빛들을 반사 시키며 황홀하게 날 맞아준다.

경기도 병점을 출발해서 거제도에 다섯 시간 만에 도착했다. 제부가 근무하는 회사 리조트를 이용하여 가족여행을 해온 지도 여러 해… 우리 가족이 한국 나가는 시간에 맞춰 연례 가족행사가 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자녀들이 어느덧 이제는 성인들이 되어 가고 있으니 세월의 빠름을 해마다 찍는 인증 샷에서 확인하곤 한다.

겨울에 간 거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중국에서 밀려온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경기도 쪽에 있던 날 우리들은 남쪽 바닷가 쪽에서 푸른 하늘을 즐길 수 있었다.

 

02_원래는 누에를 닮았다 해 누에섬이라…

나흘이나 요리하지 않고 매 끼니 잘 차려진 한정식을 맛보았고 사우나도 매일 즐길 수 있었으니 나에게는 일상 탈출의 기회였다. 어른과 아이들을 위한 여러 종류의 스포츠와 놀이터는 덤이었다. 가족들끼리 모여 밀렸던 회포를 풀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장사도 관광은 이번 여행의 특별한 선물과도 같았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 속한 장사도는 거제에서 가까운 섬이다. 원래는 누에를 닮았다고 하여 누에섬이라 불리다 일제시대 이후 장사도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섬이 긴 뱀 모양을 닮아 장사도라고 불린다고 했다. 사시사철 푸른 숲을 볼 수 있는 장사도는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등 많은 상록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야생화들로 만발한 섬이다.

바다가 보이는 공연장, 조각공원, 메밀로드, 장미정원 옆의 노천 족욕탕, 장사 분교의 영상실, 교육장, 동백꽃길 등 하루 힐링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장사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거제에서 유람선을 타고 15분쯤 가면 섬에 도착한다. 배 안은 히터를 너무 과하게 틀었던지 무더웠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에너지 낭비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며 신선한 바람을 쐬려 갑판으로 나갔다.

 

03_섬 어디를 가나 동백나무가 화려함을 뽐내고 있고

길손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 먹으려는 하얀 갈매기 떼들이 배 꼬리에 무리를 지어 배와 함께 순항하고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까마귀 한 마리… 아마도 자기가 하얀 갈매기라고 착각하면서 무리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인 것을 잊고 호주에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닮아 피식 웃음이 났다. 섬의 입구에 도착하니 동백꽃들이 반긴다. 장미를 닮은 동백나무들을 보면서 제대로 키우지 못해 다 말라 비틀어 죽어버린 우리 정원의 동백나무들이 생각났다.

옆집 담을 경계로 쭉 심어져 있던 동백나무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었는데… 겸손한 아름다움, 기다림, 애절한 사랑의 꽃말을 가지고 있는 동백나무. 식물에 대한 나의 지나간 무관심과 무지가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섬 어디를 가나 동백나무가 그 화려함을 뽐내고 있어 아름다웠다. 진 푸른 잎과 강렬한 빨간 꽃의 대조는 눈부셨다. 옛 선조 여인들이 치장할 때 반짝반짝 윤기 나게 했던 머리 기름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동백나무 열매가 아닌가.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는데 곳곳에 자연의 모습처럼 위장되어 숨겨져 있는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곳에서 촬영했던 여러 한류 드라마 삽입곡들이라고 했다.

 

04_식물원에는 온갖 종류의 꽃과 식물들로 가득했다

귀에 익은 퀸의 음악도 들렸다. 골프를 칠 때 18홀을 돌 듯이 유람선에서 내려 입구에서 시작해 18 코스를 돌면서 섬 투어가 끝나게 되니 왠지 더 신비롭다.

무지개 다리에서 바라다 보이는 서해의 모습은 정겹다. 이 다리에서 촬영한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사진을 찍는 이들이 보였다. 지금은 폐교된 장사도 분교인 죽도 초등학교뿐 아니라 옥포해전 때 이순신 장군이 장사도를 거쳐 갔다는 역사적인 기록들도 볼 수 있었다.

2005년부터 삽질을 시작한 공원 개발과정을 담아 놓은 사진기록들을 보면서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노고로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공원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감사했다.

온실로 이루어진 식물원에는 온갖 종류의 꽃과 식물들로 가득했다. 특이하게 생긴 이름 모를 새도 보았고 식물들을 하나씩 관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아쉬웠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바다가 보이는 섬 집이 보였다. ‘엄마가 섬 그늘에…’ 어디선가 ‘섬 집 아기’ 노래가 들려온다. 마루에 앉아 그 노래를 듣는데 정말 스르르 잠이 들 것만 같이 안락하고 포근했다.

 

05_장사도는 무인도… 식당 직원들은 매일 배로 출퇴근

풍수지리에 좋다는 배산임수에 자리한 이 소박하고 정겨운 한옥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어 우리들에게 따사로움을 선물했다. 소박한 옛 부엌을 보고 대청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다 보니 마치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대식 미술관은 섬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한국 옻칠 회화, 자개와 나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소박한 전시관은 섬에 어울렸다. 한국 전통기법이 현대적 미술과 접목되어 나온 작품들은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한참을 넋을 잃고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밖으로 나오니 카페와 식당이 보였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차를 마시고 잠시 피로를 풀었다.

장사도는 무인도이기 때문에 식당 직원들은 매일 배로 출퇴근 한다고 한다. 자그마한 교회당이 있는 곳으로 발길이 닿았다. 80여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생활할 당시에 한 여교사가 이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교회라고 하기엔 너무 작아 ‘기도하는 방’이라 하는 것이 더 어울려 보였다. ‘뱀 섬에 세운 십자가’ 라 불리는 이 교회는 건축 당시 자재를 선착장에서 산 꼭대기까지 옮기느라 천 번 이상을 왔다 갔다 하여 완성했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06_가족들과 장사도에서 만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개방하고 있었다. 장사도 여행을 오후 일정으로만 잡고 오기에는 너무 빠듯한 감이 있었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하루를 여유 있게 이곳에서 보내고 간다면 참 좋을 듯싶다.

가족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어도 이해하는 이들이다. 타인들이 인연이라는 끄나풀로 만나서 가족이 되어 그 테두리 안에서 서로 내 편이 되는 곳….

그들에게 둘러싸여 언제나 든든함을 느낀다. 부모 자식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보여주는 곳… 시간이 갈수록 그 소중함과 사랑이 깊어만 가는 곳.

이런 가족들 하나하나가 모여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여행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가족들과 장사도에서 만든 또 한 장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며 장사도를 뒤로 하고 배에 몸을 싣는다. 나의 일상이 새롭게 느껴지는 시간을 기다리며….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School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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