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들은 무얼 먹고 살까요?

오디는… 나에게 이민자의 자존심을 구겼던 고통의 열매로 다가왔다

내가 즐겨 걷던 혼스비 맥콰리 로드 트랙 입구에 뽕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오디가 익는 철엔 오디를 따서 먹는 재미로 부지런히 드나들었는데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오디는 산새와 포섬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동물들의 먹거리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펜리스의 오디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01_검붉은 오디가 달린 아름드리 뽕나무의 광경은 숨을 멈추게

나는 오래 전부터 오디에 풀지 못했던 어떤 한(?)이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창시절의 여름방학은 오디 철을 지나고서야 방학을 맞이했다.

이모들이 한결같이 조금만 일찍 왔어도 오디를 실컷 먹게 해주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의 표현은 마치 오디 철을 지나서야 맞이하는 방학이 나의 잘못인 양 원망스러웠었다.

나에게 오디 맛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이모들과 내가 한 번도 함께 먹어보지 못한 오디에의 불만은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신비감마저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간식거리라고는 삶은 감자밖에 제공하지 못하던 이모들의 아쉬움은 줄 수 없었던 오디로 자신들의 친절을 다 쏟아 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오로지 뽕나무 밑에서 따먹는 오디 맛의 궁금증은 오랫동안 잊혀져 버린 숙제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오디를 따러 가자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정말 귀가 번쩍 열렸다. 오디라니? 이 호주에서? 뿐만 아니라 오디가 무지무지하게 많다는 것이다.

고민할 새도 없이 따라 나섰고 누가 준비했는지 모르지만 그날 갔던 예닐곱 명의 손에는 모두 하얀 들통이 들려져 있었다. 햇볕을 다 가린 뽕잎 사이사이로 검붉은 오디가 달린 아름드리 뽕나무의 광경은 나의 숨을 멈추게 하였다.

 

02_나무마다 사람들이 둘씩 셋씩 엉겨 붙어 잡아당기고 매달리고

수백 미터에 걸친 뽕나무로 된 가로수 바닥엔 까맣게 익어 떨어진 오디가 사람들이 발에 밟혀 지저분하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다 오디라니! 어떤 것은 씨알이 내 엄지손가락만 했다. 얼른 따서 입에 넣어보니 달짝지근한 오디 특유의 향이 아련한 기억을 자아냈다.

헝클어진 머리를 검은 고무줄로 묶은 맘 곱던 막내 이모가 대소쿠리를 옆에 끼고 뽕잎을 따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것도 잠깐, 얼른 따야 했다. 신이 나서 어느 나무부터 따야 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다를 흩어져 오디를 따기 시작했다.

익은 오디를 찾느라 손을 뻗고 목을 빼고 발돋움들을 하는데 나도 질세라 따는 것에 정신이 팔려 치마 입은 것도 잊은 채 어느 새 나무를 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욕심만 가지고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딴 양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나무에 무진장 달려 있으니 급할 것은 없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보니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 따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우리 일행처럼 따고 있는 사람, 지금에야 따러 오는 사람, 인종도 다양했다 흑인 가족들, 남미인들…. 가관인 것은 우리가 들고 온 하얗고 길쭉한 들통이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의 손에까지 모두 쥐어져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무마다 사람들이 둘씩 셋씩 엉겨 붙어 가지를 잡아당기고 매달리고 또 어떤 이들은 나무 밑에 커다란 천을 깔고 긴 장대로 후려치기를 하고 있었다.

 

03_노랑머리 여자… 오디를 입에 넣고는 어깨는 들썩, 고개를 갸웃

이런 일이 한 해 두 해 전부터 일어난 행사가 아니었던지 뽕나무의 손 닿는 가지는 사람들이 잡아당긴 탓인지 아예 아래로 축축 쳐져 있는 것이 그때야 보였다. 인간들의 잔치가 뽕나무에게는 수난처럼 보였다. 부끄러웠다. 처음부터 오디를 따지 않고 한 켠에 물러서 있던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다시는 이렇게 오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래야 한다고 대꾸를 하고 보니 반쯤 채워진 내 들통의 오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 근처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조깅을 하던 노랑머리 여자 하나가 내 옆으로 왔다. 내가 딴 오디 통을 들여다보더니 나무에서 오디를 하나 따서 입에 넣고는 어깨는 들썩, 고개를 갸웃하고는 흥미 없는 듯 가버렸다.

순간 저들은 처다 보지도 않는 오디에 못 먹으면 큰 일이 난 사람처럼 난리를 피워 대던 나의 모습이 속상했다. 그런데 왜 이모들은 오디를 그렇게 찬사 했으며 나는 왜 그 맛을 그토록 목말라 했을까?

그래서 찾아본 문헌에서는 우리 문학사에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 받았고 사연 많았던 뽕나무는 키가 작고 잎이 무성해 남녀가 유별했던 시대 숨어서 밀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한다. 처녀 총각은 물론 동네 과부아낙과 홀아비 남정네의 정분도 뽕밭에서 이루어졌으리라.

종 부리듯 매운 시어머니의 눈도 뽕잎을 따면서 피할 수 있었으리라. 아낙들의 소드래 (헛소문)도 뽕나무 그늘 아래서 나왔을 것이라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04_향수라 생각했던 것이 분함과 부끄러움으로 순간 괴로웠던 것

아직 시집가지 않은 과년한 가시내들이 익은 오디가 주는 주전부리와 함께 뽕잎을 따면서 귀엣말로 속닥거리며 키들거렸을 이야기들이 짐작이 간다. 오디열매의 그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기에 더욱 더 진한 맛을 내는지도 모를 일이다.

명주를 제공해주던 누에의 먹이로 사랑 받았던 뽕나무, 선조들의 애환과 해학이 깃들어진 사랑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한 감미로운 기억으로 뽕나무와 오디가 나에게 주는 위로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향수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그리움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내 향수의 그리움을 깨뜨렸던 노랑머리의 동작에 나는 분한 마음을 담아 아는 분께 먹거리와 함께 우리의 삶의 정서가 담긴 열매에 왜 내 스스로 눈치가 보여지느냐며 따지 듯 한 나의 항변에 그분은 그냥 조그만 바구니로 하나만 땄으면 좋았을 걸… 하고 쓴웃음을 지으셨다.

그랬다. 아름다운 향수에 나의 욕심이 더해져 욕심껏 가지려 했던 나는, 나도 먹고 이웃도 주고 작년 경험자가 냉장고에 저장해 해가 바뀌도록 먹었다는 이야기에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욕심 그것이었다.

그랬기에 향수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언가의 분함과 부끄러움으로 순간 괴로웠던 것이었다. 이제 오디는 나에게 이민자의 자존심을 구겼던 고통의 열매로 다가왔다. 머리를 질끈 묶은 노랑머리의 여자가 내 들통의 오디를 보고 땀을 훔치며 말하는 듯하다. “산새들은 무얼 먹고 살까요?”

 

글 / 정혜경 (글벗세움 회원·낚시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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