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즈옹

꼬리를 휘저으며 녀석이 폴짝 품에 안긴다. 아빠가 키우던 녀석은 어느 날부터 내 차지가 되었다. 오글보글한 흰 털을 가진 푸들 때문에 내 인생이 고달프다.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한 아빠는 ‘뿌즈옹’을 멋있게 발음했었지만 나는 그냥 ‘푸종’ 하고 부른다. 하지만 녀석은 떠나버린 옛 주인이 생각날 때마다 벌렁거리는 가슴으로 뜨겁게 내 몸에 안긴다. 그 때마다 내가 따스한 목소리로 천천히 속삭여 주는 사랑의 말을 듣고서야 깊은 잠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금방 푸종을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이른 아침 푸종을 앞세우고 산책을 간다. 하루라도 건너뛰게 되면 녀석은 눈알을 위로 굴리며 종일 내 발길을 가로막아 선다. 아빠는 녀석의 버릇을 단단히 잘못 들여놓았는데 그는 한국인을 상대로 투어가이드 잡을 뛰었더랬다.

삼년 전인가, 사년 전인가, 어쩌면 오년 전일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한국에서 관광차 온 한 여인을 따라 고국으로 귀화해 버렸다. 그는 평소에 마미보다 푸종을 더 좋아했었다. 그런 아빠가 푸종을 버리고 이름 모를 여인을 따라 가버린 것은 참으로 해석하기 곤란한 일이다.

그 날도 평소처럼 푸종을 앞세우고 산책을 나섰다. 눈발이 날리는 창밖을 한 참 바라보며 망설이던 나는 푸종에게 체크무늬 개코트를 입혔다. 나도 목도리와 털모자 그리고 장갑과 오리털 패딩으로 중무장을 했다. 현관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자 스노위 리버 방향에서 싸락눈을 실은 바늘바람이 불어와서 눈을 찔렀다. 고개가 젖혀질 것 같은 거친 바람을 피해 나는 반대쪽으로 발길을 꺾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한 줄기 찬바람과 또 한 줄기 따뜻한 바람이 눈발 사이로 실크 스카프처럼 내 얼굴을 훑으며 스쳐갔다. 마치 실내와 실외처럼 또는 따뜻한 아빠의 미소와 차가운 마미의 미소처럼 서로 다르게. 끌어 올린 푸종을 부서져라 껴안았다.

한 참 걸어가는데 갑자기 컹, 하고 개가 짖었다. 검은 개였다. 팬스 안에는 똥개처럼 생긴 검은 개 외에도 십여 미터 떨어진 잔디밭엔 몸집이 유난히 큰 흰개가 누워있었다. 검은 개가 계속 짖어댔다. 땅에 내러 선 푸종의 털이 등뼈를 따라 곤두섰다. 눈발이 조금씩 굵어졌고 바람도 점점 더 거칠어졌다. 잔디밭에 죽은 듯 누워있는 흰개의 털은 칼바람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 순간 가슴에서 쨍 하고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애정을 흠뻑 받고 있는 푸종과 비교하자 두 마리 개가 무진장 불쌍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펴보아도 주변에 매트리스 한 장 안 보였다. 나는 털모자를 벗어 패딩 주머니에 넣고 팬스에 바싹 붙어 섰다.

호주머니의 캥코가 손에 잡혔다. 푸종이 영리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주는 캥코는 개들이 그 냄새에 환장을 하는데 캥거루를 말린 것이다. 개들은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듣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흰개가 냄새를 듣고 다가오길 애태우며 유도했다. 하지만 녀석은 꼼짝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철망 사이로 손을 밀어 넣고 먹이를 흔들어댔다.

검은 개가 팬스에 바짝 다가왔다. 녀석이 울퉁불퉁한 입을 벌리고 분홍빛 잇몸으로 캥코를 닁큼 물었다. 그러나 싸늘한 잔디밭에 누운 흰개의 몸엔 점점 두껍게 눈이 쌓여갔다. 검은 개의 눈이 풀잎처럼 흔들린다고 느꼈을 때서야 나는 흰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딘 나의 감각이 한심했다. 죽은 짐승을 산짐승으로 여기다니!

내 심장이 축축해졌다. 눈(雪)물인지 눈물인지 알지 못할 눈가의 습기를 손등으로 훔쳤다. 그새 흰개의 시체 위에 눈이 쌓여 무덤처럼 봉긋했다. 개가 죽은 사건을 알려야 했다.

“The dog is dead!”

날 센 목청으로 힘껏 외쳤다. 개미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선데이모닝 여섯시의 마을엔 내 외침만 무심하게 메아리쳤다.

나는 집의 양 옆과 뒤를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사방에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을 뿐 틈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실눈을 들이댔지만 빛 한 점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 안에서 마리화나를 피운다고 해도 연기 한 줄기 삐져나오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 때 그 집 코너에 설치된 CCTV를 발견했다. 섬뜩함에 머리가 곧추섰다. 나는 주춤 뒷걸음쳤다. 푸종을 껴안으려는데 코너에 ‘접근금지’란 팻말이 보였다. 나는 푸종을 와락 껴안고 슬금슬금 발길을 돌렸다. 걸으며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뒷걸음질로 걷다 시야에서 그 집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야 뛰기 시작했다. RSPCA에 신고를 해야 했다.

신고를 하려고 검색해 본 흰개는 그레이트 피레니즈종이었다. 검은 개는 도무지 종을 알 수 없었다. 1300 전화번호를 눌렀다. 세 번의 신호가 울리고 남자의 투박한 저음이 들렸을 때 번쩍하고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화기를 꺼버렸다. 따듯한 집안의 공기가 몸을 포근하게 녹여주었다. 죽어 있었던 흰개를 잊은 건 아니었다. 갑자기 돌아선 내 심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함에도 삼 일 동안 곰곰 개들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침으로 마멀레이드 바른 토스트를 먹다말고 내가 전자공학도란 사실에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카메라는 가짜였어. 분명해! 내가 팬스 안으로 손을 넣었을 때조차 센스는 켜지지 않았어.”

내 중얼거림을 듣고 내 표정을 훔쳐본 푸종이 밖으로 튀어나갔다. 아빠는 푸종처럼 똑똑한 개를 고작 한 여인과의 스캔들과 교환 버렸다. 흰개는 수거되었겠지. 호주머니에 캥코를 잔뜩 쑤셔 넣었다. 평소보다 한 참 늦은 시간이었다. 오전 열시경이라고 해도 7월말의 날씨는 쌀쌀했다. 내 발길이 갑자기 당당해졌다.

나보다 먼저 뛰어가는 푸종을 “푸즈옹!” 하고 불러 세웠다. 나는 주머니에서 먹이를 꺼내 들었다. 슬픔에 젖어 있을 외로운 녀석을 캥코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캥코를 만지작거리자 먼 옛날 개들의 조상이 상상되었다. 인간에게 길들여지기 전 야생의 개들이 불모의 땅을 달리고 있었다. 굴속에 새끼를 보호하고, 하울링으로 애정의 메시지를 보내고, 등뼈를 따라 털이 곤두선 개들이 캥거루의 시체를 앞에 놓고 서로 흥분하며 으르렁거리는 모습….

몽상에 잠겨 걷다보니 금방 그 집 앞이었다. 검은 개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흰개의 시체는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너무 한다 싶었다. 주인을 향해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며 검은 개에게 캥코를 내밀었다. 그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너무 놀라서 내가 아직 몽상에서 깨어나지 않았다고 믿었다. 눈가죽을 문드러지도록 비볐다. 무덤을 파헤치고 걸어 나오는 주검처럼 흰개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팬스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는 흰 개를 보자 기쁨보다 충격이 더 컸다. 녀석이 캥코의 소리를 듣고 그 큰 몸을 간신히 움직여 다가와서 백태 낀 두툼한 혀를 치아사이로 내밀고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보자 한국으로 도망간 아빠가 돌아온 것처럼 반갑고 기뻤다. 순간 앓고 있던 몸이 둥둥 부상할 것 같아 다리에 힘을 꽉 모았다. 한 개 두 개 세 개까지 받아먹은 흰개는 고개를 흔들었다. 녀석의 동공은 파랬고 코가 유난히 빨갰다. 그들 두 마리 개는 사랑이 뭔지, 버림받는 심정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그 날부터 나와 푸종에게는 비밀 하나가 생겼다. 흰개는 죽은 듯 누워 있다가도 내가 캥코를 팬스 안으로 들이밀면 몸을 일으켜 먹이를 향해 다가왔다. 내 심장에서 참을 수 없는 연민과 환희가 뒤섞였다. 캥코를 쥔 손을 흔들어서 철망 안으로 넣을 때 주인이 깨지 않도록 푸종을 꼭 껴안고 숨소리를 죽였다. 두 마리 개 이야기는 민지에게 비밀이었다. 혼자만 가직하고 싶었다. 하긴 그녀라면 이야기를 듣자마자 십중팔구 풋, 하고 웃을 테고 보나마나 명품가방에서 방금 출시된 겔럭시 S10을 꺼내 검색하자고 설칠게 뻔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민지가 집 앞에 오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녀가 약속시간보다 삼십분 일찍 도착해 문자를 띄웠다. 내 생일날이었다. 그녀의 성격은 아빠와 비슷했다. 성급하고 일방적인 면이 특히 그랬다. 2년차 한국 유학생인 그녀를 마미가 싫어하는 것은 순전히 아빠 때문이다. 호주인인 마미는 아빠가 떠난 후 한국인, 아니 중국인과 일본인까지 싸잡아서 저주를 해댄다. 내 귀에는 그런 의미로 번역되어 들렸다. 생김새가 아빠와 비슷한 인종만 보면 치아를 갈아대는 마미를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문을 열자 푸종이 먼저 튀어나갔다.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나는 녀석을 안고 그녀의 화난 쌍꺼풀에 키스를 했다. 푸종이 발작을 일으키며 두 사람의 팔과 얼굴을 할퀴었다. 개의 질투심은 인간보다 훨씬 치열하고 전투적이다. 그녀의 콧등에 흐르는 피를 닦아 주다 번쩍 두 마리 개가 떠올랐다.

“민지, 잠깐!”

대답도 듣지 않고 달렸다. 기이하게도 달리는 내내 흰개의 환영이 보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깊이 잠든 흰개의 환영은 너무 선명했다. 꿈속에서 늑대라도 만났는지 흰개의 발이 경련을 일으키며 요동쳤다. 입술을 실룩거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야성의 소리로 슬프고 길게 울고 있었다. 나는 흰개를 구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더 빠르게 뛰었다. 환영과 현실에 혼돈이 일어났다.

두 마리의 개가 보이지 않았다.

‘너희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아.’ 엄마는 내게 대놓고 말하곤 한다. 둘은 서로를 외계인이라 우겼다. 음식을 앞에 놓고, 티브이 채널을 가지고, 침대의 방향에 대해서, 드라이브 경로에…, 사소한 문제를 놓고 투쟁적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그 두 사람이 한 때는 뜨겁게 사랑했다는 사실이 안 믿어진다. 하지만 두 육체의 분화구에서 태어난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잠시 골똘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드디어 주인이 두 마리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갔구나. 그럼 그렇지, 그들은 그들의 개들을 사랑해. 단지 아빠와 나랑은 다른 방식일 뿐. 중얼거리며 휘파람으로 ‘Better be home soon’을 신나게 불었다.

번개처럼 달려온 나는 민지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녀가 눈을 흘겼다. 생일선물 상자를 열었을 때 사진 한 장이 달랑 들어있었다. 그녀였다.

‘생일선물로 나를 줄게. 아침마다 내 사진에 키스하는 것 잊지 말 것!’

메모를 읽던 나는 푸하하하…, 웃었다. 자동차가 흔들렸다. 나를 향한 그녀의 지나친 집착 때문에 피곤했다.

우리는 습지로 가서 작은 보트를 빌려서 타고 아침을 먹을 계획이었다. 그 보트위에서 피부 접촉을 하게 될 테고. 사람들이 눈길이 미치지 않는 깊은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가서 둘 만의 비밀을 만들며 놀게 될 것이다. 나는 마미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푸종을 집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출발했다.

다음날 더 많은 캥코를 주머니에 눌러 넣었다. 날씨는 포근했다. 개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서서 생각 했다. 주인이 개를 데리고 여행을 갔을 거야. 해안가를 달리는 차창으로 개의 귀가 깃발처럼 날리는 모습이 눈에 보일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더 많은 캥코를 주머니에 넣었다. 개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륜구동차를 타고 먼 곳을 달리는 그들을 상상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났다. 두 마리의 개가 주인이 운전하는 카라반을 타고 알리스 스프링과 타나미 사막을 가로지르는 멋진 상상을 하자, 울컥 부러움이 솟아올랐다.

두 달이 지났을 때 나는 잔인한 상상을 떠올렸다. 커튼이 굳게 쳐져 있는 그 집 앞에 서서 잔혹한 장면을 연상했다. 그들이 개들을 살해했을까?

주인이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관심을 보이는 인간의 두 눈을 가장 두려워하잖아. 그들은 피해망상에 젖어 살아가지. 자신들의 주거지에 접근하는 인간의 그림자조차 경계하고…, 하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육 개월이 지난 오늘 나는 지쳐버렸다. 두려운 생각만이 빙산처럼 차갑게 부풀어 오른다. 민지에게서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푸종을 버리고 떠난 아빠를 주먹으로 한 때 때리고 싶어졌다.

내가 어리석었어. 접근금지 경고를 지켜야 했었어. 개를 죽게 한 공범이란 생각이 끊임없이 내 머리에 달라붙는다. 산책을 못하게 된 푸종이 눈알을 위로 굴리며 종일 내 발길을 가로막아 선다.

개들은 그다지 오래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잖아. 위무해 보았지만 마음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대로의 개를 사랑하는 법이 있었을 것이다. 왜, 내가 남의 팬스 내부까지 개입하게 되었을까? 나는 민지의 사진을 파쇄기에 밀어 넣고 파워를 눌렀다. 잘게 부서진 사진 조각들이 꽃가루처럼 투명한 상자 속에 떨어져 내렸다. 왜 이렇게 마음이 막막한지 모르겠다.

 

테리사 리 (문학동인캥거루 회원·소설가·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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