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소원

제발, 제발, 윤호야, 꿈에라도 좋으니…

시카고에 사는 명주에게서 삼 년 만에 연락이 왔다. 카우아이섬에 있는 집이 비어 있으니 우리 부부에게 건너와 함께 휴가를 지내자고 했다. 연초의 몇 가지 계획을 뒤로하고 우리는 하와이로 건너갔다. 파스텔 가루를 정성 들여 뿌려 놓은 듯 고운 산들이 펼쳐진 섬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파도를 골라 써핑하는 호사를 누렸다.

 

01_별똥별이네!명주가 손가락으로 하늘 어딘가를…

사람들이 붐비는 바닷가 모래밭에 독일 소형차 크기만한 물개와 거북이들이 버젓이 누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이곳의 일상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을 텐데 여전히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 같은 자연의 청정함이 이렇듯 가까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별똥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지 않았다면 명주 부부와 함께 보낸 휴가는 섬을 대표한다는 해밀턴 화가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마무리됐을까?

휴가를 마치고 섬을 떠나기 하루 전날 밤, 산책하러 나가자는 명주 남편을 따라 우리는 집 앞 바닷가로 나갔다. 말 그대로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별똥별이네!” 명주가 손가락으로 하늘 어딘가를 가리켰다. 별똥이 떨어지고 사라질 때까지의 찰나적 순간에 자신의 소원 세 가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소원들은 절대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02_나는 세 개는커녕 하나 끄집어내기도 쉽지 않았을 터

별똥이 떨어지는 장면을 놓친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별을 보았다 해도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자잘한 욕망이 너무 많아 세 개는커녕 하나를 끄집어내기도 쉽지가 않았을 터이다.

당장에라도 또 다른 별똥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급해지려는 마음을 누르며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간추려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런 와중에 나는 명주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별이 떨어질 때 허둥대지 않게 소원을 생각해놓으라는 내 말에 친구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소원은 딱 하나야!”

삼 년 전 명주의 아들 윤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통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오래 전 딸 아이를 잃은 어떤 여자가 쓴 에세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내 아이가 세상에 없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그렇게 알고 싶다는 건가.’

지금까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여러 번의 장례식에 갔었다. 돌이켜보니 상실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어설픈 위로자의 역할을 하려고 조급하게 행동했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그런 모습을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03_윤호에 대해 우리 부부는 어떻게 된 일이냐 묻지 않았고…

그래서일까? 윤호에 대해 우리 부부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하지만 명주는 과일을 고르거나 음식을 만들면서 윤호가 즐겨 먹던 것이라고 명랑하게 말했다. 가족이 함께 자전거 타고 가던 길을 지날 때나 스노클링을 하던 포이푸 앞바다에서 아이가 배낭여행이라도 떠난 것처럼 윤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한 번은 인터넷 은행명세서를 통해 윤호가 열중해서 본 드라마 시리즈 제목을 발견했다며 아들의 사생활을 엿본 엄마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요즘의 상담자들은 떠난 아이의 이름을 ‘쉬쉬’하기보다는 대면하라고 하나 보다. 하지만 별똥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내 친구가 원하는 것은 너무 분명했다. “내 소원은 윤호가 다시 살아오는 거야!”

싱그러운 나무 같던 아이는 빛나는 꿈들을 남겨두고 송두리째 가버렸는데 육십을 바라보는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루지 못한 소원을 빌어보겠다며 별똥별을 기다린다. ‘불가능한 일이겠지…’ 단호했던 친구의 목소리가 혼잣말하듯 사그라들었다.

 

04_명주는 오히려 순하게 그럴 수도 있겠지?내게 되묻는다

“명주야,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명주가 그런 걸 말이라고 하냐?며 상심에 휩싸인 채 주저앉을 것 같아 내 목소리는 거의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저 세상에서 아이를 만날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라도 가졌는지 명주는 오히려 순하게 “그럴 수도 있겠지?” 내게 되묻는다.

예상대로 다음 날 아침 명주는 늦게 나타났다. 밤새워 통곡했을 친구의 몸부림이 느껴져 우리 부부는 조용히 짐을 꾸렸다. 휴가 내내 남편은 본인이 먼저 꺼내지 않았던 아이의 죽음에 대해 힘겨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명주를 우리 모두 부둥켜안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전날 밤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 속에 명주가 실었을 소원을 생각해본다. ‘제발, 제발, 윤호야, 꿈에라도 좋으니…’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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