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의 위상…

좀 튀어 보이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하면 권위가 좀더 있어 보일 거라고 생각해서였을까요? 어느 날 그가 느닷없이(?) 콧수염을 기르고 방송에 나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 그는 여성아나운서와 함께 KBS 2TV 인기 토크쇼 ‘11시에 만납시다’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자타공인 여성지왕국 <여원>의 발행인으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방송국 MC자리까지 꿰차고 앉았던 겁니다. 늦은 밤시간이었지만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토크쇼에서 그는 패널들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여성… 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들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1939년생이니 당시 그의 나이는 40대 후반이었을 겁니다. 그때만 해도 그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상태였고 그에게는 조금 미안한 표현이긴 하지만 ‘여성지계의 악동(?)’으로 일컬어지는 그를 멀리서 바라보며 일면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마주 앉은 김재원 발행인에게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카리스마가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늘(?) 아래에서 차장, 부장 타이틀을 달고 지내는 내내 저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사장이라는 단순한 이유보다는 ‘선배기자’로서의 그의 대단함이 훨씬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채용이 되면 우리회사에서 얼마나 근무할 생각입니까?” 저의 첫 번째 회사 최종면접에서 편집국장이 던진 질문입니다. “저는 여기저기 쉽게 옮겨 다니는 성격이 아닙니다. 회사가 미래에 대한 비전만 확실히 제시해준다면 뼈를 묻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저의 조금은 당돌한(?) 대답에 곁에 앉아있던 발행인이 “저런 친구들이 뽑아 놓으면 쉽게 도망간단 말이에요” 하며 웃었습니다.

“아닙니다. 최소 편집국장까지는 해보고 싶습니다”라는 저의 대답이 통했는지 최종합격통보를 받았고 남들에 비해 빠른 승진을 거듭해 (이후 김재원 발행인은 저와의 첫만남에서 “자네는 출세가 너무 빨랐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첫 회사에서 편집국장까지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사실, 저는 차장, 부장, 국장… 등의 직급에는 별다른 관심이나 욕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발행인 겸 편집인’이라는 타이틀은 더더욱 원치도,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여서도 ‘기자’이고 싶은 게 제 꿈이었습니다. 사전에서는 그 같은 기자를 ‘대기자: 특정분야에 뛰어난 전문가로서의 기자’라 풀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나 조직은 그러한 저를 그냥 놔두지 않았고 ‘I have a dream’을 외치는 저에게 차장, 부장, 국장, 이사 등의 직함을 차근차근 달아줬습니다. 특히 시드니에 와서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온갖 일들을 다 해내야 하는, 좋은 표현으로 하면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삶을 19년째 살고 있습니다.

‘출판물을 발행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발행인이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계와 재계의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야합을 통해 자신의 이익과 출세를 추구하고 연예인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쓰레기 같은 발행인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매체의 질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광고수주만을 위해 ‘반값, 반의 반값’을 외치며 장사꾼으로 전락한 발행인들을 보면 씁쓸함을 감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들로 인해 비슷한 부류로 싸잡히는 오해는 더더욱 싫습니다. 올바른 발행인이라면 자신이 발행하는 매체를 통해 기본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게 저의 변함 없는 믿음입니다.

쓰나미 같은 온라인의 습격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바른 길을 걷는 일부 발행인들을 보면 존경심이 우러나옵니다. 1인 4역의 ‘감독 겸 선수’로 열심히 뛸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오늘도 저는 그들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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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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