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다녀와서 앓았던 열병

그곳의 냄새가 그리워 한동안 열병을… 칼레드 호세이니를 만날 때까지

호주에서 살다 보니 반바지 차림이 편해진 지 오래다. 반바지로 이란의 시골과 테헤란의 거리를 활보했더니 여기저기서 시선들이 따가웠다. 지나가는 버스 몇몇 승객들도 ‘저런 예의 없는 놈이 있나?’ 하는 식으로 위협적인 고성을 질러댔다. 여자는 머리카락을 가려야 하고 남자는 반바지가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에서 덥다는 핑계로 반바지를 고집했던 내가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것은 전적으로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구한말 단발을 하고 신식 양장차림으로 경성 거리를 활보한 셈이라고나 할까?

 

01_그렇게 위험한 나라엘 왜 가?

직장 동료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하니 열에 아홉은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렇게 위험한 나라에 왜 가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호주에서 바라보는 이란은 어떤 나라일까?

대부분 뉴스에서 접하는 한정된 정보뿐이리라. 나에게는 이란 친구 알리 (Ali)가 있다. 등산클럽에서 만났는데 심성이 맑다. 알리는 호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 이란 여행을 매년 주선하는데 여느 전문 여행가이드 못지 않게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계절에 맞추어 동선을 짜고 현지에 있는 친구들과 같이 30일치 프로그램을 만들며 여행객으로 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자는 것, 먹을 것, 그리고 이동 수단 등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

가성비에 맞춘 비용과 튼튼한 다리, 호기심만 가지고 가면 된다. 알리는 내 학기 방학에 맞추어 6월 한달 동안의 여행을 만들었다. 여행의 반은 등산, 나머지 반은 페르시아 문화 탐방이었다.

2500년 전에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이었고 맞수는 오직 로마 제국뿐이었다. 각각의 제국은 어떤 왕이 무대에 등장하느냐에 따라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역사를 만들어갔다.

 

02_모스크 안에서 허투로 기도하는 무슬림 본 적은…

페르시아 제국은 불을 숭배한 원래의 조로아스터교 대신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 기독교를 비롯한 타 종교에 대해 포용과 관용을 베풀었다. 시, 노래 그리고 문학이 페르시아 문화의 근간을 이루면서 척박한 그곳 지형에서 신선한 맛을 유지하는 석류 같은 유산을 남겼다. 나는 이란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메마른 토양을 자양분으로 꽃피웠던 페르시아 문화를 맛보았다.

테헤란공항에 내려 첫 행선지인 ‘마샤드 (Mashhad)’로 가는 국내선을 기다리면서 공항 화장실을 찾았다. 재래식 변기뿐 아니라 씻을 때 사용하라는 물 호스까지 옆에 있어 내가 드디어 중동지역에 왔음을 새삼 실감했다. 후에 이런 식의 화장실은 수천 미터 이상의 고원지역에 사는 사람들 집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슬람교에서 최고 성직자를 뜻하는 이맘 (Imam)은 예언자 무하마드 사후에 이슬람 공동체에서 절대적인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마샤드에는 ‘이맘 레자 (Imam Reza)의 사원’이 있는데 레자는 시아파의 8번째 이맘이다.

이 사원에는 레자의 무덤을 비롯하여 모스크 (mosque, 이슬람 성전), 박물관, 도서관 등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어 세계 최대 규모의 복합시설이다. 시아파 순례자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다.

기도보다는 모스크 안의 건축양식에 더 관심을 가진 나는 들어가기 전 모스크 앞 광장에 있는 세면장에서 ‘우두’라고 불리는 세정의식을 따라 하고 들어갔다. 이제껏 많은 모스크를 방문해봤지만 그 안에서 허투로 기도하는 무슬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의 신실한 신앙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03_환상적인 맛 지닌 이란의 다양한 음식 폭풍흡입

마샤드는 이란의 북동쪽에 있다. 이웃나라 아프가니스탄이 바로 지척인 그곳에 간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알리의 엄마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알리는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저녁식사 초대를 엄마 집으로 했다.

이란의 집밥을 처음으로 경험한 셈이다. 이미 며칠 동안 이란의 음식에 길들여진 나는 환상적인 맛을 지닌 이란의 다양한 음식을 폭풍흡입 하면서 성찬을 마음껏 즐겼다.

익힌 가지에 올리브 오일과 함께 토마토, 고추, 마늘, 생강 등을 넣어 볶으면 걸죽한 미르자가세미 (mirza ghasemi)가 되는데 이것을 넓적한 이란 빵에 발라먹으면 환상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밥과 먹어도 된다. 코쉬마자 (Khosh Mazas! 맛있다!)의 찬사를 쏟아내면서….

이란 북부에는 ‘카스피해 (Caspian Sea)’가 있다. 중앙아시아 최대의 내해 (內海)다. 이 카스피해 남안을 따라 동서로 뻗은 산줄기가 있는데 바로 ‘알보르즈 산맥 (Alborz Mountain)’이다.

이 산맥에는 높이 3000에서 4000미터 이상 되는 산들이 많으며 최고봉은 5671미터이다. 우리는 트럭과 당나귀를 이용하면 접근할 수 있는 4870미터의 ‘알람산 (Mount Alam)’을 점 찍었다.

 

04_그러나 정작 이 이론이 내 몸에는 통하지 않았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 우리는 일단 베이스 캠프로 올라갔다. 알리의 이란 친구들도 함께했다. 트럭으로 갈 수 있는 2000미터까지는 편히 갔지만 그곳부터는 걸어 올라가야 했다.

6월인데도 잔설이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식량은 당나귀에 실었기 때문에 개인의 배낭 무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희박한 산소가 문제였다. 3500미터에 위치한 ‘헤사찰 (Hesarchal)’이라 불리는 곳까지 겨우 올라갔다. 그곳은 사방이 평평하여 10여 개의 텐트를 치기에 좋았고 우리는 이틀 동안 고지대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다.

텐트장 바로 옆으로는 고산에서 눈 녹은 물이 작은 시냇물을 만들고 있어 식수로 사용했다. 고산증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일행은 ‘다이어목스 (Diamox)’를 먹었다. 이뇨제인 이 약은 일단 먹으면 소변의 양이 증가하면서 몸 속에서 알칼리 성분이 빠져 나간다.

그러면서 몸은 갑자기 산성화가 된다. 이 산성화는 호흡수를 증가하게 하는데 일종의 방어전략이다. 호흡수가 증가하면 혈중 산소량이 늘어 몸이 산성화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 호흡수의 증가는 당연히 대기 중의 산소를 더 받아들이게 되어 고산증세로 보이는 호흡곤란이나 산소부족을 막게 된다.

그러나 정작 이 이론이 내 몸에는 통하지 않았다. 젊거나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고산증에 더 약하다는 정설이 있다는데… 60-70대의 등반 동료들, 고산 환경에 익숙한 이란 친구들도 전혀 어려움 없이 잘 걷는데 나만 유독 헤맸다. 이틀 전에 베이스 캠프에 올라와 적응 훈련을 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05_내려올 때 나는 ‘바람처럼’ 달렸다!

온 몸에서 기운이 갑자기 빠져 나가는 바람에 한발한발 내딛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인지 예전엔 몰랐다. 다행히 일행을 이끄는 알리 친구가 내 느린 보폭에 맞추어 앞장을 서주었고 나는 그의 보폭에 맞추어 걸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 역시 등산을 여러 번 리드해보았지만 뒤에 오는 동료들의 보폭에 맞추어 걷기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정확하게 내 보폭에 맞추어 주었는데 그의 참을성과 프로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산 정상에 드디어 오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고산병이라는 것이 일단 해발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진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내려올 때 나는 ‘바람처럼’ 달렸다.

며칠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북서부의 길란 (Gillan)주에 있는 ‘마술레 마을 (Masuleh Village)’로 향했다. 이 마을은 해발 1000미터 정도 높이에 알보르즈 산맥 자락을 받침대 삼아 형성된 곳이다.

100미터의 높이의 산 중턱에 덕지덕지 집들이 붙어 있는데 아랫집의 지붕이 윗집 마당으로 이루어진 가옥 형태다. 그러면서 미로처럼 길이 이어지고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계단 한 가운데는 외바퀴 손수레가 짐을 운반할 수 있게 턱이 만들어져 있다.

 

06_여행자들의 입장만 반영된 이란의 알프스

재미있는 것은 앞집의 지붕들이 길로 이어지고 사람들이 만나는 공공장소의 역할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 지붕에는 앞집의 환풍기가 놓여 있는데 이 환풍기 위를 시멘트로 발라 의자처럼 만들어 놓아 산책하는 사람들이 앉아 쉴 수도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600년쯤 된다고 하니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알 수 있다. 마을 건너편 비옥한 곳은 농사지을 만하지만 산 계곡이라 바람이 항상 거세다.

혹자는 이 마을을 이란의 알프스라고도 하는데 척박하고 생활하기 힘든 이 마을의 사정을 감안하면 여행자들의 입장만이 반영된 수식어임에 틀림없다. 독특한 가옥 형태를 이루고 있는 이 마을이 여행자들의 눈에는 마냥 신기한지 우리 같은 여행객들이 꽤 많았다.

또한 이란의 여느 동네처럼 이곳에도 빵집이 있어 화덕에서 갓 구워진 이란 빵을 맛볼 수 있었다. 집들은 순전히 흙, 벽돌 그리고 나무로만 지어졌고 오래된 마을답게 몇 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동네 목수가 만든 예쁜 창틀이 집집마다 있고 꽃 화분들이 있어 삭막한 동네 풍경에 그나마 포근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결혼을 하자마자 나는 학기 때문에 아내보다 먼저 미국으로 가야만 했다. 아내는 몇 주 뒤에 오게 되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내의 체취가 그리워 어쩔 줄 몰랐던 적이 있었다.

 

07_칼레드 호세이니의 책을 세 권이나 연달아 읽었다

Image result for Khaled Hosseini이란에 다녀와서 그랬다. 그곳의 냄새가 그리워 한동안 열병을 앓았다. 섬세한 필체를 구사하는 작가 ‘칼레드 호세이니 (Khaled Hosseini)’의 작품을 만날 때까지 말이다.

그의 책을 세 권이나 연달아 읽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 (Kabul)에서 태어났고 1980년에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를 한 작가 호세이니. 아버지는 외교관이었고 어머니는 중등학교 교사였다. 그의 아버지가 파리의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에 근무하자 한때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하기도 했다.

세 작품을 전부 아프간에 배경을 두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고국인 아프간의 문화와 언어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과거 페르시아 제국 당시 한 영토였던 이란과 아프간은 음식, 언어 그리고 환경이 비슷하여 이란을 다녀온 나에게는 작품 속의 모든 묘사가 피부에 와 닿았다.

조선왕조의 몰락부터 시작하여 일제시대, 해방 그리고 이념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남북의 분단 등 한국 근대사의 격동기와 비슷하게 아프간은 1978년 공산주의 쿠데타로 왕정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정권, 민주주의 정권, 그리고 소련의 침공과 탈레반 독재정권의 등장과 몰락을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정치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08_작가는 이런 아프간의 격동기를 세 작품의 배경에 깔고

한 나라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은 작가들에게 많은 작품 소재를 안겨주게 되어 대하소설들이 탄생하게 된다. 작가는 이런 아프간의 격동기를 세 작품의 배경에 깔고 있다. 호세이니가 작가로서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소설이 그의 첫 작품인 <The Kite Runner 연을 쫓는 아이>이다.

주인공인 아미르 (Amir)가 카불에서 연을 날리면서 지낸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던 감정들, 형제간 이상으로 가까이 지낸 하산 (Hassan)과의 관계,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파생된 골이 깊어진 상처를 치유하려는 필사적인 노력들이 전개된다.

나중에 밝혀진 아버지와 하산과의 관계, 무서운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피난 가서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는 이야기, 자신의 결혼 생활, 나중에 들려온 하산과 그 아내의 죽음 그리하여 하산의 버려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카불로 들어가야만 했던 아미르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아미르처럼 나약할 때도 있고 또 상황이 주어지면 생각지 못한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기 어려울 정도로 작가는 독자들의 생각을 앞서가고 있다.

호세이니의 다른 작품인 ‘A Thousand Splendid Suns (1000개의 찬란한 태양)’는 아프간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냉대 그리고 가정 안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무참한 폭력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이슬람 종교가 만들어낸 왜곡된 남편의 부인에 대한 폭력 그리고 억압된 생활을 하는 부인들이 겪는 내부의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갈망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단 한 순간도 받아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 나이 또래의 어른에게 강제로 시집을 와서도 남편 사랑은 커녕 평생 폭력의 무서움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마리암 (Mariam)은 우연치 않게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게 된 딸 나이 또래의 라일라 (Laila)와 그녀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들과 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재미를 처음으로 맛보게 된다.

 

09_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마리암은 자신의 남은 생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 던지는 순고한 사랑을 남기고 간다. 이 사랑에 힘을 입어 라일라는 아프간의 사태가 양산한 고아들을 위해 선생님이 된다.

세 작품 중 나에게는 <And the Mountains Echoed 그리고 산이 울렸다>가 좋았다. 아프간의 가난한 한 마을에서 엄마 없이 자라는 압둘라 (Abdullah)는 어린 여동생인 파리 (Pari)를 농부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키운다. 나중에 파리는 카불의 부유한 부부에게 입양이 되어 떠나게 되는데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한 파리는 훗날 어른이 되고 나서 항상 자신의 채워지지 않은 한 부분이 아프간에서 지낸 어린 시절과 먼 기억 속에 자리잡은 오빠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여러 번 소리 내어 울었다. 특히 파리의 내면 세계를 수년 동안 집요하게 괴롭힌 감정이 마침내 ‘오빠 (brother)!’라는 말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올 때 나는 어느새 작품 속의 파리가 되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파리는 마침내 오빠를 만나게 되지만 압둘라는 이미 치매 증세로 인해 사람을 못 알아본다. 어릴 적 오빠가 자신에게 불러주었던 자장가를 대신 불러주는 파리의 쓰라린 심정을 나도 같이 느껴본다.

호세이니의 세 작품을 읽다 보면 페르시아 문화와 지나간 모든 것들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타인이 보기에는 아무리 척박한 곳일지라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일깨우게 된다.

많이 닮은 듯 아니 너무도 다른 먼 나라 이란을 향해 아들 역시 여행 계획으로 들떠 있다. 나보다 더 멋진 여행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올 것이다. 그리하여 그도 자기가 있는 곳의 소중함과 세기를 뛰어 넘는 세상을 보는 이해의 폭을 더 넓고 깊게 키워서 올 것을 기대해본다.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찰스스터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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