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햄튼서 멀지 않았던, 내 영혼의 일부가 남아있는 곳

어릴 때부터 기차여행을 자주 했다. 부산 출신인 엄마는 먼 타향 전라도로 시집 와 살면서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친정나들이를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늘 기차를 탔기 때문이다. 기차는 나에게 향긋한 어린 시절의 향수를 가져다 준다. 여동생하고 단 둘이서만 했던 기차여행도 내 의식 저편에 또렷이 자리하고 있다.

 

01_기차 길은 어쩌면 인생길을 닮아 있는지도…

설렘과 두려움이 얽혔던 가슴 떨린 모험… 기차가 달리면서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리듬에 취해 가졌던 아련하고 달콤했던 낮잠…. 기차 길은 그림같이 아름다웠다가도 무섭도록 위험했다가 때론 깜깜한 굴속으로 들어가기의 반복을 거듭했다. 이런 기차 길은 어쩌면 인간들이 살아가는 인생길을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 사우스 햄튼 (South Hampton)에서 한 달을 지내 본 경험은 마치 내가 살아있는 박물관 속에서 지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던 나라답게 가는 곳마다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었고 잘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혈관이 막히면 건강에 이상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듯이 기차길 또한 전 지역으로 잘 통해 있었다. ‘우리가 잠시라도 시간을 보낸 장소에는 우리 영혼이 남는다’고 한 프랑스 작가 패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rdiano)의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사우스 햄튼에서 멀지 않았던 바쓰 여행으로, 바쓰는 내 영혼의 일부가 남아있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사우스 햄튼에서 바쓰로 가려면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바쓰역에서 찍은 사진을 지인이 보고서는 “바써스트 (Bathurst)에서 뒤 몇 자만 뺀 바쓰 (Bath), 결국 그리 멀리 가지 않았네요” 하며 웃는다.

 

02_돌들이 그 동안 일어난 이야기들을 속삭여줄 것만 같은

차창 가의 모습은 내게 익숙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Bathurst와 Sydney를 자주 오가며 보아왔던 블루 마운틴의 절경, 검트리, 풍차, 동물무리들이 아니라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사뭇 낯설기까지 했다. 드넓은 벌판에 한적한 농가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초록빛에 둘러싸인 TV로 보았던 이국적인 절경들.

바쓰 입구에 들어서자 크림 빛이 도는 라임스톤 건물들이 중세도시를 연상케 했다. 고대 로마인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는데 물길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로마인들답게 도시가 유네스코에 등재가 될 정도로 구석구석에서 역사는 숨을 쉬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는 돌과 물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나의 눈을 붙잡고 있었던 돌로 만들어진 길과 담벼락은 어릴 적 한참을 올려다보았던 어렴풋한 돌담 길을 닮아 있었다. 그 육중한 무게를 한눈에 느낄 수 있었는데 수 많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돌만이 가지는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잘것없는 돌이었건만 세월의 흐름에 닳아지고 헤지면서 이제는 융단처럼 부드러움을 머금은 채 돌들은 길에 편안히 누워 있었다.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돌길 위에 누우면 저절로 아늑해질 것 같은 느낌조차 들었다. 한참 동안 돌을 만지작거리며 쓰다듬었다. 마치 돌들이 그 동안 일어난 수많은 이야기들을 내게 살며시 속삭여줄 것만 같았다.

 

03_시간에 쫓기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려 할 때면 물소리를

로만 바쓰 (Roman Bat)는 이제 더 이상 목욕을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어지지 않고 있지만 많은 여행객들이 들러보는 장소다. 고대 로마인들의 뛰어난 능력과 재주에 감탄하며 그 당시 공중목욕탕이 이렇게 웅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추구했던 로마귀족들의 사치를 엿보았다. 2000년이 넘게 고대 로마시대 때 흐르던 미네랄 물이 지금까지도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물은 그 소리 자체로도 인간에게 힐링이 되는 듯하다. 시간에 쫓기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려 할 때면 난 물소리를 듣는다.

마음의 평화를 다시 들게 하는 효과적인 소리다. 피부에도 좋았다는 성스러운 목욕물에 몸을 담그며 바쓰인들은 어떤 사랑의 노래들을 부르며 살아갔을까? 아이를 갖지 못했던 여왕이 이곳에서 목욕한 후 아들을 순산했고 통풍도 치료했다는 소문이 돌자 이후 많은 영국 귀족들이 바쓰에 자리잡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그곳의 로얄 크레슨트 (Royal Crescent)는 조지아 스타일로 디자인한 영국 귀족들의 취향을 겨냥한 고급 콘도다. 반달모양으로 지어진 이 특이한 건축물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탁 트인 운동장보다도 더 넓게 펼쳐져 있는 잔디밭이 이 건물의 앞 정원이다.

이곳은 매일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주변에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인을 굴뚝 바로 밑 집에서도 가장 은밀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방에 두고 부리며 화려한 귀족생활을 영위했다는 인간들의 고집스런 이기심들이 보여진 건축물도 아직까지 건재하다.

 

04_제인 오스틴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어두운 시기를 바쓰에서

지붕 위에 수많은 굴뚝이 눈에 거슬려 보인 건 이런 가이드 설명을 듣고 난 후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 영국과 비슷한 신분사회를 유지했던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가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인도 출신의 동료 말도 거슬렸다.

신분의 귀천이 역사적으로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는 사회가 있다니 변화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인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집을 방문했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그리고 <이성과 감성 Sense and Sensibility>을 쓴 이 작가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었다.

제인 오스틴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바쓰에서 지냈다. 그녀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또 다른 소설들로 승화시켰는데 설득 (Persuasion) 의 대부분의 배경은 바로 바쓰였다.

작가들은 마법사들 같다. 슬픔이건 기쁨이건 인생에서 맛보는 인간의 감정과 경험들을 작품으로 정제된 글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아마도 그들은 그 같은 능력을 남모르게 매일 키워왔는지도 모른다.

 

05_고통은 추락이 아닌 재탄생의 순간, 새로운 여행의 시작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류시화 시인은 말한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

하지만 그곳에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던 나의 학생이 떠오른다. 영혼이 감기에 걸려 몸살을 앓고 있었다지만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어린 나이에, 감정을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해서 결국 기차 길에 자신의 몸을 던져야만 했으니….

기차를 놓칠세라 양손에 짐을 든 채 뛰어가다 기차 플랫폼에서 코뼈가 깨진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플랫폼 노란 선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못난 시간들…. 기차길에 반드시 나타나는 깜깜한 터널로 들어가는 공포를 견딜 수 없어 한때 기차 타는 것을 꺼려 했던 힘들었던 지난날의 시간들이 보였다. 참 구불구불한 먼 길들을 걸어 나는 여기에 와 있다.

제인 오스틴 작가의 집에서 나의 글을 향한 기찻길을 떠올렸다. 어설픈 날개를 파닥인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나간다. 언제쯤이나 우아하게 기찻길 위를 멋지게 활공할 수 있을까를 상상하면서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의 글쓰기 습작은 계속될 것이다.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School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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