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꿈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의 있는 현실을 그렸다

원시주의적 색상과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자화상으로 유명한 20세기 멕시코의 대표적인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는 어릴 때 걸린 소아마비와 18세 때 일어난 학교 스쿨버스와 전차와의 충돌 사고로 인한 절망과 고통을 강렬하고 충격적인 화풍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01_루브르미술관이 작품 구입한 최초의 남미 여성화가

아마도 그녀의 작품에게 보내는 우리의 사랑은 평생을 온전한 몸으로 살 수 없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과 경험, 고통 속에서 더욱 생생히 살아나는 삶에 대한 열망을 예술로 승화한 그녀의 용기와 의지에 보내는 찬사이기도 하리라.

1907년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사진작가인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의 세 번째 딸로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여섯 살에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장애를 지니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18세에 타고 가던 스쿨버스와 전차의 충돌로 끔찍한 사고를 겪게 되었다.

이 사고로 버스에 있던 강철봉이 척추와 골반을 관통해 대퇴골과 갈비뼈가 부러지고 골반은 세 군데, 왼쪽 다리는 열 한군데가 골절되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복구하기 위해 평생 척추 수술 일곱 번을 포함한 서른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며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다.

사고로 인해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18세면 한창 인생의 앞날에 대한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 찬 나이인데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여자의 몸으로 만신창이 된 그녀에게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꿈도 산산이 부서졌으리라.

어느 누가 이러한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프리다 칼로는 좌절하지 않고 그녀에게 주어진 고통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캔버스 위에 쏟아내었고 현실을 극복한 그녀의 독창적이고도 특별한 작품은 후에 멕시코 국보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루브르미술관이 작품을 구입한 최초의 남미 여성화가가 되었다.

 

02_고통과 외로움에 정면으로 맞서 창작으로 승화

사고로 오랜 시간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프리다 칼로는 외로움에 지쳐 홀로 있는 시간에 사고 이후 그녀에게 닥친 고통과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어머니가 침대 위에 달아준 큰 거울을 보며 스스로의 내면과 겉모습, 그 속에 숨어있는 고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닥친 모든 고통과 외로움에 정면으로 맞서 그것을 창작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1944년 그려진 그녀의 자화상 ‘부러진 기둥’은 그녀가 겪었던 고통에 대한 감정이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그전까지 그려진 모든 자화상의 틀을 깨버린 가장 놀라운 자화상이다.

화면에는 몸 전체에 끔찍한 상처를 입고 나신으로 서있는 여인이 자신의 손상된 척추를 부서진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대체시켜 버티고 있고 하얀 철제 밴드가 간신히 분해된 몸을 결합시키고 있는데 이 모습에서 우리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자신의 삶을 복원시키려는 화가의 의지를 느끼게 된다.

온 몸에 박힌 못은 그녀가 항상 함께해야 하는 신체적인 고통을 표현하고 극기와 체념의 얼굴표정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 배경의 텅빈 황무지는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상처, 슬픔, 고독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들은 나를 초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결코 꿈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의 있는 현실을 그렸다”라고 말한 그녀는 잔혹한 상황 속에서도 담담하게 스스로의 고통을 응시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03_디에고는 연인 넘어 영원한 우상…

가난과 병마와 사고의 연속인 우울한 프리다의 삶은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으로 크나큰 변화를 맞게 된다. 멕시코 국민화가인 디에고는 공산주의자이자 낭만적 혁명주의자이며 그림을 통해 자신의 혁명에 대한 신념을 표현하는 민중지향적인 미학을 추구한 민중의 사랑을 받은 유명한 벽화화가이다.

에고의 벽화를 그리는 모습에 첫눈에 반한 프리다가 긴 치료생활 후 디에고를 찾아가 둘은 연인이 되었고 21세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프리다에게 있어 디에고는 연인을 넘어서 영원한 우상이었고 온 힘을 다해 그를 사랑했지만 후에 그녀는 “평생 나는 큰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8세때 나를 부숴버린 버스이고 두 번째는 바로 디에고를 만난 일이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디에고는 끊임없이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였다.

 

04_그녀와 디에고가 온전히 하나 될 수 없이 대립하고 있는

개방적인 연애관을 가진 디에고는 수많은 여인과 바람을 피웠고 심지어는 프리다의 여동생과도 사귀었다. 그러나 프리다는 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사랑스러운 괴물, 할머니, 영원 불멸의 물체, 어머니, 모든 신들, 여자, 그리고 무엇보다 갓난아이처럼 내 가슴에 품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나의 디에고이다” 라는 말로 그가 자신의 작은 우주 그 자체임을 표현했다.

이러한 그녀의 우주적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 ‘우주, 대지, 디에고, 나, 솔로들의 사랑의 포옹’을 보면 멕시코 대지의 여신 앞에 프리다가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어린아이 모습의 디에고를 안고 앉아 있는데 울고 있는 그녀의 가슴에 벌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손에는 시바의 불꽃을 들고 이마에는 제3의 눈이 달려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괴로운 모든 것을 태우고 또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녀의 마음이 드러나고 양 옆에 떠있는 해와 달이 그녀와 디에고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이 대립하고 있는 관계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05_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프리다가 그린 헨리 포드 병원

그녀는 사랑하는 디에고와 완전한 가족을 이루고 자신의 외로움을 덮어줄 자식을 원했지만 사고로 인해 상처받은 골반과 자궁으로 인해 세 번이나 유산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유산 후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프리다가 금속판 위에 그린 ‘헨리 포드 병원’은 작고 무력한 프리다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아직도 부풀은 그녀의 배에 연결된 태아가 웅크린 채로 공중에 떠있는 그림으로 이미 잃어버린 아기를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으로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침대 시트에 흥건한 피와 아래쪽에 그려진 부서진 그녀의 골반, 커다랗게 그려진 눈물이 방울방울 아기를 잃은 그녀의 슬픔과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06_혹자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거듭되는 수술과 유산의 아픔으로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지고 건강도 점점 악화되었을 때에 그녀가 그린 ‘상처 입은 사슴’ (1946)은 상처받은 영혼을 암시하듯 여러 개의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쓰러진 사슴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나무들이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이라는 덫에 갇힌 그녀의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희망의 끝을 붙들고 삶을 위해 투쟁하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우리에게 가슴 깊이 울리는 감동을 준다.

이토록 처절하게 고통 받은 인생이 있을까? 그녀의 그림을 보며 혹자는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프리다의 고통으로 얼룩진 아픈 삶을 알고는 그러한 선입견이 얼마나 가볍고 몰지각한 일인지 깨닫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워 질것 같다.

 

07_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몰아의 경지 보여주고 있는 것

죽지 못해 사는 삶 속에서도 ‘창조는 고통의 구원이자 삶에 대한 위로’라는 신념과 열정으로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창조적인 작품을 그리고 미술사에 우뚝 선 그녀의 삶 앞에서 우리는 인생의 숙연함과 벅찬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말로 할 수 없던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에서 얻는 만족감 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제 그림의 주제는 늘 제 감각과 감정상태, 제 내부에서 일어나는 깊은 반응들이고 저는 종종 이런 주제들을 자화상으로 구체화합니다. 그것이 나 자신과 내 앞에 있는 것들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하고 진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프리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독한 통증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병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재현한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은 고통스럽지만 자기 자신을 느끼고 깨닫기를 멈추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삼아 고통의 체험을 녹여낸,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몰아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08_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자신의 몸과 의식, 자아 간의 관계를 재정립해 고통을 삶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원동력으로 삼아 오직 프리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 예술세계를 구축한 그녀의 마지막 작품은 ‘인생 만세 (viva la vida)’이다.

영국밴드 ‘콜드플레이 (Coldplay)’가 역경을 딛고 일어난 그녀의 삶에 감명을 받아 발표해 세계적인 히트를 한 동명의 노래로도 유명한 작품인데 강렬한 붉은 색의 수박과 그 속에 또 다른 삶을 잉태하고 있는 것을 상징한 씨앗들이 그려져 있고 정면의 수박 조각에는 ‘삶이여, 만세 (viva la vida)’ 라는 글이 적혀져 있다.

죽음에 이르러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인생이여 영원 하라’라는 말의 작품을 남긴 그녀. 죽는 날까지 삶의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가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며 그녀의 삶을 강타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위대한 작품세계를 이룬 프리다 칼로. 고통을 머금고 피어난 예술혼은 그녀를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다.

우리가 병상에 있거나 불행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삶에 지치고 일상이 지루해질 때 그녀의 그림은 우리에게 외친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나는 치열하게 그리고, 사랑하고, 살아냈다… 당신은?”

 

 

* 다음 호에서는 앙리 마티스의 춤추는 삶의 환희를 이야기합니다.

 

 

글 / 미셀 유 (글벗세움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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