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신?!

지 오빠가 자동차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틈을 타, 녀석은 에이든이 먹던 뽀로로 주스를 집어 들고 얼른 입으로 가져갑니다. 하지만 채 입에 닿기도 전에 그것을 빼앗기고는 이번에는 반쯤 열려있는 포스틱 봉지에 잽싸게 손을 넣어보지만 여지없이 제지 당하고 맙니다.

그렇게 이도 저도 못 건진(?)채 곁에서 과자며 주스를 맛있게 먹고 있는 지 오빠를 바라보는 에밀리의 눈빛은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인지, 입도 반쯤 벌어져 있고 가끔은 침도 삼키는 것 같습니다.

참 안쓰러워 보였지만 ‘아직은 안 된다’는 ‘엄마의 방침’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맛대가리(?) 없는 녀석의 전용(?) 유기농과자 외의 다른 과자나 주스, 아이스크림 등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녀석이 15개월을 넘어서면서부터 ‘부분해제’가 시작됐습니다. 아직 조심은 시키고 있지만 이제는 에이든이 먹는 맛있는 과자들에 에밀리도 합법적(?)으로 입을 댈 수 있게 된 겁니다. 뽀로로 주스도 당당하게 녀석의 손에 한 개가 들려 있고 아이스크림도 조금씩은 베어 물 수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보여주며 “뽐이, 이거 뭐야?” 하고 물으면 녀석은 맛의 신세계에 이미 들어선 듯 두 눈을 거의 감다시피 하며 “크~”라고 얘기합니다. “뽐이, 이건?” 이번엔 바나나입니다. “아야야!” 역시 눈을 찡긋거리며 큰소리로 외칩니다.

울순이, 먹순이… 녀석의 애기 때 별명입니다. 낯가림이 워낙 심해 지 엄마 아빠 그리고 에이든 외의 조금이라도 모르는 사람과는 눈만 마주쳐도 기겁을 하며 울어대던 녀석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발 할머니랑 친해지라며, 딸아이가 에밀리를 아내 품에 안겨줬는데 지 엄마 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울어대는 거였습니다. 몇 번을 달래봤지만 속수무책, 다시 지 엄마 품에 넘겨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라, 이 울순아!” 어처구니가 없었던 아내가 녀석의 뒤통수를 살짝 가격(?)하는 순간, 녀석은 서러움(?)까지 더해 온 집안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울어댔습니다.

그럼에도 먹는 것에 있어서는 지 오빠의 두 배는 챙기는 듯싶었습니다. 뭐를 먹든 맛 있게 그리고 많이 먹는 녀석은 그렇게 해서 ‘먹순이’라는 별명을 또 하나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가리던 품목들이 해제되면서 녀석의 식도락(?)의 크기가 훨씬 더해진 겁니다. 이건 비밀이지만, 녀석은 울워스 매장에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아야야 아니, 바나나를 그 자리에서 두 개나 해치운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뭘 먹든 맛있게, 기분 좋게, 많이 먹는 녀석에게 제가 붙여준 새로운, 업그레이드(?) 된 별명이 먹신(神)입니다. 조금 더 크면 여자아이에게 그 같은 별명을 붙여준 할배를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씩씩하게, 멋지게 먹는 녀석에게 참 잘 어울리는 별명입니다.

소파를 붙들고 위태위태 걷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거실이며 놀이방이며 온 집안을 종횡무진 뛰어다닙니다. 지네 집보다 조금 더 넓은 우리 집이 운동장(?)처럼 느껴지는지 소리까지 꺅꺅 지르며 달리다가 “뽐이, 힘! 힘!” 하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을 주며 ‘으~’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전에 에이든이 하던 개인기(?)를 이제 녀석이 그대로 이어받은 겁니다.

여자아이라서 그런지, 집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입에 침을 잔뜩 묻혀놓는 격렬한(?) 뽀뽀를 마다 않는 녀석이지만 길에서 만나면 ‘새침모드’로 돌변합니다. 끝까지 뽀뽀를 거부하는 녀석의 양쪽 뺨에 뽀뽀를 쪽! 쪽! 해주면 녀석은 예의, 그 두 눈이 안 보이는 웃음을 선사합니다.

지난달, 에이든 생일선물을 사면서 아내와 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에밀리 선물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제는 뭘 사든 두 녀석 것을 함께 챙겨야 하고 특히 우리 집 ‘먹신’을 위한 맛있는 것들도 많이 사야 하니 정말 돈 많이 벌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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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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