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타고·보고·자고?!

네 가지 패턴의 반복이었습니다. 먹고, 타고, 보고, 자고…. 굳이 중간에 하나를 더 끼워 넣자면 ‘졸고’가 있겠습니다. 한곳에서의 행군(?)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패키지팀원 37명 전원이 너나 할 것 없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시간인 오전 6시 30분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이면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짜여진 일정에 따라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돌았습니다. 중간에 점심식사 시간과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지긴 했지만 저녁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을 정신 없이 다니다 보면 늘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기만 했습니다.

한번 버스에 오르면 한두 시간은 기본이고 서너 시간, 길게는 여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한 적도 있습니다. 아무리 다닥다닥(?) 붙어있는 유럽 국가들이라고는 하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한꺼번에 여러 나라를 훑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매일매일 강행군이 계속됐습니다. 한 나라를 보기에도 충분치 않은 10박 12일 동안 동유럽과 발칸 여섯 나라를 기웃거려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매일매일 최소 1만 5000보에서 2만보까지를 걸었습니다.

처음부터 수박 겉핥기,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여행이 예고된 패키지투어였지만 그렇게라도 위대한 문화유산, 소중한 역사의 현장 속에 들어설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감사함과 행운으로 기억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됐던 짤츠부르크에는 노란색 6층짜리 모짜르트 생가가 있었고, 11세기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 호헨짤츠부르크성에서 바라본 눈 덮인 알프스의 장관은 달리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동화 속 그림을 연상케 하는 블레드섬 성모승천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울린 ‘소원의 종’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두브로브닉… 스르지산 정상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드리아해 연안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다름 아니었고 tvN ‘꽃보다 누나’ 촬영지로도 유명한 성벽 아래 부자카페에서 마신 맥주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뉴브강 유람선 위에서 50분 동안 빠져들었던 환상적인 야경, 비가 촉촉히 내리던 날의 오리지널(?) 비엔나커피 한 잔, 신고전주의 대표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 대형 초상화 앞에서의 인증샷, 프라하 시내를 한 바퀴 돌며 40분 동안 가졌던 히스토릭 올드 트램에서의 즐거웠던 시간들…. 그리고 1968년 소련을 위시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개입으로 8개월 남짓의 미완성으로 끝났던 ‘프라하의 봄’의 현장 바츨라프 광장에서는 잠시 숙연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졌던 이번 여행은 마침 우리의 결혼기념일과 맞아떨어져 그 의미와 행복의 크기를 더해줬습니다. 동유럽·발칸 여행기간 동안 시드니에서 함께 간 여덟 명이 밤이면 밤마다 여러 나라 맥주를 골고루 맛보느라 분주했던 것도, 수 천장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던 것도 모두모두 소중한 순간들로 다가옵니다.

한국에서의 짧은 체류기간도 행복이 가득한 시간들이었습니다. 48년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녀석 부부와의 만남, 서로의 스토커(?)를 자처하는 후배기자와의 시간, 시드니에서는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미친(?)듯이 먹었던 멍게, 해삼, 산낙지….

겨울을 두려워하는 아내를 위해 ‘여행하기 딱 좋은 4월’을 택해 회사를 2주 동안이나 비웠지만 두 권의 책을 멋지게 뽑아낸 ‘코리아타운을 만드는 좋은 사람들’의 고마움에 힘입어 ‘이제부터는 매년 4월, 2주동안의 땡땡이를 정례화 해볼까?’ 하는 욕심도 슬그머니 가져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도 철저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며 돈도 많이 벌어야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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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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